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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백수 1세대, 성호 이익] ③ 계몽의 시학 & 분노의 파토스

by 북드라망 2014. 6. 24.

     남인 백수 1세대, 성호 이익이 사는 법 ③


 남인백수 1세대! 

성호 이익, '절용'과 '실용'을 사유하는 산림학자!


계몽의 시학 & 분노의 파토스



1. 경건하고 엄숙하게! 


성호 학맥의 특징은 경건함과 엄숙함이다. 이들은 ‘세상을 구제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반듯하고 바르게 생활했다. 하여, 늘 자신을 단속하고 국가와 백성에 대해 근심했다. 또한 시비, 선악의 구분에 아주 엄정했다. 다산의 비장미와 엄숙주의, 그리고 경건함은 성호로부터 비롯되었다. 성호는 허약 체질로 병이 많았던 탓에 어머니 권씨 부인이 약주머니를 달고 다니며 수시로 약을 먹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특별한 스승 없이 가학으로 학문을 연마했다. 어려서는 둘째형 이잠에게, 이잠 사후엔 셋째형 이서(옥동선생), 종형 이진(소은선생)에게 배웠으며, 아버지 서재의 만권 서적이 그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엄숙주의는 집안 내력인가? 아니면 개인적 기질인가?


성호는 "여럿이 함께 공부할 때 학생들이 모두 웃고 떠들며 장난쳤으나 성호는 홀로 묵묵히 앉아 책장을 넘기기를 종일토록 그만두지 않았다"고 한다.


성호는 어려서부터 참으로 단정한 선비였다. 그야말로 타고난 유자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일점 흐트러짐 없이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철저하게 법도를 지키고 심신을 단속했다. "여럿이 함께 공부할 때 학생들이 모두 웃고 떠들며 장난쳤으나 성호는 홀로 묵묵히 앉아 책장을 넘기기를 종일토록 그만두지 않았다.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조석으로 혼정신성(昏定晨省)하는 것 외에는 방에 바르게 앉아서 성현의 경전 및 송(宋)나라 정자·주자의 책과 우리나라 퇴계(退溪)의 글을 펴 놓고 되풀이하여 읽고 사색하며 상호 고증하는 일에 몰두했다. 장년이 되어 집안에서의 생활은 엄격하면서도 법도가 있었으니,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한 뒤에 의관을 정제하고 가묘에 배알하였고 물러 나와서는 규정에 따라 제자들을 가르쳤다. 식사할 때는 반드시 장유에 따라 차례대로 앉아 먹었으며, 매우 조심하여 감히 숟가락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또 자제나 제자가 잠깐 외출할 때에도 반드시 절하고 여쭈었고 돌아와서도 반드시 절하고 뵈었다. 종족과 친구처럼 온종일 보는 자들도 서로 읍(揖)하지 못하게 하고 절을 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문하에 있는 자들이 배례(拜禮)에 익숙한 것이 마치 조정이나 관부에 있는 듯했고 밖에 나가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도 또한 그렇게 하니, 비록 일면식도 없는 자라도 그가 성호의 문인이나 자제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고 한다."(『성호전집』,「성호선생행장」) 


성호는 자제들과 제자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성호가 죽은 뒤에도 제자들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학문을 연마했으니, 그 스승의 그 제자임에 틀림없다. 


언젠가(1779년) 겨울 주어사(走魚寺)에 임시로 머물면서 학문을 강습하였는데, 그때 그곳에 모인 사람은 김원성ㆍ권상학(權相學)ㆍ이총억(李寵億) 등 몇몇 사람이었다. 녹암이 직접 규정(規程)을 정하여 새벽에 일어나서 냉수로 세수한 다음 숙야잠(夙夜箴)을 외고, 해 뜰 무렵에는 경재잠(敬齋箴)을 외고, 정오(正午)에는 사물잠(四勿箴)을 외고, 해질녘에는 서명(西銘)을 외게 하였는데, 씩씩하고 엄숙하며 정성스럽고 공손한 태도로 법도를 잃지 않았다. 이때 이승훈도 자신을 가다듬고 노력하였으므로 공은 이와 함께 서교(西郊)로 나아가 심유(沈浟)를 빈(賓)으로 불러 향사례(鄕射禮)를 행하니, 모인 사람 백여 명이 모두, ‘삼대(三代)의 의문(儀文)이 찬란하게 다시 밝혀졌다.’ 하였으며,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 또한 많았다.

