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활보 시즌 투 : '활보'하는 백수들
K 언니와 헤어지며
5월의 마지막 날이던 지난 주 토요일, 3개월간 해왔던 이용자 K언니와의 활동보조 일을 그만뒀다. 사실 딱히 허전하거나 슬프지는 않다. 여중을 다니던 시절, 교생실습이 끝날 때 반 아이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했다. 그렇게 친한 친구들이 울 때도,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아주(!) 고생을 했다. 딱히 눈물이 없는 편도 아닌데, 헤어짐에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헤어짐은 슬프진 않아도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3개월간 해왔던 일들과 생각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활동보조를 그만두거나 시작하는 일은 활동보조를 알선하는 센터와 관련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활동보조인들은 월말마다 일지를 제출해야 하기에, 센터 출입이 꽤 잦은 편이다. 지난 달 일지를 내러 가서 5월 말에 그만둔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담당하는 코디 분이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혹시 이용자와 싸웠어요? 무슨 문제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황하며 “아니요. 그냥 제가 일주일 내내 일하려니 힘들어서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코디 분은 내가 뭘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재차 물었고, 별 일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야 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코디 분은 활동 보조 이용자와 활동 보조인 사이에서 관계 문제가 많이 발생하며, 대다수의 사람이 이 문제 때문에 활동 보조를 그만두게 된다고 했다. 그만큼 활동보조에 있어 핵심은 바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번 활동 보조를 하는 내내 나는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우리,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내가 활동보조를 했던 K언니는 중증장애인이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없고,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나는 K언니와 주말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함께 보냈다. 같이 밥을 먹고, 언니에게 영어와 수학을 잠깐씩 가르쳐주고, 같이 TV를 보고, 한방 치료를 받은 후 장애인 택시를 타고 같이 들어오고, 같이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사오고, 신변처리를 했었다. 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구의 밥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없었다. 장애인 택시라는 것을 타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사실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걱정했던 신변 처리 역시 생각보다 할 만했다.
오히려 내가 힘들어 했던 것은 이용자 언니와 7시간을 꼬박(!) 함께 보내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언니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거의 24시간 활동보조와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언니가 필요한 일이 있을까봐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시급을 받는 노동자로서 느끼는 의무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건 이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누구와도 그렇게 긴 시간동안 온전히 한 방에서 (잠을 자지 않고) 보내본 적이 없다. 불편한 사람과 있는 것을 죽도로 싫어하기에 그런 자리는 할 수 있는 한 피해왔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누군가랑 있다가 불편해지면, 적당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혹은 변명거리를 만들어 자리를 피했다. 그동안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관계 맺는 일에 능숙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부족하지도 않다고 스스로 자신해왔다. 그러나 활동보조를 하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는 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나에게 속고 있었던 것이다. 활동보조는 내가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를 맺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수 시간을 함께 있다 보면 정말 수많은 감정들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사소한 일에서부터 발생한다. 바꾼 휴대폰을 자랑하는 언니의 말에 하루에 한 번씩 배터리와 상관없이 꺼지는 내 휴대폰을 보면 화가 난다. 사실 활동 보조를 하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쪼잔한 일에도 화가 나는지 몰랐다. 그런 감정들이 일어날 때면 곧장 다른 일들로 관심을 우회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활동보조를 하면서는 이렇게 올라오는 감정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감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평소에 언니가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 번 이야기가 터지면 30분을 듣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관심 없는 이야기가 3분 이상 지속되면 서서히 동공이 풀리고, 습관적으로 “응, 네”를 반복하며 영혼없는 리액션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말은 그냥 소리가 되어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내 상태를 본 언니는 다음 말을 망설이며 대화를 흐지부지 끝맺곤 했다.
마지막이 돼서야 나는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철저히 일이라고 생각했다. 20살이 됐으니 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었고, 또 독립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내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일이 바로 활동보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 일이 단순히 노동과 화폐를 교환하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물론 활동보조는 봉사가 아니며,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일자리 사업이다. 그러나 이 일의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고용-피고용 관계를 넘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일을 서서히 하면서 K언니는 단순한 고용주가 아니라 점점 잘 아는 언니가 되어갔다. 언니를 휠체어에서 내리려면 언니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고 내 가슴쪽으로 바짝 끌어당겨서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 들어서 침대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럴 때면 정말 생생한 한 명의 생명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긴장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녀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말하면 ‘생생’했다.
지난 주말 장애인 야학인 노들야학에서 급식 제공 후원을 위한 일일 호프를 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장애인 분들이 많이 모여있는 풍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연구실 언니들의 활동보조 이용자들과도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는데, 매우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인 이용자를 둔 한 언니는 그분의 말을 알아듣고, 한 언니는 이용자의 기호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알 수 없었다. 다른 활동보조인들이 만약 K언니와 만난다면 그녀의 기호도 취향도 습관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일이 특이한 점은 바로 그것이다. 이 일은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물론 사정에 의해 활동보조인은 교체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어도, 바로 다른 사람을 투입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언제나 똑같은 공장의 생산과 달리 이 일은 활동보조인이 바뀐다면 전혀 다른 일이 된다. 저번 주 장애학 세미나에서 『여/성노동 가치를 말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해 다루는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돌봄노동은 단순한 화폐 이상의 것을 생산한다. 그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정(精) 등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 일은 매뉴얼이 정해져 있지 않다. 활동보조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나는 여태껏 타인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서부터 하나 하나 물어보아야만 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이것은 새롭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공부였고, 일종의 훈련이었다. 활동보조는 이처럼 단순히 돈을 버는 이상의 것들을 생산한다. 나는 관계 맺어온 습관을 알게 되었고, 또 지금도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질문하게 해주고, 고민하게 해 주었다는 것. K 언니와 헤어지며 이 점이 K 언니에게 가장 고맙다.
글_민경
'생생'했던 관계를 통해 고민하고, 질문하게 해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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