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가 좋다 ]
정화 스님, 질문 있어요!
저(편집자 k랍니다. 흠흠;;)의 소박한 취미 중 하나는 1~2주에 한 번씩 다음 미즈넷에 들어가 특정 게시판을 역주행하는 것입니다. 뭐랄까요, 삶의 다양성이 피부로 느껴지는 게시판이라고나 할까요? 게시판 정독을 시작한 지 7~8년쯤 되어 가는데(흠흠;;;) 도무지 끊을 수가 없게 되었거니와 어떤 경향 같은 것을 파악할 수까지 있게 되었지요. 대표적인 것이 최근 한 2년 사이 “남편과 같이 봅니다. 조언해 주세요”와 같은 유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서로 신나게 싸우고는 서로의 잘잘못과 자기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터넷 게시판에 묻고 있는 겁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진지하고 성의 있게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도 있지만 (대개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여) 어느 한쪽에 대한 일방적인 맹비난과 (막말하면 알아주는 저조차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달아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땐 당사자들의 사연보다,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성을 객관이라 믿으며 답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라이브 게시판’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남산의 필동에서는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인들이 정화 스님 앞에 모여 차담 시간을 갖습니다. 차담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학인들의 ‘고민 자랑’과 정화 스님의 명쾌한 해답입니다. 당당하게(라기보다는……, 그래요) 용기 있게 자신의 고민을 드러내고, 고민자는 물론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고민과 해답을 모두 자신들의 공부거리로 삼습니다. 이제 그 자리를 북드라망의 독자님들과도 공유하려 합니다!
1. 마음이 잘 토라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Q “감정이 일어나면 흘러가지 않고 계속 뭉쳐요. 자꾸 다른 사람에게 삐지고, 그게 분노로 표출되는데,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사소한 일에도 자꾸 토라지는 마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님은, 질문한 학인에게 우선 자기 자신에게 ‘축언’하는 것을 해보라고 하셨다. 평소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나 지금 잘 하고 있는 스물다섯 가지를 써서 아침·저녁으로 10분 이상 낭송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스님은 왜 축언을 하라고 하셨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한테?
스님: "자기 존중감이 없으면 타인의 평범한 말조차 나를 다치게 하는 말로 듣는 경향이 커요. 그래서 화가 나는 거예요."
화내는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매일 자신에게 축언을 하면 마음 속 긴장이 풀린다.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타인에게도 관대하게 되어 화가 나지 않게 된다.
두 번째로, 스님은 일상 속에서 호흡을 관찰하라고 하셨다. 호흡을 관찰하면 평정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그 중에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우울하고 화를 내게 하는 노르아드레날린이 있다. 이 둘은 모두 마음을 들썩거리게 한다. 반면 세로토닌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호흡관찰을 하면 이 세로토닌이 온 몸에 퍼지게 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화가 날 때, 우리는 쉽게 상대방을 탓하는데 익숙하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화를 내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것이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자신에게 하는 축언’, 그리고 ‘호흡 관찰’을 통해 나에게 올라온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사건에 들러붙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하셨다.
2.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요?
Q “왜 저는 타인의 반응에 무심할까요? 무력증에 빠진 걸까요?”
5년 전 직장생활을 그만두신 한 학인의 요즘 일상은 108배, 참선, 그리고 공부가 전부라고 한다. 그 덕분인지 쉽게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다. 예컨대 곧 돌아올 유학간 아들이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다든지 옆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심이 안 간다든지 등. 그녀는 자신이 너무 타인에게 무관심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이것이 혹시 무력증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스님: "24시간 중에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느낌이 더 많이 들면 무력증으로 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무력증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
학인: 그렇진 않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스님: "꼭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어요."
