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울음 장뇌명에 좋은 혈자리, 중완혈
나는 무엇이든 잘 먹었다. 식상(‘내가 낳는 기운’이란 뜻의 명리학 용어. 밥, 말, 자식 등으로 해석됨. 더 자세한 내용은 '왕초보 사주명리 - 육친론 2편'을 참고하시라)이 유독 많은 팔자 때문일까? 뭘 먹어도 맛있었다. 아무리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생겨도 먹을 것 앞에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그런 나를 두고 지인들은 말했다. “넌 참… 안 그래 보이는데… 은근히 긍정적이다?” 잘 먹는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내 삶의 원동력이자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요즘 삶을 지탱해왔던 ‘중심’이 위기에 처했다! 위장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 기미는 서른한 살이 된 임진(壬辰)년 초부터 나타났다.
그 마음... 잘 알죠...
작년 초, 뭘 잘못 먹었는지 급성 장염으로 앓아누웠다. 밤새 속이 울렁거려서 잠을 못 잤다. 과거 철없던 시절 술에 취해 그런 적은 있어도 음식 때문에 밤새 토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먹는 족족 위아래로 나오려는 통에 속을 진정시키려고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질 않았다. 얼떨결에 단식에 성공(?)해 체중이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그 무렵부터 몸에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선가 희미하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오는 거다. 아침에 물을 먹을 때도 꿀렁~, 소변을 보고 나서도 꿀렁~, 잠을 자려고 몸을 뒤척일 때도 꿀렁~.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 올라 오랜만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켜는데,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친구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헉! 내가 지금 들은 게 설마 네 배에서 나는 소리니?” , “꾸룩 꾸룩 꾸루룩~” 요란한 진동음과 함께~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나는 분명히 들었다. 뱃속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개구리(?)’소리를! 그 후 일 년 동안 그것을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운동이 부족했나 싶어 밤낮을 걸어 다녔다. 식습관에 문제가 있나 해서 밥도 좀 덜 먹으려고 애썼다. 술도 덜 먹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개구리인지 뭔지’는 도대체 사라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좀 불안해졌다. 뱃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한의원에 갔다. 훤한 인상의 나이 지긋한 한의사 선생님은 내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허 웃기만 하셨다. 선생님은 맥을 잡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위도 약하고, 장도 약하네요.” 그날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장(腸).뇌(雷).명(鳴). 줄여서 장명, 풀어 쓰면 위장에서 나는 우레 같은 소리. 자, 이제 병명을 알았으니 장뇌명이 무엇인지 좀 더 파헤쳐보기로 하자.
장뇌명(腸雷鳴), 소리의 원인을 찾아서
장에서 소리가 나는 이유를 함께 알아보아요~
애초부터 뱃속에 ‘개구리’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그냥 ‘물소리’였다. 사실 뱃속에 물이 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안에 들어 있는 성분 대부분 수분이고, 위장에서 그것을 소화시키기 때문이다. 며칠 내내 굶지 않는 이상 위(胃)에는 일정량의 음식과 수분이 항상 차 있다. 『영추·평인절곡』에 “위(胃)는 3말 5되의 음식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 중 항상 2말의 음식물과 1말 5되의 물이 남아 있어 위를 채우고 있다”고 했다. 또한 『영추·영위생회』에는 ‘중초여구(中焦如漚)’라 하여 위에서 소화 되어 죽처럼 된 음식물을 마치 “퇴비를 물에 담가 놓은 것과 같다”라고 묘사했다.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 먹는 음식, 그것을 걸쭉하게 만드는 소화액이 뱃속에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소리가 나는 이유는 뭘까?
