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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24절기 이야기

망종, 씨앗이 되는 법

by 북드라망 2012. 6. 5.
망종, ‘리환궁’으로의 초대

송혜경(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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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환궁, 정점의 다른 이름

핫!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리환궁(泥丸宮)? 듣도 보도 못했다. ‘궁’자가 들어가니 경복궁, 창경궁 같은 궁궐이라고만 짐작할 뿐. 장하다. 1/3은 맞춘 거다.^^ ‘리환’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니르바나 즉 열반을 의미한다. 유불도 삼교에서 ‘하늘의 중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기에 옥황상제님의 처소라고 말한다. 그 궁전은 약초들이 빽빽하게 널려 자라고 있고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평탄한 공간이 높다랗게 걸려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헌데 단청 입힌 궁궐의 내부는 텅 비었고 그 안에는 지극히 신령한 신(神)이 끊임없이 모여든다고 한다.* 이렇게 기묘하고 썰렁한 궁궐이라니. 불로장생이 목표인 도교에서는 리환궁에 도달해 영액(靈液)을 얻기 위해 험난한 수련을 한다. 자료를 조사하다보니 재밌는 말이 발견되었다. 망종(芒種)을 시작으로 해서 두 달 동안은 평범한 사람들도 리환궁에 갈 수 있고, 게다가 ‘영액(靈液)’ 이라는 신령스런 기념품도 준단다. 아니, 나보고 판타지 소설 같은 이 말들을 믿으라고?

*여동빈 저, 이윤희, 고성훈 공역,『태을금화종지』, 여강출판사, 1992. p.19 참조

고백하자면, 난 오늘 리환궁에 다녀왔다! 그리고 영액도 챙겨왔다.^^v 놀라셨구나?ㅋㅋ 이제 나의 리환궁 방문기를 얘기해볼까 한다. 오늘은 마음에 분노가 일었다. 친구는 나를 여느 때처럼 대했는데, 오늘따라 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평소에 괜찮다가 욱! 하고 올라올 때 나오는 멘트. “얘는 맨날 왜이래~” 말은 이래도 맨날 짜증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밀려오는 짜증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기분으로 잠들 순 없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달리기로 기분을 풀어보기로 했다. 평지를 달리는 것으론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좀 뭔가 심심했다. 그래! 남산을 달리자~ 밤 11시, 나는 남산타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검정치마’의 음악을 들으며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걷거나 뛰었다. 호흡에 집중하니 화가 점점 가라앉았다. 하지만 저질체력. 편의점에 다다랐을 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더 올라가? 말어? 밤도 깊었고 내일 출근도 해야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맹숭히 내려가 버리면 마음에 잔 감정들이 남을 거 같다. 다 태워버리리라. 이를 악 물고 급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팔각정이 보인다. 저기가 제일 높구나. 그래, 저기까지! 와다다다 달려서 팔각정에 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시원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온다. 땀이 식는다. 뿌듯함이 가슴에 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관상에서는 미간을 인당이라고 부른다. 얼굴에서 하늘을 의미하는 이마의 기운은 모두 인당으로 모인다. 불교에서는 인당을 심실(心室), 마음이 거처하는 집이라고도 불렀다.

그때 느낀다. 리환궁(泥丸宮)이 여기로구나! 진흙[泥]을 뒹굴며[丸], 죽을힘 다해 정점을 찍어야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사람들의 발자취가 쉽게 닿지 않는다고 했나 보다. 팔각정에서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또 하나 깨닫는다. 여기까지 올라왔던 게 오행의 순환이었구나 하고. 木기운처럼 뻗어나가는 분노의 감정에서, 火처럼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태워버리기 위해 달리고, 金의 결단으로 정점을 올라간다. 여기에 닿을 때까지 土가 단단히 붙들어준다. 마지막, 땀의 상쾌함 즉 水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그렇담 영액(靈液) 즉 신령스러운 액체라는 게 땀인가? 땀이 식을 때 느껴지는 ‘다 이룬듯함’과 뿌듯함이 하나로 응축되어 그 순간 나를 고귀하게 만든다. 팔각정 안은 텅 비었다. 다만 이곳까지 오르는 사람들만 옥황상제를 영접한 것처럼 잠시 영광스러움을 느낄 뿐. 아마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기분일 거다. 아! 물론 꼭 화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분도 아니다.^^

신체적으로 말하면 리환궁은 양 눈썹 사이를 말한다. 그러니까 빽빽한 약초는 눈썹을 말하고 발자취 없는 평탄한 공간은 딱히 뭐가 없기에 이름조차 눈썹 사이인 미간(眉間)을 말하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리환궁이라 불리는 미간으로 우리 몸의 뭔가가 모여든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왜 망종이 되어야 리환궁에 갈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뭐가 올라간다는 거야? 게다가 왜 이때에만 영액(靈液)을 챙겨준다는 거지? 어쨌든, 결론은 버킹검 아니, 리환궁!

