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작년 이맘 때였다. 우리는 입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24절기 글을 연재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그날 우리는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24절기를 한 바퀴 모두 돌린 지금, 우리는 감이당 TG스쿨에 마주앉았다. 절기서당 후일담, 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송혜경(이하 송) 휴~ 드디어 끝났어, 동철! 대한까지 쓰느라 고생했어.^^ 근데 시성 편집자가 끝까지 우리를 놔주지 않네. 글쎄, 북드라망 위클리에 절기서당 후기가 올라갈 거라고 덜컥 써놨지 뭐야!
김동철(이하 김) : 어 그래? 그럼 쓰자!
송 ^^;; 그..그래.. 한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지.
구태의연한 질문부터 우선 해보지. 24절기 글 연재하면서 어땠는데?
절기와 함께한 일년
김 1년 동안 절기에 맞춰서 글을 쓰다보니까 시간이 금방 가더라. 그래서 시련의 아픔이나 힘든 일이 있으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 왜냐? 절기는 항상 오잖아. 때맞춰 뭔가 써야하니까 딴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던 거 같아. How about you?
송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1년을 24절기로 나누어 경험했어. 이렇게 시간을 한 꾸러미로 다 끌어안아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 2012년에 나에게 좋았던 일도 안 좋았던 일도 다 같이 있었는데, 굉장히 안정적으로 보낸 거 같아.
김 좀 더 얘기해봐.
송 제일 힘든 일은 망종 이후 더위가 찾아왔을 때였어. 올해 유난히 더웠잖아.
김 뭐가 힘들었는데?
2012년 폭염 관련 자료
송 깊이 알려고 하지마.ㅋㅋ 아무튼! 그 전엔 힘들기 시작하면 그 고통이 안 끝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24절기를 공부하고 나니까 이 시간도 곧 지나가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구. 하나의 날씨, 계절, 기분에 매몰되지 않게 하는 힘이 생겼어. 동철은 어땠는데?
김 나는 절기서당 글 쓰는 게 여름까지는 재미있었어. 근데 이것도 계절을 타는 거 같더라구. 대서, 소서가 되니까 너도 나도 맛이 갔잖아.ㅋㅋ 절기상으로도 그 즈음을 금화교역이라고 하면서 기운이 바뀌면서 힘든 시기라고 하잖아. 처음에 우리 마감일도 잘 지키고 세미나도 열심히 했는데, 하반기 이후엔 거의 마감시간 임박해서 힘들 게 썼던 거 같아. 이거야 말로 절기를 제대로 탄 건가?^^ (못 탄 거겠지^^;;;)
송 맞다! 처음에 절기 바뀔 때마다 남산 올라가서 사진 찍었다고 그랬지? 왜 그랬어?ㅋㅋ
김 그래, 처음에 글쓰기 시작할 때 매 절기 때마다 남산의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어. 절기가 바뀌는 기운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어~~~(느끼해) 시간성의 흐름은 변화에서 느껴지는 거잖아. 그래서 절기 당일에 기운을 가장 느끼기 좋은 장소를 찾아서 그런 행동을 해보고 싶었던 거 같아. 비록 소서 이후에 그만 뒀지만.;;;
송 뭐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이진 않았지만, 나도 절기 공부하면서 절기에 맞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하게는 된 거 같아. 안 그러면 내 차례에 쓸 말이 없잖아.ㅋ 그래서 보니까 보이더라구. 경칩에 정말로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걸 보기도 했잖아. 물론 그 이후엔 다시 추워졌지만. 겨울 내내 안에 있던 카페 의자가 봄이 되니까 슬슬 테라스에 나오는 것도 보이고 말이야. 절기 당일에는 분명히 마디가 있고 거기에 맞는 기운이 있는 거 같아.
김 그래, 관찰을 하니까 보이는 거잖아.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서 절기와 관련된 얘기는 무궁무진할 거 같아. 그런데 내가 쓰면서 느꼈던 한계는, 절기라는 명칭에 얽매여서 문헌에 의존하다보니, 오히려 실제 주변을 관찰하는 것에 소홀했던 거 같아. 근데 넌 절기서당 쓰면서 어떤 게 재밌었어?
송 작년에 글에도 썼지만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이를테면 우리도 봄이라는 기운을 일으키는데 한 몫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왜, 입춘이 돼도 춥잖아. 그때 봄기운이 세워질 때긴 하지만 우리들이 그저 수동적으로 봄을 맞는 건 아닌 거 같아. 이때 ‘입춘대길’을 문에 붙이기도 하고, 봄맞이 대청소를 하기도 하잖아. 봄이 와도 우리들 스스로가 봄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봄이 아닌 거지. 그런 면에서 절기란 것은 단지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우리가 끌려가기보다, 인간 역시 그 과정에 동참해야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거 같아. 난 그걸 제대로 느꼈지.
계절은 돌아오지만, 계절은 늘 다르다.