- 정약용, 『다산시문집』15권,「선중씨 (정약전) 묘지명」


정약용이 성호의 제자들 곧 권철신, 정약전, 이벽 등이 주어사에서 열었던 강학회를 술회한 글인데, 강학회의 분위기는 성호가 공부했던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벽에 찬물로 세수하고 정해진 시간대에 잠언을 암송하며 심신을 다스리는 장면은 성호가 지켰던 생활 규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강학 방식은 경건하다 못해 숭고하고 비장하게까지 느껴진다. 


유숙의 「수계도」부분.


성호의 제자들은 농암 김창협의 후예들과 매우 달랐다. 농암의 후예들이 매우 경쾌하고 발칙하게 세상과 소통하고 거침없는 우정으로 연대했다면, 성호의 후예들은 성스럽고 거룩하지만 매우 규범적이고 질서정연하게 관계를 다듬었다. 그 결과 노론학파들은 기발하고 참신한 문장으로 세상을 흔들었고, 남인학파들은 체제와 민생에 대한 관심으로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다. 농암의 후예들이 규칙을 깨며 세상을 유영했다면, 남인의 후예들은 더 엄격하게 규칙을 보완하고 개선했다. 노론과 남인은 당파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기질과 지향에서 하늘과 땅처럼 그 간극이 엄청났다. 




2. 유희를 금하라! 계몽의 시학


이토록 경건하고 엄숙한 성호가 유희적인 예술이나 놀이를 용납할 리는 만무했을 터. 성호는 자제들과 제자들에게 장기나 바둑을 두는 일조차 경계한다. 공자는 낮잠을 자는 재아를 호되게 혼냈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바둑과 장기라도 두는 게 낫다고 보았지만, 성호는 그 반대였다. "한번 장기나 바둑에 빠진 자는 정신을 소모하고 뜻이 미혹되어 방탕한 데로 흘러 돌아올 줄 모른다. 그 해악이 낮잠 자는 것보다 열 배는 되니,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초지일관 엄숙하고 단정하니, 범접하기에는 좀 어려운 선비라 여겨진다. 존경하고 숭앙할 수 있으나 친근하게 다가서기엔 너무 먼 스승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담배와 같은 기호품도 여지없이 금지했으니, "날마다 독한 연기로 신명(神明)이 깃든 곳을 쬐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성호 선생의 담배 금지의 변을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듣고 보는 것까지 해쳐서 머리가 희게 되고 얼굴이 늙게 되며, 이가 일찍 빠지게 되고 살도 따라서 여위게 되니, 사람을 빨리 늙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 담배는 유익한 것보다 해가 더 심하다고 하는 것은 냄새가 나빠서, 재계(齋戒)하여 신명(神明)을 사귈 수 없는 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없애는 것이 둘째이며, 세상에 일이 많은 것이 진실로 걱정인데, 지금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해가 지고 날이 저물도록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한시도 쉬지 않으니 이것이 셋째이다. 만약 이런 마음과 힘을 옮겨서 학문을 닦는다면 반드시 대현(大賢)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글에 힘쓴다면 문장도 될 수 있을 것이며, 살림을 돌본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성호사설』, '만물문' 중「남초」(南草)


성호가 일일이 짚어주는 담배의 폐해는 참으로 막대하다. 흡연은 심신 소모에 돈 낭비에 시간 낭비! 깐깐하고 검소하신 성호다운 말씀이다. 만약 18세기 사치품을 권장하고, 꽃에 빠져든 마니아를 예찬하는 박제가의 글을 접했다면, 혹은 담배를 예찬하다 못해 경전이라 제목을 붙인 이옥의 『연경(煙經)』을 읽었다면, 성호는 어땠을까. 성호는 이런 세태에 조금도 물들지 않으려 견결하게 경계하고 또 경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유숙의 「수계도」부분. 성호는 "신명을 사귈 수도 없고, 재물도 없애며,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한시도 쉬지 않"게하는 담배의 패해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그렇다면 시와 문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었을까? 당연히 시와 문장은 유희 때문이 아니라 세교(世敎)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 여겼다. 음풍농월하는 시, 기괴하고 해학적인 이야기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데 불과하니, 숭상해서는 안 된다. 시여, 문장이여, 온 세상을 교화하라. 성호 선비는 풍자하고 비판하며, 풍속을 계도하고 선한 마음을 흥기하는 시와 문장만을 인정했다. 그런 까닭에 『시경』의 시를 최고의 작품으로 치고, 4언시 짓기를 권장할 정도였다.