먼저 『동의보감』은 장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뱃속이 부글거리는 것(腹中鳴) : 1) 뱃속이 부글거리는 것은 위(胃)에 병이 있는 것이다. 2) 비기가 허하면 배가 그득하고 뱃속이 부글거린다. 3) 중기가 부족하면 뱃속이 몹시 부글거린다. 4) 뱃속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은 火가 水를 격동시키는 것이다. 5) 배가 부글거리는 것은 화는 올라가려하고 수는 내려가려고 하여 서로 부딪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 『동의보감』,「외형편」, 법인문화사, 775쪽
뱃속이 부글거린다는 것은 비위의 문제를 알리는 신호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리가 요란할 뿐 배가 아픈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줄곧 그 신호를 무시했다. 의역학 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평상시 우리 몸은 수승화강, 즉 물을 올리고 불을 내리는 신체 작용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심장이 주관하는 화(火)는 신장으로 내려가고, 신장이 주관하는 수(水)는 올라가야 에너지의 순환이 일어난다. 소화 또한 마찬가지다. 수승화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소화가 가능하다. 이 때 수와 화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비위(脾胃)가 한다.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을 한 번 떠올려보자. 위는 음식을 받아들이고 소화해 정미로운 것은 비(脾)로 보내고, 남은 음식물을 소장으로 내린다. 비는 위에서 받은 정미 물질, 즉 곡기와 수분을 폐로 올려 온 몸에 퍼뜨린다. 이것을 운화작용이라 한다.(더 자세한 내용은 '토토로의 메시지, 태백혈!'을 참고하시라). 대체적으로 위기(胃氣)는 하강을 주관하고, 비기(脾氣)는 상승을 주관한다. 음식 찌꺼기는 내려주고, 곡기는 올려주고. 어느 한 쪽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곡기를 돌리려면 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보다 ‘불’이 꼭 필요하다. 몸의 순환 동력을 불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보일러를 돌려 난방을 하는 메커니즘과 같다. 물을 가스나 석유로 가열하면 그 물이 방바닥을 순환하면서 방을 덥히는 원리. 이것은 몸에서는 곡기와 수분을 온몸으로 전달할 화(火)의 작용과 같다. 그렇다면 내 비위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수화(水火)의 작동에 어떤 문제가 생긴 걸까?
물이 정체되어 생기는 병: 수음병(水飮病)
그러고 보면 언제부턴가 물을 마시지 않아도 웬만해서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안에 ‘소화 안 된’ 물이 넘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몸에 물이 차서 흐르지 못하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수음(水飮)병, 담음이라 부른다. 그 중에서도 위에 머물러 있는 물을 위내정수(胃內停水)라고 한다.
환자가 평소에는 튼튼하였으나 병들면서 야위고 물이 장 속을 지나면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담음’이라고 한다.(...) 환자가 살이 갑자기 찌기도 하고, 갑자기 야위기도 한다.
─『동의보감』,「내경편」, 법인문화사, 367쪽
그동안 체중이 줄었다고 마냥 좋아만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요란한 물소리는 몸에 물이 뭉쳐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담음은 예부터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증세도 가지가지다. 장명 뿐 아니라 뱃속이나 옆구리가 그득하고 배가 부른다든지, 토할 때 맑은 침이 나오고 설사를 한다든지, 잔등이 차갑고 눈곱이 끼는 등. 그러고 보니 나도 뱃속에 소리 나는 것 외에 복부가 발달되어(;;;)있으며, 종종 설사를 하고 눈곱이 자주 낀다. 흑! 무엇 때문에 물이 흐르지 못하게 되었을까? 대체 왜?? 물을 돌릴 ‘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고백을 하자면 그동안 내가 밥을 많이 먹긴 했다. 뭐든지 잘 먹는 것이 건강한 거라고 생각했기에 마음 놓고 먹었다. 그 결과 위는 늘 많은 음식물을 소화시키느라 분주했다. 소화된 곡기와 수분이 너무 많이 생기니 그것을 돌리기 위한 동력이 부족해진 것은 당연한 수순. 배는 단단해지고 물만 점점 쌓였던 것이다. 안 그래도 사주에 화기운이 없고 몸도 찬 편인데, 매일 과식을 했으니 뱃속이 얼마나 부대꼈을 지… 미안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뭉친 ‘물’을 흘러가게 할 것인가? 힌트를 얻기 위해 처음 이야기로, 인상 좋은 한의사 선생님을 만났던 때로 돌아가 보자.
