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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임신 중 금기

by 북드라망 2015. 5. 28.


금기는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 톰은 이모인 폴리에게 매번 치는 장난 때문에 꾸지람을 듣기 일쑤다. 그 때문에 벌서는 날도 많다. 어느 날, 울타리에 페인트칠하라는 이모의 말에 잔뜩 심통이 난 톰이 툴툴거리며 칠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친구 벤이 또 벌을 받고 있느냐고 놀린다. 그러자 톰은 페인트칠이 너무 재미있고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없는 것처럼 몰두하는 시늉을 한다. 눈이 휘둥그레진 벤은 같이 칠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톰은 이모의 안목이 몹시 까다롭다면서 짐짓 안타깝다는 듯 너는 페인트칠에 소질이 없어 보인다고 벤을 약 올린다. 그러자 벤은 안달이 나서 페인트칠을 하고 싶다고 조르며 톰에게 선물까지 바친다. 톰은 그제야 마지못해 소원을 들어주는 척하며 벤을 페인트칠하는 데 끌어들인다. 평소의 벤이라면 털끝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페인트칠이 “너는 할 수 없는 일이야”라는 톰의 말에 매력적인 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금기에 대한 반동? 저항?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해보고 싶은 마음. 이것을 반동심리 혹은 저항심리라고 한다. 이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톰은 자기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 페인트칠을 끝낼 수 있었다. 헌데 이 반동심리를 이용하면 큰일 나는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임신 중일 때다. 임신을 하면 금기사항이 많다. 집안에 어르신이라도 있으면 이 사항은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찬 거 먹지 마라, 뾰족한 데 앉지 마라, 험한 데 가지 마라 등등. 온통 하지 마라 투성이다. 그 많은 걸 지키자니 힘들고, 안 지키자니 께름칙하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가? 임신 중에는 왜 그렇게 금기사항이 많은지, 왜 그런 걸 금기하는지 말이다.



임신 중 금기사항이 많은 까닭


임신 중 금기사항을 따지기에 앞서 금기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자. ‘금기’(禁忌)는 신성한 것을 위해 부정한 것의 접촉을 꺼리거나 두려워 피하는 행위다. 왜 꺼리고 피하냐고?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신성한 것을 더럽히고 어떤 화(禍)가 몸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기의 중심에는 목욕재계가 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한 상태로 보존함으로써 나쁜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때 금기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보장될 어떤 결과를 끌어낸다. 그 보장은 청정, 맑음, 깨끗함이다. 따라서 금기에는 ‘안전과 보장의 원리’가 있고, 소극적 의미의 제의, 주술적인 면이 있다.


임신은 신성한 것, 곧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우주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이 조응한다. 자연의 운행과 기운은 인간의 기운에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인간의 운세를 좌우한다. 그러니 태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금기가 소극적 제의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띠고 줄줄이 나열된 것이다.



금기 안에 있는 긍정



금기에는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금기의 역량은 부정하는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을 몰아내려는 운동성에 있다. 그렇다. 금기=부정이 아니다. 금기 안에 있는 긍정. 우리는 그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 금기를 그대로 답습해서 응, 이거 하지 말라 그랬어, 해버리면 금기 안에 있는 긍정적 의미는 다 사라지고 당위적인 행위만 남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수동적 신체가 되고 만다. 그 안에 있는 이치를 깨달았을 때, 그 안의 질서를 인식할 때 그 인식의 필연성 때문에 금기를 긍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속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 그런 걸 금기하는가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동의보감』에 나열된 임신 중 금기사항을 보자.


임신이 된 뒤에는 절대로 교합을 하지 말아야 한다. ○ 임신부는 절대로 술을 마시거나 술로 약을 타 먹지 말아야 한다. 술은 모든 맥을 흩어지게 해서 여러 가지 병을 생기게 하므로 물만 써서 달여 먹는 것이 좋다. ○ 임신이 된 뒤에는 절대로 태살(胎殺)이 있는 곳에서 노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만약 이웃집이 보수공사를 한다면 또한 마땅히 피해야 한다. 『경(經)』에서는 “칼에 상하면 태아의 몸에 상처가 생기고, 진흙을 잘 못 다루면 태아의 어느 한 구멍이 막히며, 무엇에 부딪히면 태아의 살빛이 검푸르게 되고, 허리를 몹시 졸라매면 태아가 경련을 일으키며, 심하면 임신부까지 죽는데, 반응이 손바닥 뒤집듯이 빨리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52쪽


『동의보감』에는 임신 중 금기사항을 크게 세 가지 꼽는다. 임신 중에 성교하지 말 것. 술을 마시지 말 것. 살기(殺氣)가 있는 곳에는 가지 말 것.


먼저, 임신 중 성교하지 말라는 건 왜일까? 우리 몸에서 형태를 이루고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물질적 기초가 되는 것은 정(精)이다. 여기에는 혈액과 타액을 비롯한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포함된다. 이것은 생식기능과 인체의 생장 발육을 촉진한다. 또 외부에서 침투하는 각종 좋지 않은 요소의 영향을 막아내어 질병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한다. 이 때문에 정은 정상적인 생장, 발육을 돕는 것은 물론, 면역 능력을 키워준다. 헌데 이 소중한 정을 성교로 써버리려 하는가? 더구나 임신 중이라면 그 여파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임산부의 몸은 태아를 만드는 장소인 자궁으로 중심이 옮겨간다. 이는 새롭게 몸이 세팅되는 중이라는 뜻이다. 태아에게 영양공급이 잘 이뤄지는 몸으로, 자궁의 운동성이 촉진되는 몸으로 바뀐다. 이때 임산부가 보유한 정은 태아에게 공급되고 자궁은 예전보다 훨씬 민감해진다. 하여 임신 중 성교는 태아에게 공급되어야 할 정 부족사태를 불러온다. 또한, 민감해진 자궁 때문에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커진다.


