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화폐는 그 연결고리를 싹둑! 잘라 버린다."

삶의 핵심적인 한가지




문득 어떤 영화의 말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당장 ‘큰 건수’를 따오지 않으면 해고가 되게 생긴 스포츠잡지 <스포츠 아메리카> 의 광고 판매부서의 신(新)부사장 카터 두리에와 구(舊)부사장 댄 포먼이 결국 자동차 회사의 광고를 따낸다. 구 부사장 댄이 평소에 해온 정성어린 판촉과 임기응변 덕분이었다. 둘은 신나서 회사로 돌아가는데, 나이가 두 배 정도 많은 댄이 고속 승진 덕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부사장 카터에게 (그는 실은 정리해고를 위해 승진, 배치된 것뿐, 배치되기 전까지 광고 관련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광고를 따게 되어 아주 좋은 일이 뭔지 아느냐며 말한다. “It will improve his business”라고. 자기네 잡지에 광고를 실어서 매출이 늘 거라는, 광고 효과를 볼 거라는 말이었다. 카터는 순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며 말한다. “당신은 이 일을 믿는 군요.” 영화를 본 나 역시 그랬다. 영화를 본지 10년이 지났는데도 그 장면만은 기억이 났다. 이야기 안에서 그들이 큰 광고를 따 내서 해고라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적을 올리게 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댄은 자동차 회사가 자기네 잡지를 통해 광고 효과를 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광고를 따낸 것만큼의 큰 성취였다.

화폐가 무능한 건 그 지점이다. 살아 있는 한 누구나 일을 한다. … 거기에는 일과 몸, 일과 날, 일과 인생 등이 파동처럼 연결되어 있다. 화폐는 그 연결고리를 싹둑! 잘라 버린다.
-고미숙 지음,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북드라망, 265~266쪽


영화 <인 굿 컴퍼니>의 구(舊)부사장 댄 포먼(왼쪽)과 신(新)부사장 카터 두리에(오른쪽). 한국 포스터나 카피 같은건 믿지 마시길! (물론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주된 갈등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핵심을 비껴나간다. 예를 들어 공부를 왜 하는가?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약 12년을 공부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10년 넘게 하는 한가지 일이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만 다니는가 하면 것도 아니다. 비싼 돈 들여가며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한다. 왜 그렇게 긴 시간, 정성 들여 공부를 할까? 이유는 단 하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다. 지금 한국에서 "공부의 종착역은 대학"이다. 좋은 대학 가야 좋은 곳에 취직하고, 그래야 가정을 꾸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학은 본디 삶의 비전과 지혜를 탐구하는 곳이다. … 하지만 우리시대 대학은 이 영역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남은 건 오직 정규직에 대한 열망뿐!”(84쪽) 좋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그래야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으니까. 지금 사회에서 대학 진학은 “교육이 아니라 투자”(119쪽)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공부는 완전히 다른 이유를 갖게 된 것이다.

화폐는 그렇게 공부와 삶의 연결고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일을 하며 누릴 수 있는 관계와 핵심을 싹둑! 잘라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서 우리가 누리고 고민해야 하는 것들 대신 오로지 화폐, 그것만을 향해 돌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그것은 분명 중요하다. 일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는 임금, 돈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돈에 매몰되서는 일로 누릴 수 있는 성취도, 일을 통해 맺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도 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일에서 성취와 관계를 때어내고 화폐에 올인하는 순간 화폐는 “죽도록 노동에 헌신하게 하고 그 대가로 상품과 쾌락의 황홀경을 선사한다. 해서, 일을 하면 할수록 삶으로부터 멀어진다.”(266쪽)

돈은 분명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전부가 아니다!


현장의 이치를 떠나서는 결코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내가 일을 하는 이상 일이 가지는 현장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댄의 그 한마디는 카터와 달리 그가 자신의 일을, 현장의 이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10년도 전에, 아직 학생일 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내 일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면 했다. 화폐에, 숫자에 매몰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화폐에 중독되면 이 지점에서 맹목이 된다. 현장이 보이지 않고 돈의 액수, 화폐의 규모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화폐가 생명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멈춰 서는 것, … 과격할 것도, 급진적일 필요도 없다. “내가 왜 이토록 돈을 열망하지?”라는 질문 하나면 족하다.“
- 같은 책, 254쪽

“내가 왜 이토록 돈을 열망하지?”라는 질문 하나면 족하다.


카터는 결국 해고된다. 카터를 부사장 자리에 앉힌 회사가 <스포츠 아메리카>의 모회사를 다른 기업에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댄은 다시 부사장 자리에 복귀하고, 백수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카터에게 직장을 제안한다. 자기 밑에 들어와 일을 배워볼 생각이 없냐면서. 그때 카터는 거절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보고 싶다고 말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액 연봉의 직장에 들어가는 인생은 많은 사람들의 목표다. 카터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에게 삶에서 쫒아야 할 것은 성공이었고, 고액 연봉이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핵심적인 물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면 언젠가 선로를 이탈한 위기의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진짜로 잘 살려면 남들이 사회가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인지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좋은 답을 얻어내고, 내 삶을 잘 끌어가게 하는 것은 공부만한 것이 없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건 없다. 환난을 당했을 때 거문고를 켤 수 있는 공자, 그리고 그것을 담담하게 전하는 장자를 보라! 우리가 부러워하고 도달해야 할 경지는 바로 저기다. 왜 우리는 운명애를 누릴 수 없는가? 열정과 꿈이라는 망상에 휘둘려 화폐를 향해 질주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 지루한 패턴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존재의 심연에서 이런 외침이 터져 나온다면, 그것이 곧 생명주권의 발로다. 한데, 그러기 위해선 알아야 한다. 운명의 원리, 곧 존재와 시절이 마주치는 이치에 대하여.”
- 같은 책, 71~72쪽

그리고 그러한 물음에 답을 내기에 가장 좋은 길잡이&스승!!


황혼의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한 고미숙의 인문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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