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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정화스님 멘토링 : 공부 잘 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by 북드라망 2015. 7. 17.


자나깨나 공부 걱정이 태산 같은 우리,

어쩌면 좋아요?



이번 차담회에서는 두 번째로 참석한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공부에 관한 질문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암송의 어려움. 글쓰기에 대한 부담. 감이당 학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툴툴거리며 불만을 토로했음직한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과학책읽기에 대한 신선(?) 솔직(?)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스님, 질문있어요!


1. 암송이 너무 어려워요.

Q. 아, 암송이 너무 어려워요. 직장생활 후 명퇴하고 감이당 공부 한 달째인 학인입니다. 58살인데 암송이 너무 어려워요. 저한테 참 벅찬 듯해요. 제가 너무 욕심내는 건 아닐까요? 너무 힘을 쓰고 사는 것 아닐까요? 


스님_ 옛사람들도 외우지 않으면 배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글을 계속 읽어도 어렴풋이 읽은 건 기억에 남지 않지요. 외우는 것이 공부의 첫 번째 출발입니다. 공부 10훈(十訓)에도 ‘외우지 않으면 배우는 것이 아니다’ 라고 나옵니다.


사실 삶을 놓고 보면 암송이든 공부든 삶은 목적지향적이 아닙니다. 뭔가를 위해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체에서는 모든 게 사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외우는 것이 필요하지만 너무 가치를 많이 둘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외우는 것은 입에 좀 붙어야 합니다. 우리도 처음 불경을 한문으로 배울 때 하루에 세 줄 배웠어요. 근데 이 세 줄 중에 한 글자도 개념을 알 수가 없었어요. 개념지가 전혀 없는 상태지요.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을 이해하지 않고 쌓아두면서 읽어 가면, 읽기만 할 뿐 별로 의미 없는 경우가 많아요. 전과의 낱말풀이랑 같아요.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의 작은 것일지라도  배경지식 안에 있는 개념들을 몇 개만이라도 확실히 알고 가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그게 내 개념으로 체화되어서 튀어나옵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개념이 몇 개 안될 때 비로소 체화된 거지요.


잘 외우는 것과 체화해서 말하는 것은 달라요. 전에 외국어를 꽤 배웠었는데 외국어 배우는 게 제일 쉽더만요. (일동 웃음) 중1영어에는 어려운 개념어가 거의 없습니다. “나는 간다” 그러면 그냥 ‘나는 간다’고 그냥 외우면 됩디다. 입에 부치는 훈련만 하면 돼요. 그냥 그 상황에서 툭 튀어나오면 돼요.


우리(수행자들)는 일이 많지 않거든요, ‘노느니 염불’한다고 한 페이지를 백번 읽으니까 그냥 나중엔 되더라구요. 한 페이지를 100번 읽었어요 나는. 그러고 나면 탁 책장을 덮어도 입에 붙어서 나오더라구요. 그 정도가 되어야만 진짜 외우는 거지요. 어쨌든 이렇게 중1 수준 영어 배우듯이 하면 외국어는 물론 암송, 그리고 어려운 글 읽기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비슷비슷합니다 암송 능력은.



2.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까요?

Q.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까요? 제가 쓴 글을 보면 저 자신에 대해 별로 생각을 안했던 게 글에 낱낱이 보입니다. 글과 생각 일치가 참 어렵습니다.



알아요, 저도 아는데ㅜㅠ


스님_그렇죠. 머릿속의 생각은 좀 쉬운데 글은 다른 사람에게 비춰진다고 생각하니 어려울 거예요. 근데 ‘비춰지는 내가 정말 나인가?’ 라고 한번 살펴봐야 해요. 그래야 이런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체화되지 않으면 글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개념을 쓸 때는 안 그렇지만 나에 대해 쓸 때는 어렵지요. 그런데 그게 대개 ‘만들어진 나’를 쓰게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비난 같은 거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비난의 요소가 곧 나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훈련이 아주 필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비평가라고 그 사람이 보는 것일 뿐예요. 그 사람의 일생에서의 경험으로 읽혀진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거죠. 참고는 할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생각을 점점 줄여가는 게 필요하죠.


Q. (다른 학인) 궁금한 게 있습니다. 스님께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생각을 점점 줄여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자칫하면 나만 생각하는 글쓰기가 되는 거 아닐까요? 자기 자신한테만 빠져가지고 글을 쓰면 안 된다, 읽는 사람도 생각하면서 글을 쓰라 이런 얘기도 들었는데요?


