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삶'이라니까
돈을 많이 쏟아부으면 정치와 경제의 산적한 문제들 대부분이 풀릴 것이다. 문제는 쏟아부을 돈이 없다. 없나? 아니다. 아마 돈(과 재화)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차고 넘치게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가 하면, 누구는 세계의 명차들을 124대나 차고에 넣어둘 정도라고도 하고, 누구는 집 안에서 헬기를 타고 다닐 정도라고도 한다. 재벌들 이야기다. 그걸 보고 있자면, 솔직히 부럽다. 나도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종류의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다. 캐시미어 양말도 신고 말이지. 그것보다 더 부러운 것은 집이다. 헬기를 타고 다닐 정도의 집이이라니. 얼마나 조용할까. 그리고 그 집 안에 있는 티브이나 오디오는 얼마나 크고 좋을 것인가.
그리하여, 그게 부러운 나머지, 나도 그런 삶을 흉내낸다. 차도 사고, 집 안에 최신형 티브이와 오디오를 들여놓고, 가끔씩 최고급 한우를 사다가 구워먹기도 한다.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공허하다. 내 삶은 그저 흉내일 뿐 진짜가 아닌 것만 같다. 그래서, 자꾸 자꾸 헛 돈을 쓴다. 그러고보니, 그렇게 ‘헛’으로 쓸 돈은 어찌된 일인지 있다. 내 생의 불행이 모두 돈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지를때마다 그 돈은 어디서 나는 걸까?
어쨌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인의 욕망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아니,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동일하다. 파고들어가보면 가장 심층에는 언제나 ‘돈’이 놓여있다.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치와 경제의 무수한 문제들의 해결법도 ‘돈’에 달린 것만 같다.
이것은 하나의 환상이 아닐까? 역사적으로 인류가, 특히나 한국인이 이렇게 부유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하물며 우리집 가정 경제를 살펴봐도, 지금 현재 시점이 내 생애의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13인치에서 시작한 우리집 티브이는 20인치, 25인치를 거쳐 지금은 48인치다. 그런데도 티브이를 바꾸고 싶다. 집은 10평쯤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30평 아파트다. 그런데도 집이 좁게 느껴진다. 아니, 새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
뭐라고 해야할까, 편중된 부를 나누는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나의 욕망이 이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커다란 부를 나눠서, 모두가 계속 더욱 큰 티브이로 옮겨가는 체제, 재벌의 욕망을 복사한 듯 똑같이 공유하는 그런 체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무언가 바뀌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간지러운 곳은 거기가 아니다!
말하자면,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야』는 그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다. 어쩌면 ‘돈’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모두가 문제를 ‘돈’이라고 하는 이 체제를 문제 삼는다. 사실 이것은 전통적인 ‘계급론’의 관점에서 보아도 옳은 문제제기다. ‘모든 문제는 돈에 결부되어 있다’는 이른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어째서 피지배계급마저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가? 또는, 어째서 노동계급은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가치체제에 스스로 종속되는가?
재미있는 것은 나 스스로도 ‘돈’이 안되는 일을 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란 무엇인가. 개업한 친구네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거나, 폐지 줍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들이거나, 컴퓨터를 고치는데 애를 먹는 친구를 도와주거나 하는 일 등이다. 생각해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답들은 이미 우리 삶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게 잠재된 해결책들을 뒤로 밀고서, ‘바보야, 문제는 돈이라니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참 다행인 것은, 앞으로 세상이 더 좋아질 리가 없다는 점이다. ‘발전’을 기초로 하는 세계가 종언을 고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둘 중 하나다. 돌아가지 않는 ‘발전기’를 계속 돌리다가 파국을 맞이하거나, 조용히 발전기 없이 사는 삶을 준비하거나 말이다. ‘준비’는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겠다. 비발전적 지속의 요소들이, 앞서 말했다 시피, 이미 우리 삶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삶’이다. 공부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분야, 그러니까 ‘삶의 탐구’에 있어서 우리는 거의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리듬과 강밀도는 다 다르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무의식이자 욕망의 발로다. 즉 외부의 초월적 존재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몸의 ‘기·형·질’을 구성하기 위해 나 스스로 선택한 ‘존재의 패턴’이라는 것. 물론 그 과정에서 갖가지 편향이 발생한다. 지나치거나 모자라거나. 하기사 우주가 카오스인데, 어찌 사람이 모든 기운을 고루 갖출 수 있으랴. 한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팔자는 평등하다!
- 고미숙 지음,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북드라망, 2016,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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