시문(詩文)을 업(業)으로 하는 선비 중에 대가(大家)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본래 적지 않다. 하지만 시문이 있게 된 취지는 세교(世敎) 때문이다. 이것을 제외하면 모두 백정(白丁), 술 파는 사람, 광대, 배우 등이 자웅을 다투는 작품으로, 상자에 넘쳐나고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전파되었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질박하고 참되어 인륜(人倫)을 부식(扶植)하고 선량함을 흥기시키며 선악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고인(古人)의 유지(遺旨)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살펴보건대, 무릇 시를 짓는 자는 이따금 달을 호통 쳐서 밝게 하고 구름을 헤치며 풍정(風情)과 주흥(酒興)에 빠질 뿐이고, 글을 짓는 자도 기괴하고 희롱하는 내용으로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사람의 심술(心術)을 현혹시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요컨대 모두 의(義)를 해치는 것이니, 어찌 숭상할 수 있겠는가.

-『성호전집』,「회헌잡저서문」(悔軒雜著序) 



3. 슬픔과 분노의 파토스         


성호가 아이 때 지은 시를 보자. 송충이를 비판하는 시다. 어찌나 신랄한지. 남인 윤선도가 파리를 그렇게 미워하더니, 성호는 송충이를 엄청나게 미워한다. 쓸모 있는 소나무, 올곧은 소나무를 저 탐욕스런 송충이가 씨까지 말려버린다. 이런 송충이는 포악한 자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자를 없애면 좋겠는데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랴? 침범할 수 없도록 멀리 떨어져 곁을 주지 않아야 한다. 송충이의 행악에 대한 개탄과 깊은 슬픔 속에 성호의 분노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성호는, 선악시비를 분별해서 판정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매체가 시라고 생각했나 보다.    


봄이 와 초목이 싹트고 자랄 때면 / 春之茁長

소나무 외면에서 보드라운 잎을 씹고 / 外斫其輭

가을이 와서 초목의 잎이 시들 때면 / 秋焉斂藏

소나무 내면에서 그 진액을 빨아먹으며 / 內浚其津

어느 때 어느 날이고 늘 / 不時不日

오직 소나무 씨를 말리려 설치니 / 惟無類之是奔

그저 탐욕만 부리는 게 아니라 / 非貪饕之獨營

천공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다 / 亦有恚乎天公

하늘이 서둘러 징계하여 / 若皇圖之早懲

송충이를 더 이상 못 날뛰게 하건만 / 無使蔓以敢橫

저 교만을 부리는 하찮은 벌레는 / 彼小蟲之謬慢

마침내 손에 독을 쏠 마음을 낸다 / 終螫手以心生

하늘의 혁혁한 위엄에도 굽히지 않거늘 / 顧爀威猶屈强

보잘것없는 사람의 계책이야 말해 무엇 하랴 / 矧人籌之無良

나는 안다 벌레는 염병의 빌미이며 / 吾知蟲者癘之祟也

소나무는 곧은 기운으로 자란 것이라 / 松爲直氣攸毓

포악한 자에게 곧잘 시달린다는 걸 / 善困於虐

쓸모없는 것이 유익한 것을 해침은 / 無用之害有益

진실로 옛날부터 모두 그러했으니 / 固前世以皆然

어찌 새삼스레 한숨을 쉬고 원망하리오 / 復何欸而怨讟

내 장차 수레에 기름 치고 말에 여물 먹여 / 吾將膏吾車而秣吾馬

대륙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되 / 遵大陸以左轉

혹 가마를 타고 산에 들어가고 / 或乘輂而入山

혹 뗏목을 버리고 기슭에 올라 / 或捨筏而登岸

높은 산봉우리 위에서 길이 노닐면 / 永翶翔于巑岏

아 너 송충이가 감히 나를 범하지 못하겠지 / 嗟爾蟲之莫余敢干

- 『성호전집』,「송특부」(松蟘賦)