'지금-여기'에서 관찰하기
김 그때 언제더라, ‘니환궁에서 영액을 얻으라’라는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재밌긴 했는데, 풀기 어렵지 않았어?
송 맞아. 그때 자료조사하고 완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ㅋㅋ
김 ㅋ 자료조사해보면 옛날 감성으로 되어있는 말이 이해가 안 가서 고생 좀 했지.
송 절기 징후로 기러기나 땅강아지, 지렁이 이런 애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절후별로 나오잖아. 그걸 우리가 어찌 아누~~. 아무튼 글로 만들어야 하니까 지금 언어로 번역하는 게 어려웠지. 니환궁 얘기는 망종 때였던 거 같은데 무슨 환타지 소설도 아니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김 그래도 용하게 어떻게든 연결시켰더라구ㅋ
송 그럼~ 원고 마감이 임박했으니까.ㅋ 골머리를 앓다가 남산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그 말들이 풀리더라구. 그게 내 언어로 이해되는 순간 지금의 윤리가 동시에 그려지는 거야. 그게 너무 재밌었어.^^ (리환궁이 궁금하시면 클릭!) 동철은 글 쓰면서 뭐가 어려웠어?
김 느낌은 있는데 말로 표현 안 되는 것, 그걸 표현하고 싶었지. 비올 때 멜랑콜리한 기분이 들거나, 막걸리에 부침개 먹고 싶은 마음 이런 게 다 절기나 날씨와 연관이 되는 건데, 그걸 몸으론 느끼면서도 구체적으로 쓰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뭐야. 그러다보니, 막연하고 뭘 관찰해서 써야 할지도 모르고 그런 거야. 결국 모든 절기 글의 결론은 매우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방향으로 귀결~ ㅋㅋ 우리의 필살기인 108배 없으면 어쩔 뻔 했냐? 암튼, 담에 글을 쓴다고 하면 좀 더 대중언어, 쉬운 말로 일상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싶어. 관찰이 참 중요한데, 관찰이 뭐라고 생각해?
송 내 생각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절기를 느끼고 있는데, 그걸 삶의 의미로 연결 짓지 못하는 거 같아. 입춘이 지나면 여전히 추운데도 이상하게 두꺼운 옷에 손이 잘 안 가잖아. 피부가 절기를 느끼는 거지.
절기를 몸으로 느낀다는 것!
김 삶의 의미로 연결 짓는다는 게 무슨 말?
송 아까 동철도 얘기했지만, 절기나 날씨가 자기 감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잖아. 그게 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거 같아. 나 같은 경우 겨울에 몸도 무겁고 우울해져. 그런데 절기를 이해 못하면 그게 내 개인적 특질인 줄로만 알게 되잖아. 실은 계절을 타고 있었던 건데 말이야. 이걸 모르면 날씨 따로 나 따로 인식하게 되는 거 같아.
김 그 말은 이런 거야? 겨울에 우울한 것은 자연스런 흐름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걸 모르면 내가 성격이 못나고 이상해서 라고 잘못 해석할 수 있다. 그걸 갖고 내 탓한다 이 말이네?
송 요즘 내가 완전 니체에 꽂혔는데, 이런 말이 나와. 니체가 그리스 문화를 디게 긍정적으로 보거든. 그리스 사람들은 올림포스 신들을 활용을 잘했던 거 같아. 자기가 사랑에 빠진 걸 큐피드의 화살 때문이다, 아님 전쟁에서 지면 아테네 여신이 잘못해서 진거라고 생각했는데 니체는 이걸 건강한 사유라고 생각했어. 절기에 맞춰 산다는 것도 이런 거 같아. 일어난 사건을 누구의 탓으로만 돌려서 보는 게 아니라, 계절과 시절의 차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거지.
김 그러다가 다들 절기탓으로 돌리면 어떡해?ㅋㅋ
송 그게 아니라! 사건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김 근데 마지막에 후기는 왜 안 쓴겨?
송 구찮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니구.ㅋ 후반부에 뭔가 깨달은 바가 있었어. ‘소한’을 찾아보면 ‘동지와 대한 사이의 절기다’라는 말이 나와. 난 처음엔 무시했어. 이런 뻔한 걸 뭣 하러 쓴 건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 근데 동철이 쓴 동지를 받아서 소한을 쓰는데, 도입부에 동지 얘기를 안 쓸 수가 없었어. 그때 느꼈지. 그동안 내가 절기를 끊어서 생각했었구나. 연결성을 생각하는 그 단순한 정의가 가장 소한다운 정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그래서 굳이 후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느꼈어.^^
김 자, 말이 길어졌는데 계사년 입춘을 맞아서 독자분들께 한 마디씩 하자.^^
송 계사년 절기서당은 오운육기식으로 해석한 업그레이드 버전이 될 거니, 기대해주세욥!^^
김 그럼 안녕!
※ <절기서당>이 2013년 입춘을 맞아 이 글을 올린 후 책으로도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절기서당』을 통해 '때'에 맞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은 내일부터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두 저자의 후기를 먼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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