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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뜨거운 피를 가진 청춘, 열심(熱心)히 사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곡택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8. 15.

심(心)의 불을 끄는 소방수, 곡택


코피 나고 싶은 아이


툭하면 코피를 흘리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나이 마흔 넘어 얻은 금지옥엽이었다. 몸이 약해 그런 거지 싶어 여섯 딸들 눈을 피해 고기를 사 먹였다. 그런데 녀석은 어미 속도 모르고 자랑삼아 누나들에게 떠벌렸다.
“누나! 나 오늘 갈비 먹었다. 엄마가 코피 흘린다고 사줬어.”
딸은 어미를 찾았지만 어미는 그 눈을 피해 뒤꼍으로 숨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솜방망이를 넣은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나도 코피 나. 이것 봐!”
딸은 솜방망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코피가 조금 묻어 있었지만 언제 흘렸는지 피는 말라 있었다.


아.. 드디어 코피가 났다!


코피에 얽힌 어린 시절 일화다. 그때 나는 코피 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갈비도 먹고 싶었지만 그보다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코를 손가락으로 후벼 팠다. 코피는 나지 않고 콧방울만 벌겋게 부어올랐다. 결정적으로 코피가 난 건 하교 길에서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어디선가 축구공이 날아와 얼굴을 때렸다. 피하고 자시고 할 새가 없었다.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났는데 코에서 물컹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뭐야, 코피잖아. 이것 봐! 코피 난다. 코피!”


코피 난다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나를 미친 년 바라보듯 쳐다보는 아이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러고 있을 새가 없었다. 엄마를 향해 빛보다 빨리 돌진! 엄마에게 보여줘야 했다. 나의 이 빨간 코피를.  코피 나고 싶은 아이의 처절한 사연. 실로 눈물겹다. 이즈음 궁금하다. 코피는 어떻게 해서 나고 왜 나는 걸까? 코피가 나면 몸은 어떻게 될까? 오늘은 코피와 몸의 상관관계를 코피 나고 싶은 아이 때의 심정으로(?) 탐사한다.



출혈의 메커니즘 : 심(心)이 열받다!


코피가 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코는 뇌와 통해 있으므로 뇌로 올라갔던 피가 넘쳐서 나기도 하고, 폐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폐에서 나온 피라고 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양명경에 열이 몰려서 나오기도 하고, 비장에 있던 열이 간으로 가서 나온다고 보기도 한다. 좌우지간 코피가 나는 것은 혈과 열, 이 두 가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열은 다 심(心)에서 생기는데, 열이 심하면 혈을 손상시킬 수 있다. 단계가 말하기를, “여러 가지 혈증(血證)을 다 열증(熱證)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그 요점을 알면 한마디로 끝난다’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혈은 열을 받으면 놀아서 넘쳐나므로 선혈(鮮血)이 되고, 찬 기운을 받으면 엉겨서 걸쭉해지므로 어혈(瘀血)이 된다. 어혈은 검은 색이고 선혈은 붉은 색이다.


─ 『동의보감』, 「내경편」, ‘혈’ 법인문화사, 301쪽


열은 혈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원래 혈은 열을 받으면 잘 돌아가고 찬 기운을 받으면 엉기는 속성이 있지만 혈이 열을 심하게 받으면 상한다. 그래서 “혈이 열 받으면 놀아서 넘쳐난다”고 하였다. 그렇다. 혈이 열 받아서 생긴 혈열은 좀 노는 피다. 놀아본 놈이 논다고 이런 때에는 양의 기운이 지나쳐서 위로 올라가는 것만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없어서, 혈이 입과 코로 넘쳐 나온다. 그야말로 혈이 경거망동을 하는 것이다. 이때 감정도 혈을 동하게 만든다. 감정을 조화롭게 절제하지 못하고, 한 감정에 지나치면 집중하면 혈을 요동시킨다. 예를 들어 성을 몹시 내면 기가 막히고 간이 상한다. 간은 혈을 저장하는데 상한 간은 혈을 저장하지 못한다. 피는 갈 곳이 없어져 위로 몰린다. 그 결과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게 된다. 또 지나치게 기뻐하면 심장이 동하고 상한다. 심장이 상하면 기가 처져 아래로 내려가므로 혈을 잘 만들지도, 내보내지도 못하게 된다.


