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GLENN GOULD
화나고 분노로 치솟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었다. 그 불같은 감정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며 장문의 이메일을 상대방에게 쓰고 있다가 문득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든베르크 변주곡 1번 아리아를 틀어놓고 메일을 쓰다가 어느 순간 내 글이 쓰레기처럼 생각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뭔지 모를 것들이 하나 둘씩 가슴속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절로 분노의 메일 쓰기를 멈춘 나는 무릎을 꿇고 스피커 아래에 머리를 처박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날 밤 셀 수 없이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마침내 그 감정들을 내려놓게 되는 나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후부터 감정을 내려놓아야 할 때면 어김없이 이 음악을 듣게 된다. 신기하게 내려놓아진다. 자기배려에 관한 푸코의 마지막 강의록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요즘, 바하의 음악들이 자기배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하여 추천하는 바이다.
바하의 음악들은 자기배려에 도움이 되고, 글렌 굴드의 음악은 감정들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된다.
아리아는 첫 마디에서부터 이 곡에서 가장 높은 음을 우아하게 피어내며 시작된다. 바하의 골드베르크의 32개 변주곡 중 1번 아리아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불멸의 피아노 연주자 글렌 굴드는 바하의 음악이 가장 모던하며 아름다운 음악임을 증명한 연주자이다. 굴두는 경이와 고요함이 음악적 경험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평생에 걸쳐 추구하였고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단지 순간적인 경험이 아니고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신성함을 그들이 관조적으로 창조해 낼 수 있도록 그들을 자각시켜야 하는 것이다.” 굴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나는 깊은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중단할 때에 진정으로 온건한 스스로의 자기가 되는데 실패하면 인간의 정신과 관계에 위험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또한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탈퇴한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성취는 무아경적 상태의 촉진이다.”
천박한 행태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아함을 지켜가야만 한다. 바하를 들으며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Tip : 글렌 굴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와 책
<글렌 굴드에 관한 32편의 짧은 필름 (Thirty Two Short Film About GLENN GOULD)>
a film by François Girard
<The Goldberg Variations> a film by Bruno Monsaingeon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에 관한 불멸의 레코딩 연주실황 다큐필름. 부루노 몽생종은 평생에 걸쳐 글렌 굴드와 교류하며 그에 관한 다수의 인터뷰와 책을 남겼다.
<Glenn Gould HEREAFTER> a film by Bruno Monsaingeon
글랜굴드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강당에 모여 포터블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골드베르크 1번 아리아를 듣는 표정들과 장면이 너무도 인상적인 다큐영화
글_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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