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문학을 읽었으면 떠나라!
“문학을 통해 근대를 만나고자 했던 이광수는 조선의 근대문학을 서구의 근대문학으로 수입하려 했다는 것. 그것은 이광수에게 있어 문학(리터러쳐)이란 이제까지의 문학(전통적인 문=학)과는 대척점에 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광수의 이러한 태도는 비단 이광수만의 시각이라기보다 근대 초기 계몽주의자들의 계몽담론에 대한 문학적 전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요컨대 이미 새로운 시대는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저기에 ‘있다’. 문명의 길, 근대의 길, 이제 과제는 하루라도 빨리 저기 있는 이상(원본)으로서의 근대를 따라가는 문제였다는 것.”
- 문성환 엮음,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해제, 11쪽
‘유럽’은, 그저 자신들이 살던 그대로 살다가, ‘근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유럽’ 바깥은 살다보니 ‘근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자의와 타의, 긍정과 부정,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간 등이 한꺼번에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그로부터 꽤 거리를 갖게 된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근대’를 통과한 것인지, 여전히 거기에 머무른 것인지, 아직도 오지 않은 것이지 알 수가 없다. ‘뒤죽박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살던 대로 살지 못한 데서 비롯된 혼란이다.
이제 '혼비백산'은 하지 않지만 여전히 '뒤죽박죽'이다.
이광수가 서구나 일본을 보면서, 동시에 조선을 보면서 느꼈을 감정들은 ‘현대인’들에게까지 마치 각인처럼 남아있다. 이광수의 ‘이상’이 우리에게는 ‘선진국’으로, 이광수의 ‘새로운 시대’가 우리에게는 ‘우리나라도 곧 선진국이 된다’는 희망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에게 참담했던 자신의 조국이 우리에겐 ‘헬조선’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원본’과 ‘복사본’의 구조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서, ‘근대’(서구)를 갖다버리고,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의 옛것’ 같은 걸 되살리자는 길과, 더욱 철저한 ‘근대화’를 외치는 길이 여전히 있다. 지긋지긋한 ‘양갈래 길’이다. 이미 통과한 곳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기에 두가지 길 모두 영영 불가능하기만 하다. 근본적으로 ‘실패’가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다면 새 길을 내는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근대’의 작동방식, 그것을 발생구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문학의 최고 목표가 ‘떠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떠난다는 것은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이미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중략)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게. 문학은 머물지 않음으로써 떠나고, 떠남으로써 타자와 만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한다.”
- 같은 책, 해제,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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