글은 실정을 파악하게 해줘야 진짜다. 성호는 글에 진경(眞景)을 담으라고 한다. 진실을 형용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없다. 그 진경 혹은 진실은 무엇일까? 성호가 말하는 세상의 진경은 현실의 간악함과 부조리, 백성을 피폐하게 하는 가혹한 정치다. 불안하고 부조리한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성호가 말하는 바, 문장의 궁극적 목적은 슬픔과 분노의 파토스를 일으키는 진경을 담는 것이다. 때로는 비장하게 현실을 비판하여 비탄하게 하고 분노를 일으키며, 때로는 숭고하게 바람직한 세상을 염원하며 개혁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문장. 이것이 문장이 해야 할 역할의 전부다. 그 밖의 문장은 사치요, 낭비다.   


"소식(蘇軾)이 장방평(張方平)을 대신하여 지은 간용병서(諫用兵書)는 가위 정전(征戰)에 대한 진실한 화상이라 하겠으니, 이것을 보고서 슬픈 정감을 일으키지 않는 자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 말에, "싸워서 이긴 다음에 폐하(陛下)가 알 수 있는 것은 개선(凱旋)하여 승첩을 보고하는 것과 표(表)를 올려 치하하는 따위로서 이목에 빛나는 구경거리일 따름이며, 저 먼 지방의 백성이 간뢰(肝腦)는 흰 칼날에 묻고 근골(筋骨)은 궤향(饋餉)에 끊어지며, 유리 파산하고 아들 딸을 팔아먹으며, 눈이 빠지고 어깨가 부러지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현상에 이르러는 폐하가 반드시 볼 수 없는 것이며, 자부(慈父)ㆍ효자(孝子)ㆍ고신(孤臣)ㆍ과부(寡婦)들의 우는 소리는 폐하가 반드시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저 소와 염소를 도살하고 어ㆍ별(魚鼈)을 회쳐서 음식[羞膳]을 만들어 놓았을 때 먹는 자는 매우 아름답겠지만, 잡는 자는 너무도 괴로움을 겪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폐하로 하여금 그 몽둥이가 칼날 아래 부르짖고 그 도마ㆍ칼의 사이에 꿈틀대는 것을 보게 하였다면, 비록 팔진(八珍)의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반드시 젓가락을 던지며 참아 먹지 못할 것이온데, 하물며 사람의 목숨을 이용하여 이목의 구경거리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이야말로 그림이 그 참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뜻은 이화(李華)의 조전장문(吊戰場文)에서 근본되었으니, 사람이 다 읽어서 아는 것이거니와, 이화 역시 근본으로 삼은 것이 있으니 한(漢) 나라 가연지(賈捐之)의 파주애대(罷珠厓對)에, "아비는 앞에서 싸우다 죽고 아들은 뒤에서 싸우다 상처를 입고 여자는 높은 언덕을 타고 고아(孤兒)는 길가에서 부르짖고 노모(老母)ㆍ과부는 마을 구석에서 곡을 하여 허제(虛祭)를 벌리어 만리 밖의 넋을 부르고 있다." 하였다. 진실로 정신을 가다듬고 한번 외워 볼 만한 글이다.

『성호사설』,「용병을 간하는 글」


성호는 군사를 일으키는 일에 대해 간언하는 소식의 「간용병서」와 전쟁터를 조문하는 이화의 「조전장문」이 진실로 외워볼 만한 글이라고 추천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왕이 듣고 읽어야 하는 문장은 개선가가 아니다. 전쟁에서 병장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희생되었는지, 전쟁으로 집을 잃고 여기저기 유랑하는 백성들의 절규가 어떤 것인지, 그 실상을 낱낱이 담는 게 문장이다.  따라서 이 작품들을 읽고 슬퍼하지 않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적어도 성호에게 글은 인간, 즉 올바른 인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슬픔과 분노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상기하고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성호에게 문학의 최선은 비장미다. 


이와 같은 문장의 도는 다산의 시에서 꽃을 피웠다. 다산은 성호가 문장에 담고자 한 바, 리얼리즘과 파토스의 절정을 실현한 장본인이다.(고미숙,『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북드라망, 2013. 참조) 이런 점에서 보면, 다산이야말로 성호의 진정한 계승자요, 성호학의 구현자라 일컬어도 무방할 것이다.     



글. 길진숙(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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