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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그때 그 시집

‘서울’ 대학가 익명시 모음 『슬픈 우리 젊은 날』

by 북드라망 2015. 8. 31.


대학생활을 ‘상상’하게 했던 대학가 익명시 모음,

『슬픈 우리 젊은 날』




집에서 첫째인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가끔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려운 숙제를 도움받아 해오는 걸 볼 때도 부럽긴 했으나 그보다는 있어 보이는(?) 팝 음악도 많이 알고, 뭔가 수준 높아 보이는 책들도 읽고 하는 것이 더 부러웠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이렇다더라, 하는 정보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뭐랄까 하나하나 내 힘으로 내가 겪으며 깨쳐 가야 하는 고단함에 비해 손쉬워 보이기도 했고 더 유리해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정보는 오롯이 지근거리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나에겐 정보를 얻을 곳이 참 없었다(언니 오빠는 고사하고 나이 차가 얼마 안 나는 삼촌이나 이모, 고모도 없었고, 가까운 곳에 사는 사촌도 없었다). 그저 학교 수업시간에 언급되는 책들을 중심으로 읽어가며 나름의 독서 이력(?)을 어느 정도 쌓아가던 고등학교 때, 당시 ‘베스트셀러’인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 시집을 종종 들르던 동네 서점에서 내가 직접 샀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것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서울’ 대학가 익명詩 모음 208편”이라는 타이틀이 달린 이 시집은 무엇보다 언니 오빠 없는 내게 대학생활의 일부를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 시집은 지금 보면 편집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대학가 어디에나 있었던 잡기장과 벽의 낙서들을 채록해 ‘시’로 명명하고 엮은 것인데, 그 내용들이 당연히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고, 그 나이대의 감성을 반영하기도 하며, 또 웃긴 이야기, 공감되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등등 스펙트럼도 넓은 편이라 큰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아마 주로 이른바 ‘명문대’의 글귀들이 많은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채록한 글들을 편집하여 각 글마다 제목까지 붙이고 엮은 이 시집은 너무 잘 팔려서 다음엔 ‘지방’ 대학가에서 채록한 글들로 엮은 『슬픈 우리 젊은 날』2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도 대학가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잡기장’(‘날적이’)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과방에 가면 ‘잡기장’을 펼쳐 들고 그동안 누가 어떤 글(소회, 낙서…)을 남겼는지 꼭 보았다. 그리고 과마다 동아리마다 그 ‘잡기장’에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냥 동아리나 과 이름을 약간씩 변형한 곳도 있고, ‘넋두리’ 식의 이름을 붙여 놓은 곳도 있었다.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동아리방에 보관해 두었던 수년치의 ‘잡기장’을 쌓아 놓고 읽었던 기억도 있다. 당시 한 번 얼굴도 보지 못한, 당시로서는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80년대 초반 학번 선배들이 써놓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시집 아닌 시집 『우리 슬픈 젊은 날』에 실린 글을 몇 가지 소개해 보자. 


톱니바퀴보다 강하게 얽힌
우리의 단결은
이 모든 시련을 깨치고
우리의 세상을 마침내
구현하리라
투쟁은 곧 삶이다.
너무도 가슴벅찬
흥겨운 삶이다.
삶에의 욕망이고
투쟁은 “살고 싶다”이다

― 고려대 판화·만화서클 ‘그림마당’ 스케치북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는 것 결사반대!
희망찬 미래를 갖지 못한 인간은 결사반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은 결사반대!
희망도 꿈도 없는 사회는 결사반대!
봉건적 연애관 사랑관을 갖고 있는 인간은 결사반대!
썩어빠진 자본주의 여성관을 가진 여성은 결사반대!
똑바른 것, 건강한 것, 진보적인 것, 해방을 향한 것 등을
부추켜 세우고 살찌우고 굳게 세우는 것 등은 결사지지!

― 고려대 문예서클 ‘문예사랑’ 낙서장


인간은
혼자
혼자
혼자

― 서강대 불문과 낙서장 ‘나눔터’





단체 날적이와 술집벽이나 학교 화장실 벽 등에 쓰인 글귀가 뭐 그렇게 대단하겠는가마는, 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20대라는 혈기왕성한 나이와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의 정체성이 어우러진 글귀들은 최소한 당시 고등학생을 사로잡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며칠 동안은 이 시집을 붙잡고 밤마다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지금이야, 뭘 그렇게 여러 번 볼 게 있었을까 싶지만;;;). 그래서 80년대 후반 어느 고등학생의 일기장에는 이 시집에 실린 이한열, 김석만, 이석규, 데모, 투쟁, 해방, 자유 등의 단어와 사랑, 술, 자아, 부끄러움, 너, 만남 등의 단어가 같이 쓰였고, 그 단어들은 곧 그에게 ‘대학’이기도 했다. 그리고 2년 뒤 들어간 대학은, 돌이켜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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