스님_자신한테만 빠져서 쓰는 글은 감동이 오지 않지요. 아까 말한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안 써야 하지만, 자기 몽상 속에 빠져서도 안 되죠. 왜냐하면 글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상호간의 약속이에요. 제가 지금 한국말을 쓰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소리를 물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을 물질활동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잖아요? 정신활동한다고 하지요. 말은 정신이 완벽하게 물질로 변형된 거예요. 근데 우리가 물질을 듣는 건 아니지요? 물질이 완전히 정신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물질과 정신, 이 두 개가 융합되는 것이 없다고 하면 바뀔 수가 있겠어요? 바뀔 수가 없는 거예요. 정신과 물질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뚫어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만약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이 우리가 지금 하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듣죠. 이해를 못하지요. 새소리 같을 테지요. 그 사람한테는 아무런 정신이 들어있지 않아요. 그냥 소리만 있는 것일 뿐이지요.





그런데 우리끼리의 대화는 그렇지 않잖아요. 이건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얘기할 때 나라고 알아듣자!’ 이렇게 서로 약속의 코드가 맞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근데 이 언어가 다른 사람한테 비춰지지 않으면 자기 충족적인 글은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는 글로써는 힘이 없는 것이지요.


권정생 선생님의 글처럼 꾸며도 꾸민 것이 아닌 글, 투박하고 소박한 삶, 그 자체가 저절로 감동의 코드가 되는 것이겠지요.  



3. 과학책이 너무 싫고 어렵습니다.

Q. 감이당에서 읽는 과학책이 싫어요.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어요?

스님 강의를 딱 두 번 들었는데 과학 얘기를 하시잖아요?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시잖아요? 근데 스님 강의를 들으면 너무 머리가 아파와요. 피곤하구요. (일동 웃음) 과학과 별로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만, 읽으려면 내용이 하나도 안 들어오고 안 읽혀요. 제 생활하고 너무 멀리 떨어졌고, 이론적인 것인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할지 모르겠어요.


그, 그만...


스님_그렇지요. 그쪽하고는 편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습성이 있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꼭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물질이니까요. 물질에 대한 속성을 모르면, 말을 해도, 굉장히 그럴 듯해도, 바탕이 없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더 현실과 동떨어진 현상학적으로 될 확률이 높아져요. 내가 이런 말을 하고자 할 때 그 배경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과학에 그 원리가 많이 들어 있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것들을 훨씬 더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잘나온 책들이 많아요. 될 수 있으면 두꺼운 책들을 골라서 읽으셔요. 얇은 책은 간략하게 쓴 것 같아 좋지만, 실은 자세하게 써놓은 두꺼운 책이 더 좋습니다. 사례 같은 게 나와 있어서 더 읽기가 수월해요. 훨씬 더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나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벽에 부딪히듯 거부감을 가지기 쉬운데 약간 의무감을 가지고 읽으세요. 훈련 삼아 읽으세요.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냥 턱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시작하여야 합니다. 나는 알든 모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읽는 습관인데요. 파인만의 읽기 방식은 기본 연구가들에게 좋을 듯한데, 예컨대 10쪽까지 읽다가 다 이해가 되게 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12쪽 읽다가 잘 모르면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는 거지요.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알든 모르든 다 읽는 편이에요. 그리고 같은 생물책을 읽더라도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다시 읽지 않고, 같은 분야의 다른 책을 몇 권 더 찾아 읽는 편이에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맥락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최소한 다섯 번은 읽습니다. 두 번 세 번 읽어 가면  머리가 훨씬 안 아픕니다^*^
 


Q. 과학책 중에서도 어떤 분야의 책부터 접근해야 좋을까요?


스님_나 같은 경우는 양자역학 책으로 시작했어요. 학창시절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지만 아주 재밌었어요. 편했고요. 왜냐하면 불교의 기본 사유는 양자역학과 같은 부분이 많아요. 시간과 공간이 함께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특징이 불교에는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요. 근데 양자역학을 읽으니까 비슷한 게 많은 거예요. 예를 들면 입자와 파동 같은 것인데, 그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가 내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전체적인 사물을 보는 특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약간 두꺼운 책이 좋구요. 또한 조작된 베스트셀러 같은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많이 팔린 책들이 있어요. 이런 책은 읽기가 좀 수월해요. 일단 고르면 끝까지 다 읽으세요. 그러다가 아! 좀더 이해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세 번은 읽어야 합니다. 상당히 정신을 차리고 읽으면 세 번쯤 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겁니다. ^*^


글/정리_김해숙(감이당 대중지성)


공부에는 왕도가 없어요. 끝까지! 그리고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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