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활보 시즌 투(2)
'활보'하는 백수들
북드라망 블로그에서 절찬리에 연재되었던 ‘활보 활보’를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필동 활보계의 마고할미와 같은 존재가 되신 ‘활보’(장애인활동보조의 줄임말이지만 여기서는 ‘호’처럼 읽어주셔요^^ 율곡 이이처럼요!) 정경미 선생님과 J, S, H와의 ‘한 몸인 듯, 한 몸 아닌, 한 몸 같’았던 활동이 ‘코믹 활보극’으로 펼쳐졌었지요(그리고 『활보 활보: 초보 장애인활동보조의 좌충우돌 분투기』로 나온 거 다들 아시지요?^^). 세상에나 만상에나, 활보해서 몸 좋아져, (적으나마) 돈 벌어, 글 써서 책도 내, 라는 소문이 퍼져서인지(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의 청년 백수들 사이에 ‘활보’가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지 뭡니까. 이제 한 달에 한 번, 요즘 보기 드문 청년들의 활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활보'하는 '백수'들
작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던 사람들. 혹은 연구실에서 마주쳐도 짧게 인사만 하고 지나갔던 몇몇 사람들과 올해 들어 부쩍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아… 이야기의 주된 주제는 공부가 아니다.(^^;;) 한 달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이용자는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 그와 만나 무슨 일을 하는지, 일터가 어느 동네인지 시급은 얼만지 등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알아먹지 못 할 이야기들을 한다. 이 디테일한 정보를 나누는 게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수'였던 사람들. 우리는 지금 장애인 활동보조, 일명 '활보'를 하고 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와 정경미 선생님 이렇게 둘 뿐이었는데 어느새 장금성의 민경이와 영은이, 곰집의 관식이와 준오, 풀집의 희정이와 한라, 강학원의 다영이와 범철, '백수다'의 윤희, 감이당의 능금샘까지 합류하였다. 활보가 이렇게 많으니 이용자만 있으면 센터를 하나 차려도 되겠다는 농담이 오고갈 정도로 꽤 덩치 큰 '조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제로 무슨 조직은 아니다. 다만 알음알음 서로 일을 소개해줘 이용자를 공유(?) 하고, 장애학 공부 모임을 꾸리기도 한다. 때때로 연구실이 아닌, 이를테면 지하철 환승 통로, 혜화동 횡단보도나 명륜동 마트 앞, 노들 야학의 주방 등 뜬금없는 곳에서 학인들을 마주치곤 한다. 그럴 땐 우리가 마주하는 시공간이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백수들이 활보를 하게 된 걸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고 있는 걸까? 각자의 사정이 알고 싶어졌다. 현장에서 무엇을 겪고 있는지 조금씩이나마 묻고 기록해두면 재밌는 이야기꺼리가 되겠다 싶었다. 마침 활보 이야기를 돌아가며 써 보면 어떻겠냐고 영대가 제안을 했다. 현재 나는 활보 1년차, 세 명의 이용자를 보좌하며 한 달에 170시간이란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다. 요즘은 연구실에서 '활보계의 갑부', '활보계의 대모'란 어울리지 않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 때문인가? 내가 맨 먼저 총대를 메게 되었다.
백수의 변신! 지켜봐주세요~!
활보, 마음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일
장애인 활동 보조는 시설이나 부모님집이 아닌 스스로 독립을 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보좌'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경우에 따라 장애인 이용자가 자기부담금을 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 준다. 보통 활동보조인들은 이를 중계하는 자립생활센터나 사회복지관에 등록하여 고용이 된다. 임금을 시급의 형식으로 받고, 근무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르바이트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4대 보험이 적용되고, 단기 계약이 아닌 장기 계약을 염두에 두고 고용이 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직업'으로 만들어졌다. (활보들 사이의 연대조직도 부족하고,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기엔 아직까지 시급이나 근무 조건이 미비하긴 하지만 말이다.)
활보는 그동안 청년 백수들에게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는 아니었다. 백수들이 알바를 구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통로가 알바 중계 사이트나 길거리 전단인데, 활보는 그렇게는 구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 활보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기도 하다. 또 일의 성격상 가사에 상대적으로 미숙한 청년들보다는 돌봄 노동에 익숙한 어머님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밥이나 청소, 빨래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느 가사 도우미와는 다른 점은 이용자와의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이용자들은 가사일 외에도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야학공부를 하고, 데이트를 하거나 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난다. 이 때 활보는 이용자와 동행을 한다. 목욕을 할 때나, 물리치료를 받을 때나,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나, 어떨 땐 쉬거나 자는 시간을, 그러니까 거의 모든 일상을 이용자와 활보는 공유한다. 때문에 마음이 틀어져버리면, 그러니까 같이 있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절대로 이 일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활보 일은 나한테 줄곧 수련의 장이었다. 나는 이제껏 학생 또는 백수였고, 남편이 있어 본 적도 없었기에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편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는 것, 특히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무얼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채는 게 서툴렀다. 군말 없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일 년 동안 꽤 많은 위기의 순간을 모면했다. 이용자 언니와의 관계가 무르익기 전에 먼저 안정적인 노동 조건 운운하다가 일을 그만둘 뻔 했고, 이용자가 편애(?)하는 다른 시간대 활동 보조와 기싸움을 하다가, 혹은 비교를 하다가 허무하게 짤릴 뻔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고개 숙이고 사죄를 했기에 근근이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일 년 동안 호흡을 맞춘 이용자 H양에게 처음에 비해 많이 순해졌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다.(;;;) 나는 활보 일을 통해 관계의 초식을 걸음마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에… 유쾌하게 전할 날이 있기를 바란다.
나는 왜 활보를 하는가?
얼마 전 이용자 J와 왜 활보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활보를 알게 된 계기, 그리고 활보를 하면서 좋았던 점에 대해 한참 초점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J는 딱 잘라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결국, 돈 때문에 하는 거구나!”
그랬다. 나한텐 돈이 필요했다. 그들이 자립 생활을 하듯이 나 또한 자립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J에게 설명하진 못 했지만, 돈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게 뭘까? 공부를 중심으로 일상이 구성되는 감이당에서 그 동안 내가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공부를 더 해라”가 아니라 “몸을 움직여라”, “일을 해라. 네가 살 길은 일이다”였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침체가 되기 일쑤인 음적인 나의 성향 때문인지 가만히 앉아서는 도무지 마음잡기가 쉽지 않았다. 공부도 잘 안 되었고, 글도 잘 안 써졌다. 그런 면에서 활동 보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게 전환점이 되었다. 밥을 해 주면서 그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움직이면서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잇도록 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 소중한 현장을 앞으로도 꾸준히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공간을 만나면서 앞으로도 쭉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밥을 해 주면서 그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움직이면서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잇도록 하는 동력이 되었다."
글_효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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