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동차의 뿡 하는 소리에 순영은 한 번 더 미안한 듯이 언니를 돌아보고는 다소 허겁지겁 대문 밖으로 뛰어 나왔다.
운전수가 운전대에서 익숙하게 툭 뛰어내려서 순영을 슬쩍 보고는 모자를 벗으며 자동차 문을 열고 그리고 올라앉으라는 뜻을 보인다. 순영은 어찌할 줄 모르는 듯이 잠깐 주저하다가 ‘이럴게 아니라’하는 듯이 얼른 귀부인의 위엄을 지으며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걷어 잡으며 자동차 자리에 올라앉았다. 털썩 올라앉을 때에 자리 밑에 있는 용수철이 들썩들썩 순영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그것이 순영에게는 퍽 유쾌하였다.
순영은 값가는 비단으로 돌라붙인 자동차 내부를 돌아보고 손길같이 두껍고 수정같이 맑은 유리창과 그것을 반쯤 내려 가린 연회색 문장을 얼른 손으로 만져 보고 그러고는 천장에서 늘어진 팔걸이에 하얀 손을 걸치고는 운전대 뒷구석에 걸린 뾰족한 칼륨유리에 꽃힌 백국화 한 송이를 바라보았다. 이때의 순영의 얼굴에는 흥분의 붉은 빛이 돌고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욕망의 오색 불길이 타올랐다.- 「연애의 시대를 읽는 소설, 이광수의 재생」,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101~2쪽
여주인공 순영은 둘째 오라버니인 순기의 부름으로 기숙사에서 순기의 집에 와 있는 참이다. 어디 데리고 가서 점심이라도 먹인다고 자동차를 불렀다는 말에 순영은 신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집에 남아있을 순기의 처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곧 자동차의 뿡 하는 소리에 허겁지겁 대문 밖으로 나온다.
나도 순영을 따라 차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다가 뿡 소리를 ‘들었다.’ 나는 눈으로 읽고 있으니 소리를 들은 순영과 달리 읽었다고 해야 맞겠지만,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이 뿡-소리를 분명 들었다. 뿡-. 요즘 자동차에는 이런 의성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차들은 분명 뿡-하는 소리를 냈다. 이 뿡 소리를 보는 순간 영화나 다큐에서 보았던 그 시대의 차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이 낯선 글자로부터 시작된 이미지는 아주 구체적인 차 모양새를 기억해 내는 것으로 넘어갔다. 지금이라면 클래식하다고 말할만한 모양새들, 묘하게 각진 모서리들이며 큐브 같은 생김새, 번쩍번쩍한 금박, 직선에 가까운 투명하고 큼지막한 유리창들, 무언가 묻으면 단지 걸레질만으로는 절대 닦아 낼 수 없는 진짜 천들로 둘러친 내부 같은 것. 저렇게 만들어진 것이 굴러도 가고, 속력도 제법 낸다니 귀엽고 신기한 마음도 든다. 지금도 예쁘게 보이는데 당시의 순영은 오죽했을까- 그렇지만 뒤를 더 읽어보니 순영과 내가 느낀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나는 저 부분을 읽으며 클래식 카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그리고 잘 만든 물건을 보았을 때, 그것이 잘 움직일 때 느껴지는 어떤 성취감 비슷한 것을 생각했다. 신문물을 접했을 때의 경이 같은 것도 생각했다. 자동차를 타면 소공동 근처에서 출발해 15분이면 청량리역에 닿을 수 있다. 말도 인력거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다.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렇지만 순영은 그와 다른 것을 보았다. 순영은 차에 담긴 부(富)를 느낀 것이다. ‘수없는 인류 중에서 오직 뽑힌 몇 사람 밖에 타 보지 못하는, 마치 왕이나 왕후의 옥좌와도 같은 그렇게 높고 귀한 자동차’를 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자동차의 주인이 되어 마땅한 사람인 듯한, 지금까지에 일찍 경험해 보지 못한 자기의 높고 귀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 감정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10년 동안 학교에서 P부인에게 배운 모든 도덕적 교훈을 이길 만한 큰 인상’이었다.
_순영아, 니가 원한 건 이런 거였니?
나는 순영이 아주 빠르게 자동차에 담긴 부를 읽어낸 것이 안타까웠다. 순영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건에서 부를 읽어내는 것은 화폐를 향해 질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그저 내달리게 한다. 나는 선주와 순영의 차이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쾌락과 환락을 즐기더라도 선주는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단지 그 욕망의 오색 불길에 휩싸인 순영은 계속 갈팡질팡했다. 그리고 애써한 선택을 후회하고 번복해가며 우물쭈물 이리저리 휩쓸려가 버리기만 했다.
지금 2010년대에도 현재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물건들이 차고 넘친다. 당시 사람들이라면 놀라 자빠질만한, 예를 들어 작은 다과상만한 아궁이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감탄하고 놀랄만한 물건들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더 빠른 속도나 더 선명한 화면에 더 똑똑한 것들은 물론이고 완전히 새롭거나 낯선 외관을 가진 것들이 나온다. 물론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도 계속 ‘새 것’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물건들이 어떤 쓸모나 재미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증명할 수 있다고 장담할 때이다. 당신이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이 가진 돈이 많다는 것을 이것을 소유함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할 때 말이다. 그것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너무나 유혹적이다. 달려들게 만든다. 내가 이것을 진짜로 원하는지, 이것으로 인해 내 삶의 어떤 부분들이 영향을 받게 될지는 가늠하지 않은 채 말이다. 당장 내 수중에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한다. 작은 크레딧 카드를 통해 일단 지금 갖고 싶은 것을 살 수도 있고, 여차하면 대출을 받으면 된다. 무이자도 있고, 여성이라면 더 큰 금액을 빌려줄 수도 있단다. 이유도 묻지 않고, 기록도 말끔히 지워준다고. 그들은 여전히 백윤희처럼 ‘젠틀’하고 ‘엘러건(우아)’하다.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모 카드광고의 씨엠송 가사는 그런 태도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웃으면서 사는 인생 자 시작이다. … 그걸 가져라"
나는 순영과 달리 어떤 실마리를 가졌을 뿐이다. 그 부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의미가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내가 친구들을 만나고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부를 해가며 몇 년에 걸쳐 얻은 것은 어쩌면 이것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욕망의 오색 불길'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물론 돈은 필요하고 때로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것 앞에서 나를 내던지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내가 아는 것은 이것 뿐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방법은 공부를 계속 하는 것 뿐이다. 그게 뭔지 알아내는 방법 중에 하나가 '공부'이므로.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계속탐구할 마음이 드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는 편이 좋겠다.
그 차를 탄 후 순영의 삶이 어찌 되는지는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을 통해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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