또한 생활을 절도 없이 하면서 허튼 데 힘을 지나치게 쓰면 낙맥이 상한다. 경락은 경맥과 낙맥이 있는데 경맥은 세로로 가는 줄기, 낙맥은 경맥에서 갈라져 나와 온 몸의 각 부위에 그물처럼 퍼지는 가지들을 말한다. 양의 낙맥이 상하면 피가 밖으로 넘쳐 나와 코피를 흘리고 음의 낙맥이 상하면 속으로 넘친 피가 항문을 통해서 나온다. 이와 같이 출혈의 메커니즘은 모두 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혈열로 생긴다. 사실, 혈이 열 받았다는 것은 혈맥을 주관하는 심(心)이 열 받았다는 말과 같다. 열이 간에 미치고 심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심장이 뜨끈뜨근 열받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하자. 심이 열받으면 가장 곤란한 경맥은 뭘까? 심이니까 수소음심경일까? 희한한 건 그게 그렇지가 않다. 답은 수궐음심포경이다. 심포락(心包絡)은 심포 혹은 단중(膻中)이라고도 한다. 심포는 말 그대로 심장의 바깥을 에워싸고 있는 막이다. 그래서 심장을 보호한다. 군주지관인 심의 부림을 받는다고 해서 신사지관(臣使之官)이다. 이곳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나온다. 



『내경』에서는 “심은 인체의 군주로서 사기(邪氣)의 침입을 받지 않으며, 만약 사기가 심을 침범하면 심포락이 먼저 병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심이 열 받으면 심포락이 병든다. 그래서 생긴 말이 “열입심포(熱入心包)” 혹은 “열사몽폐심포(熱邪蒙弊心包)”다. 앞에 것은 열이 심포로 들어온다는 거고 뒤에 것은 열사가 심포를 무지몽매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심이 열 받은 혈열, 근데 혈이 계속 열받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는가?  



양기충천 : 열이 뻗히면 불이 된다


(火)·열(熱)·온(溫)은 모두 양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성질은 모두 열에 속한다. 다만 열의 정도 차이만 있다. 화는 열이 극에 달한 것이고, 온은 열이 심해지는 과정이다. 열과 온은 대부분 외사(外邪)가 침입한 것이다. 화는 열이 극에 달해 전화되거나 습이 울결되어 전화되는 외사 뿐만 아니라, 몸 안에 원래 가지고 있던 양기로부터 생겨나기도 한다. 심화(心火)와 간화(肝火)가 이에 해당된다. 화의 코너가 마련됐으니 이쯤해서 화의 성질머리 한번 짚고 넘어가자. 


고약한 화의 성질머리! 화를 자주내면 몸이 상하죠.


첫째로 화는 양이므로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양은 성급하게 움직이고 화는 달구어 타오르는 성질이 있으므로 상염(上炎)한다. 상염으로 심신이 요동하면 심번·구갈·광조망동(狂躁妄動:미친 듯이 떠들어대고 함부로 날뜀)하고 정신이 혼미하여 헛소리를 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두번째로 화는 진액을 손상시켜 외부로 새어나가게 하고 음액을 졸인다. 이로 인해 양기가 지나치게 성하고, 허열이 발생하고 허화가 내부에서 치성한다. 이름하야 음허화왕(陰虛火旺). 음허화왕은 그 화열 증후가 인체의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치통·인후통·골증과 함께 뺨이 붉어지는 관홍이 생긴다. 더불어 음액을 졸이면 정기(精氣) 또한 손상된다. 『소문·음양응상대론』에서 “장화(壯火)는 원기(元氣)를 손상시킨다”고 하였다. 정기가 손상되면 전신성 기능감퇴를 일으킨다. 


세번째로 음액을 손상시킨 화는 간풍(肝風)를 일으키고 혈을 요동시킨다. 근맥을 주관하는 간이 자양을 받지 못해 사지추축·목정상시(目睛上視:눈동자가 위를 본다)·경항강직(頸項强直:목이 뻣뻣해짐)·각궁반장(角弓反張:등이 활처럼 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간풍내동(肝風內動)의 범주에 속한다. 네 번째로 화가 혈분에 침입하면 옹종·창양을 야기한다. 『영추·옹저』에서 “대열이 그치지 않아 열이 성하면 기육이 짓무르고 기육이 짓무르면 화농한다.(…)옹이라 한다”고 하였고, 『소문·지진요대론』에서는 “각종 동통·가려움 및 창양은 모두 심에 속한다”고 하였다. 심은 화에 속하고 혈을 주관하므로 옹종과 창양을 심에 귀속시킨 것이다. 


