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자 가라사대 - '정직'이란 무엇인가

아버지를 업고 튀어라!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섭공어공자왈 오당유직궁자 기부양양 이자증지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子路 18)
공자왈 오당지직자이어시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섭공: 우리 마을에 정직한 이가 있는데,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그 아들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공자: 우리 마을의 정직한 이는 이 사람과는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숨겨 주고 자식은 아비를 위해 숨겨 줍니다. 아마 정직은 이런 가운데 있겠지요.

기원전 23세기!(참 멀기도 하여라^^) 전설의 임금 요(堯)는 자신의 뒤를 이을 인재를 찾는다. 물론 요 임금에게 아들이 없던 건 아니다. 사실 무지 많다. 하지만 요는 이 자식들에게는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다. 특히 장자(長子; 맏아들). “아! 그놈은 덕(德)이 없고 싸움만 좋아하니 쓸 수가 없네!” 그러나 왕위를 누군가에게는 줘야 할 상황. 요는 전국방방곡곡에 인재 수배령을 내린다. 그러던 어느 날 첩보가 날아든다. “순(舜)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장님의 아들입니다. 아비는 도덕이란 전혀 모르는 자고, 어미는 남을 잘 헐뜯는 자이며, 동생은 교만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어서는 완전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화려한 악조건을 두루 갖출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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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하지만 그는 효성(孝誠)을 다함으로써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그들을 점점 착해지게 하여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인재를 기다리고 있던 요 임금에게 확 끌리고도 남을 이 몽타주. 허나 천하를 맡겨야 하는 일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급기야 요는 스파이(?)를 심는다. “그럼 어디 내가 그를 한번 시험해 보겠소!”라더니 자기 두 딸을 ‘세트’로 순에게 줘버린다. 화끈하기 그지없는 요 임금! 그가 이 세트 자매에게 내린 특명은 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보고하는 일. 하지만 이것만으론 모자라다고 생각했던지 요 임금은 아들 아홉을 순 주변에 배치한다. 일급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순 감시 대작전!

헌데 감시를 해보니 이 집구석 정말 콩가루 집안이 틀림없다. 순의 부친은 고수(瞽叟). 고수는 순의 모친이 죽자 재처하여 아들 상(象)을 얻는다. 고수는 이 아들이 예뻐서 아주 죽겠다. 드라마를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이쯤 되면 감이 온다. 후처에게서 얻은 자식에 눈이 멀어 전처의 자식을 구박하는 아버지(고수瞽叟의 이름 또한 ‘눈이 먼 늙은이’라는 뜻이다^^). 급기야 순은 온 집안 식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아버지, 순이 얼마나 꼴보기 싫었으면 순을 죽일 음모까지 꾸민다. 하루는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서 벽토를 바르게 한다. 그런 다음 집에 불을 질러 버린다. 헉! 하지만 어디 영웅이 쉽게 죽을 팔자던가. 믿기지 않겠지만 아니 정말 믿을 수가 없지만 순은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삿갓 두 개를 타고 무사히 탈출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번엔 순에게 우물을 파게 한다. 아버지의 명령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우물을 파들어 가는 순. 그런데 우물이 점점 깊어지자 이번엔 고수와 상이 합심하여 위에서 흙을 부어 버린다. 이쯤 되면 이거 친족생매장이나 다름없는 아주 중범죄다. 제 아무리 순이라도 이 상황에서 살아 돌아오기란 요원해 보이는 일. 순의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후 처리에 들어간다. 이때 애지중지해서 기른 자식 상이 나서서 말한다. 우물 생매장 계책은 자기 머리에서 나왔으니 순의 재산 반과 그의 아내들, 그리고 순의 거문고는 다 자기가 갖겠다고. 나머지 소와 양, 창고는 아버지·어머니가 가지라고(예나 지금이나 애지중지 기른 놈들의 싸가지란 다 이 모양이다).

