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치료하는 마음
요즘 나는 음식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화기가 망가져서 한약을 먹게 되면서 못 먹는 게 많아졌다. 차갑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것들- 술, 해조류, 돼지고기, 그리고 밀가루가 들어간 온갖 것- 치킨, 피자, 빵, 튀김, 면 등등... 이제껏 뭘 가려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음식 앞에서 신중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신중해지기 위해 시끄러워졌다. 식사 때마다 “안 돼? 안돼!” 하며 절규(?)하는 나를 보고, 옆에 있던 10대 철학자 조정환 군. 피식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뭘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 나도 식이요법 해봤는데 사람이 못 할 짓이더라고요. 그냥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죽는 게 낫지.” 몸 좀 바꿔본답시고 무진 애 쓰는 척(?) 했던 그 모든 호들갑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난 왜 이러고 있지? 건강해지려고? 건강해져서 뭐하게? 오래 살려고? 이렇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나?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맥이 탁 풀렸다.
내가 왜 이렇게 어려운 식이요법을 하고 있었던거지?
『동의보감』 「내경편」, '신형' 앞부분에는 장수하는 사람과 요절하는 사람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건강에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눈과 귀가 번쩍 하는 이야기들이다. 근골이 튼튼하고, 피부가 부드러운 사람은 오래 산다. 반면, 근육이 없고 물렁물렁하고 피부가 뻣뻣한 사람은 일찍 죽는다. 맥이 느린 사람은 오래 살고 맥이 빠른 사람은 일찍 죽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 있다. 이 모든 것은 타고나는 것이다!
수명이 하늘의 뜻이라니! 꼭 정환이가 하는 말 같았다. “그렇게 애를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어떤 노력도 무용하단 말인가? 수명이 천명에 달린 거라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건가? 그렇지 않다. 동의보감에는 분명 의술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했다. 자기 몸을 돌보는 이를 위한 의서가 바로 동의보감 아니던가?
盡人事以副天意 則凶者化吉 亡者得存 未嘗令人委之於天命也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여 하늘의 뜻을 따르면 흉한 것도 길한 것으로 변할 것이고, 죽을 것도 살릴 수 있으므로 일찍이 생명을 천명에만 맡길 것만도 아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품부 받은 수명대로 살지 못 한다. 풍(風), 한(寒), 서(暑), 습(濕) 등 외사(外邪)에 감촉되거나, 굶거나 과식하거나 과로로 속을 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돌보는 것, 즉 의술이 중요하다. 그리고 의술을 펼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가 신명에 통하고 조화에 잘 대처하면 요절할 사람을 오래 살게 하고, 오래 사는 사람은 신선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신명에 통한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를 잘 파악한다는 뜻이다. 특히, 의사의 역할을 말해주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故上古聖人 嘗百草 製醫藥 乃欲扶植乎生民 各得盡其天年也.
상고시대의 성인은 온갖 풀을 맛보아 의약을 만들어서 태어난 사람들을 도와[扶植:튼튼하게 뿌리내려 살 수 있게] 각기 수명대로 살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나온 중국 상고시대의 성인은 전설 속의 황제 ‘신농(神農)’이다. 그는 태양의 신이자 농업의 신,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자편(赭鞭)이라는 신기한 채찍을 가지고 약초를 후려치며 약성(독성 여부, 냉온)을 알아냈다고 한다. 또 온갖 약초를 맛보다 단장초(斷腸草)라는 독풀을 잘못 먹어 창자가 끊어지고 썩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위앤커, 『중국신화전설1』)
신농은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졌다고 알려져있다.
동의보감에서 다른 세미나 시간에 배웠던 신농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특히, 신농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나왔기에 더욱 그랬다. 그 힌트는 바로 ‘扶植(부식)’이란 단어에서 얻을 수 있었다. 부(扶)는 ‘떠받치다, 돕다’란 뜻을 가지고 있고, 식(植)은 ‘뿌리를 땅에 심다’란 뜻이다. ‘扶植(부식)’은 식물에게 쓰지, 사람에게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낯선 표현은 신농의 배려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아야 살 수 있다. 사람들 또한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면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풍토에 따라 사람들의 체질이 다르지 않나? 부족 간 싸움이 빈번했던 시기의 황제 신농은 삶의 터전에 튼튼하게 뿌리내려 살고자 했던 정착민의 마음을 알아줬다. 신농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것과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은 같은 것이었다. 자신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이 순리대로 사는 것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병을 대하는 것은 복잡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은 식물을 북돋듯, 풀 죽어있는 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에 장수와 건강에 대한 비법을 알 수 있을까 하고 동의보감을 보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자연히 더 큰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몸을 치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치료할 때는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글_나경(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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