일반적으로 산부인과에서는 건강한 여성의 경우 임신 마지막 4주 전까지는 성교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금기가 가지고 있는 안정과 보장의 원리를 되새겨 본다면 욕구를 절제할 필요가 있다. 임신 중이 아니더라도 『동의보감』에는 남녀 간의 성교를 절제하여 정을 보호하라고 강조한다. 성교를 지나치게 하면 사람의 정기(精氣)가 새어 나가기 때문이다. 정기가 소진된 사람은 자기 몸을 지탱할 수 없다. 정기는 신장에 감추어져 있는데 신장은 골수를 만들고 골격의 성장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살리는 생명수가 말라버린 한없이 궁핍한 존재! 이런 몸으로는 임신이라는 태어난 자의 천명을 이룰 수 없다. 생명수가 없는 곳에 생명은 싹틀 수가 없지 않은가.>


생명수가 없는 곳에 생명은 싹틀 수가 없다.



두 번째 금기, 임신 중 술을 먹지 말라는 건 왜일까? 『동의보감』에는 술의 성질을 이렇게 말한다.


날씨가 몹시 추워서 바다가 얼어붙는다고 하여도 술만은 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술의 성질이 그 무엇보다도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을 마시면 갑자기 몸을 잘 쓰지 못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이것은 술에 독기가 있기 때문이다.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855쪽)


술은 강력한 양(陽)의 성질을 가졌다. 뜨거운 양기로 혈맥을 통하게 해주는 데는 최고로 치는 약이다. 헌데 이 강력한 양의 기운이 이제 막 응축하여 피어나는 태아에게 작동하면 어떻게 될까? 발산 기운이 곧바로 작용하면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술에 있는 독기가 태아의 성장에 이상을 초래한다. 술에 들어있는 에탄올은 강력한 기형유발물질로 밝혀졌다. 이것이 태아의 성장에 제한을 줄 수 있고, 얼굴 변형, 중추신경계 기능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음식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음식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말해준다. 술이 내 몸을 살리는 약이 되려면 때를 알아야 한다. 내 몸에 강력한 양기가 필요한 때는 언제일까? 옛사람들은 자연의 원리를 따라 살았기 때문에 내 몸의 윤리 또한 거기에서 나왔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해가 떠오르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것이다. 해는 만물에게 양기의 원천이다. 이 양기의 변화에 따라 수면과 기상, 음식을 섭취하는 때를 안배한다. 이 원리가 내 몸의 윤리였다.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원리인 해의 변화를 따르라.



지금 우리가 힘써 행해야 할 것은 이러한 윤리의 회복이다. 자연의 필연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는 몸! 하여 몸의 윤리는 자연의 원리를 알고 내 몸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임산부는 지금 생명을 창조하는 중이다. 엄청난 몸의 변화를 겪고 있다. 자연과 몸의 흐름을 때마다 살피는 것, 그것이 임산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윤리적 덕목이다. 임신 중에는 술을 먹지 말라고? 먹지 마라니까 안 먹어야지 그냥 수긍할 텐가, 아니면 먹으면 어때하고 반항할 텐가. 임산부에게 그건 자연의 원리도 아닐뿐더러 때에 맞는 윤리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보다 더한 자연파괴는 없는 듯하다.


세 번째 임신 중 금기, 이것이 가히 걸작이다. 태아를 해칠 수 있는 기운을 피하라는 것. 『동의보감』에서 예를 들고 있는 이웃집 공사장을 떠올려보자. 공사장에는 태아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 사용하면 성인 남자도 해칠 수 있는 장비들로 가득하다. 거기다 소음과 먼지, 웅덩이까지. 태아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들이다. 태아는 아직 자신의 형태를 다 갖추지 못했다. 아직 음과 양, 오행의 기운이 구분된 상태가 아니다. 이제 차츰 임산부의 경맥을 통해서 오행의 기운을 받아 형태를 만드는 중이다. 하여 임산부가 부정한 기운에 접촉되면 그 기운을 태아가 받는다.


한의학에서는 기(氣)가 모여 형(形)을 만든다고 본다. 그러니 칼의 기에 상하면 형도 칼에 베인다. 진흙의 기에 상하면 형에 난 구멍이 막힌다. 어딘가에 부딪혀 타박상을 입게 되면 그 기로 피멍이 들어 검게 된다. 이 기운은 태아에게 간다. 그러고 보니 태살을 피하라는 것은 태아를 보호하면서 임산부를 보호하는 조처다. 신성한 생명을 창조하는 몸이니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따라서 임산부는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능력, 코나투스(conatus)를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능력의 확장은 기쁨을 주는 신체와의 만남에서 생기고, 능력의 감소는 슬픔은 주는 신체와의 만남에서 생긴다. 그러니 임산부여! 태살을 피하라. 그리고 기쁨을 주는 신체, 태아와 만나라.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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