학인: 너무 관심이 없으면…
공부하고 수행하는 데 재미를 붙이며 잘 살고 있음에도 그녀는 왜 불안함을 느꼈을까? 어쩌면 남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다소 편협한 기준을 세우고, 삶에 등수를 매기는 데 익숙하다. 이를테면 요즘 시대에 광고는 그러한 기준을 만들고 강화시킨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베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다. 그녀 또한 남들에게 베푸는 ‘보살행’을 잘 사는 삶의 표준으로 설정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의 기준은 없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저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을 뿐이라고. 이를테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독각승’이라고 한다. 꼭 타인에게 베푸는 ‘보살행’만 깨달은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좋은 삶’, ‘좋은 사람’에 대한 표상으로부터 벗어나서,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스님은 들뜨지 않고 덤덤하게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 윗사람과 소통이 어려워요
Q “요즘 갑을 관계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甲인 교장선생이 乙인 교사에게 부당 행위를 할 때, 乙인 교사 입장에서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는 27년째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 교장 선생님과의 마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교장 선생님은 교사들을 꼭 학생을 다루듯 했는데, 종종 인격 모독적인 말을 했다. 그 수위가 지나칠 때마다 그녀는 참지 않고 의사표현을 했다. 반면 다른 교사들은 교장 선생님과 직접 부딪치기를 꺼렸기 때문에, 그녀는 교장 선생님의 눈에 가시였다. 한 마디로 ‘찍힌 것’이다. 질문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의사를 교장 선생님한테 전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상사에게 하고픈 말 전하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스님: "동료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굉장히 힘이 들 겁니다. 그런 만큼 이야기를 하는 때와 장소를 가리고, 어느 수준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자기가 먼저 잘 알아야 해요.
교장 선생님한테 반론을 제기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교장선생님이 권위적이라고 전제를 하면 허심탄회한 대화가 되지 않고, 반발심이 올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감정을 내려놓고 의사전달을 담담하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정화스님은 소통의 달인들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보면, 권세가들은 자신의 집에 계층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도록 했다. 언뜻 보기엔 이익이 되지 않을 백수들까지 드나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집안에 누구라도 편안하게 오가는 것이 소통의 실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님: "세계는 천ㆍ지ㆍ인으로 이루어져있고, 하늘과 땅, 특히 ‘시공을 조화롭게 하는 게 사람의 역할’입니다. 내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살펴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잘 소통되도록 하면 거꾸로 지금 교장 선생님과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어요."
스님은 지금 당장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가 어렵다면,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라고 하셨다. 질문자 자신도 선생과 학생 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예컨대 공부 잘 하는 학생과 엎드려 자는 학생 사이의 구분을 짓거나, 그 전제 위에서 학업에 소홀한 학생을 문제아로 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다면 질문자 역시 교장 선생님의 태도와 다를 게 없다.
내 땅에 타인을 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소통의 단절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질문자가 당장 해야 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의 위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스님은 윗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라고 하셨다. 본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갑을 관계를 허물면 윗사람과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4.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Q “예전에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맞다고 여겼던 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해요.”
질문자는 노력파, 소위 모범생과 같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삶이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 아니던가?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지금처럼 최선이라고 생각한 기준 자체가 달라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그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위해 자신이 열심히 살았는가 라는 허무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스님: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죠? 최선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고. 우리는 보통 천명이 내 편이 되어서 내가 한 일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도 좋고 상대도 좋고 미래도 좋은 일을 그냥 하세요.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과학 이론 중에 카오스 이론이 있다. 북경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불러오듯, 원인과 결과를 사실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결과는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올 수 있다.
스님은 한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아버지는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하지만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은 아버지의 욕심이었을 뿐, 자식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녀는 상처를 입었고,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님: "이처럼 우리가 굉장히 잘한다는 결정이 나 스스로한테도, 상대한테도 엄청난 상처가 되서 비수로 꽂힐 수 있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 일이 나나 상대한테 비수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비수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어떤 결과를 위해 한다는 마음을 먹지 않아야 한다. 타인을 위해 한다고 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일이 될 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어떤 결과를 바라지 않고, 무엇을 위해 한다는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무리하지 않고 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나와 상대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할 일을 하고 결과를 바라지 않는 것, 이것이 ‘진인사대천명’의 참 뜻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두 시간 남짓 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그동안 막연하게 느꼈던 고민의 정체들이 보다 명확해졌다. 감정이 흘러가지 않는 것은 자존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말하는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 수 없다. 윗사람과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마음 속 위계 때문이다. 또한 결과에 연연해서는 현재에 충실할 수 없다. 이 네 가지 고민들에 대하여 스님은 상황에 맞춰 다른 조언을 해 주셨다. 하지만 각자가 해 나갈 숙제는 같았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전제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할 공통과제가 될 것이다.
☻ 실천하기
- 감정이 올라올 때 :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에게 축언하기, 호흡관찰하기
- 나만의 삶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기
- 내 안의 위계를 해체하기 : 역지사지하는 훈련을 해보자
- 성공하는 삶이나 정답을 위해 달려가지 말기
글_신효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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