하지만 어디 순이 쉽게 죽을 인물이던가. 사실 순은 우물을 파면서 몰래 비밀 구멍을 함께 판다. 이번에도 자기를 죽일 것이 너무나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순은 이 구멍으로 피신했다가 몇날 며칠 걸려 다시 지상으로 나온다. 그러고는 순의 집과 마누라를 차지하고 태연히 거문고를 뜯고 있는 상(象) 앞에 나타난다. 아뿔싸! 이거 딱 걸렸다. 그런데 상도 잔머리 하나는 고수급! “난 형 생각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어.” 아주 가관이다. 하지만 순의 그 다음 멘트가 더 압권이다. “그랬었구나. 이 형 생각을 그처럼 하고 있었구나.”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 무슨 초인급 멘트란 말인가. 하지만 그게 순이라는 인간이었으니 어찌하랴. 가족이 자신을 죽이려고 해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순! 이런 순의 모습에 감동 먹은 요 임금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이때가 바로 동양의 유토피아, 요순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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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깐! 지금 이 긴 이야기를 여기서 왜 하냐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순은 오늘 우리가 다룰 문장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조연이긴 하나 순의 포스는 제대로 작렬해 주신다. 일단 순이 등장하는 건 섭공과 공자가 나누는 대화에 가해진 주석에서다. 허나 주석이라고 우습게 봐선 큰 코 다친다. 2500년간 수많은 선비들이 읽고 또 읽은『논어』에 주석으로 달릴 정도면 그 내공도 만만치 않음은 물론이다. 또한 순이 등장하는 이 주석은 오늘 우리의 문장을 이해하는 데 아주 훌륭한 임상사례다. 더구나 이 사례는 앞에서 본 순의 삶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섭공과 공자의 대화엔 이런 주석이 달려 있다. “고수(瞽叟)가 사람을 죽이면 순(舜)임금은 고수를 몰래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를 따라 살았을 것이다.” 북송 때 유학자 사량좌가 단 주석이다. 하지만 원래는『맹자』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가운데 한 토막에 불과하다. 전문은 이러하다. 하루는 도응이라는 제자가 맹자에게 묻는다. “순(舜)임금이 천자(天子)로 있을 때에 아버지인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순(舜)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매우 날카로운 질문이다. 생각해 보라. 순은 천하를 다스리는 임금이다. 그런데 임금의 그 아비가 사람을 죽였다면 그 임금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섭공이 말하는 정직하다는 사람처럼 아비를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힘으로 눈 감아 줄 것인가. 난처한 이 상황. 바로 이때 맹자가 도응에게 준 대답이 바로 저것이다. 요지는 순(舜)이라면 왕의 자리고 뭐고 일단 아버지를 들쳐 업고 튀었을 거라는 것!^^ 맹자다운 재기발랄한 해석. 하지만 여기엔 공자가 말하는 정직의 핵심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자와의 대화에서 섭공은 정직을 ‘법’ 위에서 사유한다. 법이 금지한 것, 그것을 지키는 것이 섭공에겐 정직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는 정직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철저하게 외부의 잣대에 맡 겨버리는 꼴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내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가라는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합의된 잣대로 판단하는 것.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 기준을 우리 외부에 두는 것. 이는 마치 부자가 되어야만 성공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맞춰 사는 사람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자신의 삶임에도 그 삶에서 찾아내야 할 삶의 기준을 모조리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 이때의 삶이란 고단함 그 자체다. 자꾸 자신의 삶을 외부적 시선과 기준에 맞춰야 하니 삶이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섭공과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고발한 이는 모두 이런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런 수동적 삶에 반대한다.

사실 공자는 섭공과 다른 지반 위에서 정직을 사유한다. 섭공이 ‘법과 제도’라는 측면에서 정직을 말하고 있다면 공자는 천륜(天倫)의 입장에서 정직을 바라본다. 아니 그게 법과 제도보다 먼저라고 생각한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사이다. 이 관계는 인간이 만든 법으로는 단죄할 수도 끊을 수도 없다. 인간이 만든 것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관계. 법이 그 관계를 훼손시키려 할 때는 ‘아버지를 업고 튀어야’ 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하늘이 준 관계를 인간의 힘으로 단죄하는 것을 방치할 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곧 하늘이 인간에게 준 마음이자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태도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대대로 불고지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를 숨겨주고 부모가 자식을 숨겨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공자는 섭공과의 대화에서 이 자연스러운 마음을 거스르고 아버지를 고발한 사람을 정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직을 빙자해 사회적 명성이나 얻으려는 소인배이거나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짓말쟁이에 가깝다.

이 점에서 맹자가 ‘아버지를 업고 튈 것’이라고 말한 순은 지극히 정직한 인물이다. 부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해도 그는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먼저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건 원래 부모의 마음이 아니다. 그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자신의 효성(孝誠)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인물이다. 더구나 그는 능동적으로 이 삶의 문제와 대결한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현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돌파해 나가려고 하는 것. 우리 같으면 ‘저게 부모야!’라며 사무치는 원한의 감정을 갖겠지만 순은 오히려 부모를 더 극진히 대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자칫 바보처럼 보이는 순이지만 그는 그래야만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회피하지 않는 것. 그 마음을 다치게 만드는 현실이지만 거기서 물러나지 않는 것. 순은 아비를 업고 튀어야 행복한 ‘인간’이다. 그리고 공자는 이런 ‘순’이 우리 모두 안에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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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과 제도’라는 장치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다. 인간에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가 그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기에 그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법과 제도는 단지 그 지혜를 발휘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마찰을 일으킬 때 최소한으로 필요한 무엇이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에 자신이 나아갈 길을 묻어야 한다. ‘바보처럼 인간에게 무한한 희망을 거는 자’ 공자가 생각한 정직한 사람의 삶이란 이런 인간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밖에서 구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 안에 있다.

父子相隱 天理人情至也 故不求爲直 而直在其中
부자상은 천리인정지야 고불구위직 이직재기중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숨겨주는 것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정이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정직하기를 구하지 않아도 정직함이 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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