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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

2015년 추석 연휴 마지막날 나누는 시 한편

by 북드라망 2015. 9. 29.



먼저 건네 보는 다정한 말





다정다한 다정다감(多情多恨 多情多感)


박성우


내 어머니도 ‘김정자’고 내 장모님도 ‘김정자’다
내 어머니는 정읍에서 정읍으로 시집간 김정자고
내 장모님은 봉화에서 봉화로 시집간 김정자다
둘 다 산골짝에서 나서 산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다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가 아까운 터에
봉화 김정자와 함께 정읍 김정자한테로 갔다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를 위해
간고등어가 든 도톰한 보자기를 챙겼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를 위해
시금시금 무친 장아찌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 내외에게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한 방을 내주었으나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 방으로 건너갔다
혼자 자는 김정자를 위해
혼자 자지 않아도 되는 김정자가
내 장인님을 독숙하게 하고
혼자 자는 김정자 방으로 건너가 나란히 누웠다


두 김정자는 잠들지도 않고 긴 밤을 이어갔다
두 김정자가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 소리는
아내와 내가 딸과 함께 자는 방으로도 건너왔다
죽이 잘 맞는 ‘근당게요’와 ‘그려이껴’는
다정다한한 얘기를 꺼내며 애먼 내 잠을 가져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이른 아침,
한 김정자는 쌀 씻어 솥단지에 밥 안치고
한 김정자는 화덕불에 산나물을 삶고 있다


『창작과 비평』 2015년 가을호(통권 169호) 153~154쪽



어떻게,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습니까? 아니면 연휴의 마지막을 보내고 계신가요?
북드라망은 오늘까지 쉽니다만(^^;;) 연휴를 좀 일찍 끝낸 분들이 계실까 하여, 시 한편을 나눕니다.


이 시를 처음 읽을 때 저절로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 속 풍경은 참으로 정겹습니다. 이름이 같은 노모 두 분이 만나 저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먹을 것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평화롭고 아늑하고 다정한 마음이 듭니다.


사실, 현실에서 저런 모습은 찾기 힘들기 때문에 더 좋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은, 만나면 반가운 건 잠시뿐, 얼른 헤어지고 싶어지죠(저만 그런 거… 아…아니죠…;;). 게다가 부모님이든, 형제든, 배우자든, 남의 부모님(, 형제, 배우자)께는 참 말투도 상냥하게 나가고, 그 사람 입장에 서서 먼저 배려도 척척 되는데, 우리 엄마·아버지(, 형제, 배우자)에게는 왜 그렇게 고운 말이 잘 안 나가는 걸까요. 내 걱정에, 나를 위해 건네는 말인 줄 알면서도 짜증부터 치솟고 맙니다.


하지만 또 사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위의 시에서처럼 밤을 새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진심으로 맞장구를 쳐줄 사람 하나를 꿈꾸고 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연인이었는지, 가족이었는지, 친구였는지, 어쩌다 만난 지인이었는지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그런 순간 하나쯤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추석 연휴를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돌아갈 준비를 하는) 오늘, 우리가, 아니 ‘내’가, 내 아내에게, 내 동료에게, 내 친구에게, 내 후배에게, 내 선배에게, 내 어머니께, 내 아우에게, 내 누나에게, 내 남편에게, 그런 사람 ― ‘그러니까요’ ‘그래서요’를 연신 이어가며 하는 말에 고개 끄덕여 주고 당신이 참 잘했다고, 당신이 참 힘들었겠다고 다정한 말 건네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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