이처럼 화는 사람의 움직임을 주관하지만 지나치면 병이 된다. 화의 성질은 모든 물질을 없애며, 금 기운을 녹이고, 토 기운을 감소시키며, 목 기운을 지나치게 하며, 수 기운을 말린다. 따라서 화로 인해 생긴 병은 그 해로움이 크고 변화가 매우 빠르다. 증상 또한 뚜렷하고 죽는 것도 빠르다. 화가 지나치다는 것은 ‘화가 치솟는다’는 말과 같다. 이를 전문 용어로 ‘궐양지화’(厥陽之火)라고 한다. 어디서 화가 치솟는가? 그것은 오장육부에서 비롯한다.


오장육부의 궐양지화가 있는데, 이것은 오지(五志, 喜努憂思恐)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육욕(六慾)과 칠정(七情)이 격렬하여 화가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즉, 몹시 성내면 화(火)가 간(肝)에서 일어나고, 취하거나 지나치게 먹으면 화가 위(胃)에서 일어나며, 방사가 지나치면 화가 신(腎)에서 일어나고, 너무 슬퍼하면 화가 폐(肺)에서 일어나는데, 심(心)은 군주의 기관이기 때문에 자체에서 화가 일어나면 죽는다.


─ 『동의보감』, 「잡병편」, ‘화’ 법인문화사, 1170쪽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근심하고 생각이 지나치고 무서워하는’ 이른바 다섯 가지 형태의 궐양지화가 서로 선동하면 상화가 망동한다. 상화가 망동하면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고 때 없이 몸 안에 갖춘 음기인 진음을 말려버린다. 음이 허해지면 병이 나고 음이 끊어지면 죽게 된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화는 감정의 파노라마로 일어나고 흔들리고 가라앉는다. 이때 마음 다스림은 최고의 치료책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행할 수 없는 건 그만큼 마음 다스림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정리하면, 지금 양 중의 양, 화가 열이 뻗혀 불이 된 마당이다. 몸에 불이 나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사태다. 어떡하지? 속수무책 손 놓고 있을 텐가? 하하, 그렇다면 이제 오늘의 혈자리 곡택이 등장할 차례다.  



곡택, 심(心)의 불을 끄는 소방수


곡택(曲澤)의 ‘곡’은 굽힌다는 뜻이다. 팔의 굽어지는 곳이니 팔꿈치를 가리키며, ‘택’은 물과 풀이 섞여 있는 우묵한 곳을 뜻한다. 하여 곡택은 팔꿈치의 우묵한 곳에 있다. 팔을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팔꿈치를 가볍게 잡아보면 굵은 힘줄이 잡힌다. 그 안쪽의 움푹 들어간 곳이 곡택이다.  팔꿈치 관절의 우묵한 연못. 곡택은 수궐음심포경의 합혈이며 수의 성질을 가졌다. 수궐음심포경이 궐음경, 즉 음경이므로 음수(陰水)의 기운이다. 계수(癸水)처럼 활동성이 좋은 물의 성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하여 멈추고 머물러 있는 혈을 흐르게 한다. 혈을 흐르게 한다는 것은 심장의 열이 오르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혈이 흐르지 않고 뭉쳐 있으면 열이 생기고 그 열은 내려가지 못하고 역기(逆氣)한다. 


심포경은 사실상 심장질환이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심장은 혈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고 그런 면에서 혈열을 끌 수 있는 혈로 곡택만한 게 없다. 하여 곡택은 심장의 불을 끄는 소방수다. 이밖에도 곡택은 경련을 진정시키고 수전증에 특효가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관련이 있다. 손을 떠는 것은 일종의 경련이기 때문이다. 경련은 일시적으로 혈이 공급되지 않아서 생긴다. 이때 팔꿈치의 우묵한 곳을 꾹꾹 눌러주시라. 손 떨림은 진정되고 마음조차 진정될지니.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곡택은 혈열로 인해 발생하는 몸의 문제를 치료하는 혈자리임을 기억하자. 심의 불을 끄는 소방수, 곡택. 심(心)히 열(熱)받았어? 꼬~옥(곡) 택하라! 빨간 불자동차에 물 가득 싣고 달려갈지니.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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