『우주 생명 오디세이』
- 교양 과학책의 명상적 용도에 관하여
『우주 생명 오디세이』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우주책’이다. 조금 이상한 말이기는 하다. ‘우주책’이라니, ‘과학책’, ‘천문학책’도 아니고 ‘우주책’이라니. 그러니까, 이런 이상한 말을 쓰는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용도의 문제다. 아무래도 내가 이런 류의 책을 ‘과학’이나, ‘천문학’, 그러니까 이른바 ‘교양’ 또는 ‘학’(學)적 탐구의 목적으로 읽지 않다보니, ‘저 요즘 과학책, 정확하게는 천문학책을 읽고 있어요’라고 말하기가 심히 송구스럽다. 나는 이런 책들을 그저 ‘우주’와 나 사이의 어머어마어마어마어마한 간격을 확인하는 용도로 읽곤 한다. 세상이 이렇게나 넓고, 나는 이렇게나 무의미한 존재구나 싶은 감정이 필요할 때, 읽는 다는 이야기다.
천문학의 역사는 경외심과 부끄러움의 끊임없는 행진이었다. 수백억 개의 은하를 지닌 우주의 엄청난 크기와 나이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우리가 그 은하들과 그곳에 있는 무수한 별들 사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부끄러움 말이다.
크리스 임피, 전대호 옮김, 『우주 생명 오디세이』, 2009, 까치, 서문 중에서
서문에 딱 적합한 문장이 있다. 나에게 나는 너무 특별한 것 같은데, 아무도 나의 특별함을 몰라주는 상황에서 내가 진짜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몹시 ‘과학적으로’ 느껴진다. 정말이지 ‘우주적’으로 볼 때 나는 하찮다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로 하찮다. 그게 어느 정도냐하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은하의 개수는 대략 600억 개이다. 그 은하들에 들어 있는 별의 개수는 10²²개, 즉 10억개의 10억 배의 10,000배이다.
- 같은 책, 54쪽
숫자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까 ‘600억’은 ‘60,000,000,000’이고, ‘10억 곱하기 10억’은 ‘1,000,000,000 × 1,000,000,000’이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 어마어마한 숫자 속에 ‘나’를 집어넣어보면, 와…, 일단 공간적으로 보자면 티끌도 이런 티끌이 없다.
(빅뱅부터 현재까지, 137억년을 ‘1년’으로 계산해보면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을 20초 앞두고 호미니드는 우리와 똑같게 진화한다. 녀석들은 도구를 발명하고 농사를 짓고 최초의 도시들을 건설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자정을 1초 앞두고 일어난다.
- 같은 책 66쪽
오마이갓. 시간적으로 보아도 ‘찰나’다. 도대체 어디에 ‘만물의 영장’이 있고, 또 어디에 ‘근대적 주체’가 있는가? 이런 구절들을 읽다보면 허무가 엄습한다. ‘나’를 잊으려고 읽었을 뿐인데, ‘나’가 너무 무의미해져버려서……, 도무지 살아갈 힘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참 안타깝게도 마주한 삶의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똑같다. 책상 구석엔 나보다도 작은 먼지가 굴러다니고, 잔액부족으로 관리비가 덜 출금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마저 온다. 세상에, 우주는 이렇게나 넓고 깊은데 정작 문제가 되는 건 350원이라니…….
다시 ‘우주책’의 용도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면, ‘허무’를 겪고, 현실을 마주 하면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는 듯 하지만 변한 게 있다. 어쩐지 ‘삶’이, 그 거대하고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는지 모른다. 곁가지 다 자르고 보자면 조금 만만해 보인달까? 조금 더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살아갈 용기가 생긴달까?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우주책’ 읽기는 ‘명상’하고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저울에 비유하자면, ‘내가 나’인지라, 저울은 대체로 주체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기본 설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주책’을 읽고 나면, 문득 ‘나’의 무게가 훨씬 가뿐해져서, 대충 저울의 균형이 맞게 된다. 인간들이 만드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불공정’을 바닥에 깔고 있지만, ‘우주’의 원리는 얼마나 가차 없이 평등한지. 그 사실을 때때로 상기해보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로가 된다.
우주 생명 오디세이 - 크리스 임피 지음, 전대호 옮김/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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