중완, 배 한 가운데에 침을 맞다
의사 선생님과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꺼내셨다.
“침 맞아 봤지요?”
“….”
새끼와 엄지손가락부터 땄다. 발목에서 무릎, 팔, 어깨 등 순서대로 침을 놓았다. 그리고 배 한 가운데에 세 방! 발이나 팔에 침을 맞아본 적은 더러 있어도, 배에 침 맞은 건 처음이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나더러 선생님은 또 한 번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전혀! 무섭지 않아요.”
“...!!!”
침을 맞아본 적은 있지만 아니 침을 몸에 직접 꽂아보기도 했지만 아직도 침이 무서운 나는, 내내 그대로 ‘얼음’이었다. 하지만 침을 맞고 따뜻한 기운이 돌자 곧 몸이 편안해졌다. 덕분에 한의원에서 나오자마자 난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정체된 물이 빠지려던 것이었나?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명치와 배꼽 사이에 있는 중완
혈자리를 찾아보았다. 배 한 가운데에 꽂은 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였고, 가장 인상적었던 곳. 그곳은 바로 중완혈! 가운데 중(中), 완(脘)은 밥통, 밥통은 위(胃)다. 중완은 위의 모혈(募穴)이다. ‘모혈’이란 기가 모이는 혈로, 해당 장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각 장부를 대표하는 혈이다. 몸의 중심에 위치한 중완은 임맥에 속하고, 이곳에서 족양명위경, 수소양삼초경, 수태양소장경이 만난다. 중완은 토(土)의 혈자리다. 상하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서 ‘토’. 여러 경맥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토’. 위(胃)의 모혈이라 ‘토’. 트리플 ‘토’자리인 중완. 이처럼 토(土)는 치우쳐 있지 않기에 수화의 불균형을 잡아주고, 수를 극하기 때문에 담음으로 생긴 많은 물을 덜어준다. 담음이 있는 나에겐 완전 소중한 혈이다.
중완은 위염, 위궤양, 위하수증, 장경색, 변비, 소화불량 등 위장과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에 두루 사용되고, 위장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진단혈로도 쓰인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꼽 위로 4치 위(배꼽에서 4치, 약 12㎝위에 있다.), 즉 명치와 배꼽의 중간 부분을 짚으면 된다. 나처럼 겁이 많다면 뜸, 혹은 마사지를 해도 효과 만점이다. 비록 얼마 안 되었지만 꾸준히 중완에 뜸을 떠 본 결과, 소화액이 활발히 분비됨을 체험했다. 속도 한결 편하고, 뱃속 소리도 줄었다. 물론 수년간의 습관 탓에 생긴 병이라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꾸준히 중완혈로 치료하면 분명히 효과를 볼 것이다.
얼마 전 정화스님이 쓰신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란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대목을 발견했다. 마음의 긴장은 몸의 특정 부분을 차갑게 하고 아프게 한다는 것이었다. 긴장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대상을 하나하나 떼어 나와 분리시켜 보는 데서 온다고 했다. 이 글에서 밝힌 나의 병증은 과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과 섞이지 않으려는 고집과 집착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처럼 뱃속이 차갑고, 장명을 듣는 사람이 또 있다면, 자기 내부의 긴장을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 ‘중완혈’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이렇게 외워보는 것은 어떨까?
“강물이 흘러서 바다를 이루듯, 기운 달이 차서 둥근 달을 이루듯, 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고, 편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축원합니다. 머무르지 말고 물이여, 흘러라 흘러~”
고인 물아 흘러라 흘러~~
신효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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