오(午)~~뜨거운 맛!

음력 5월이자 양력 6월은 오(午)월이다. 망종은 오월의 시작을 연다. 오! 이거 리환궁이 열리는 타이밍과 겹친다. 그러나 섣부른 단정은 금물! 조금만 더 따라가 보면 리환궁에 들어가는 놈의 뒷덜미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오(午)월은 오행으로 보면 火다. 이 오화(午火)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파헤쳐보자.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것을 지장간이라 한다. 오(午)의 속성은 촛불[丁火], 태양[丙火], 텃밭[己土]이다. 안팎이 모두 불이다. 그래도 기토(己土)가 있으니 그래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허나 12달 중에 오월이 지장간 포함 가장 많은 火를 품고 있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水, 木, 金만 있는 달도 있다. 土야 계절 사이를 이어주는 기운이니까 깍두기 시켜주자. 즉, 오행 중에서 火만 있는 달은 없다. 둥둥 뜨는 성질의 양기인 火기운을 발붙이게 해주는 게 그나마 기토(己土)다. 물론 무더위는 양력 7, 8월이 절정이다. 그런데 그 때는 습(濕)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듯 찜통더위고, ‘오뉴월의 개처럼 늘어져 있다’는 말처럼 火기가 치성해서 뜨거운 달은 오월이다.

그래서 오(午)는 하루 시간 중에 가장 뜨거운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이기도 하다. 이 시간에는 해가 정수리 위에 떠서 그림자도 없고 더위를 식힐 그늘도 없다. 그야말로 태양을 피할 방법이 없다. 오(午)라는 글자도 절굿공이를 세워 놓은 모양 그대로를 본떴다고 한다. 떠올려보면 그랬다. 학창시절 이 시간에 운동장에서 체육하다 절굿공이처럼 쓰러진 친구가 여럿이었다.

리환궁 입장과 기념품

뜨겁다. 뜨거우면 올라간다. 꼭대기로 꼭대기로! 딩동댕~~!! 옥황상제님의 집인 리환궁으로 두둥실 올라가는 녀석은 다름 아닌 火다. 그리고 火기가 절정에 치달아야 리환궁의 문고리라도 잡을 수 있다. 그렇기에 火기가 호령하는 망종의 시간성에 있는 누구나 리환궁에 올라가볼 수 있는 거다. 복습해보자. 리환궁이 어디더냐? 미간이다. 미간은 신체의 상중하 중 상초(上焦)에 있다. 역시 올라가줘야 한다. 그렇담 절기에 따라 몸도 변한다는 거겠다. 이때 우리 몸에서 태양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한 것이 12경맥 중 수태양소장경이다. 수태양소장경의 문인 단전으로 매일아침 태양(太陽)의 기운이 들어온다. 입춘인 정월에서 5월까지 들어오는 양이 점점 늘다가 망종에서부터 갑자기 배로 늘고, 입추부터 차츰 줄어 입동에서부터는 배로 준다. 절기의 리듬과 기막히게 같다. 그러니까 양의 기운이 갑자기 충만해지는 망종 덕에 누구나 리환궁에 갈 수 있다는 거다.

망종부터 양기가 배로 는다면, 기상 역시 갑자기 더워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땀도 많이 나고, 숨이 차서 힘든 일은 자연 피하게 된다. 이 때 아이스크림과 냉면이 불티나게 팔리는데 그 이유는 몸에 들어오는 양의 증가로 우리 몸의 삼초(모든 기를 주관하고 수도(水道)를 소통시키는 무형의 장부), 간과 담, 심지어 저 아래 있는 신장과 방광의 火가 총 동원되어 생동하기 때문이다. 온 몸의 火가 총 동원되어 들끓으니 당연히 무조건 위로 GO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들르게 되는 곳이 리환궁이다. 그러니까 火기운으로 정점을 쳐야만 리환궁에 도달할 수 있는 거다. 게다가 리환궁의 기념품인 영액(靈液)은 음력 오월, 유월 두 달 동안만 받을 수 있고 혹시 다른 달에 가게 되더라도 빈손으로 나오게 된단다.

그런데 이 영액(靈液)이란 도대체 뭘 말하는 거지? 영액을 다른 말로 풀면 정(精)이다. 정(精)이란? ……. 그렇다. 쉬이 대답하기 어렵다.^^;; 이럴 때 아껴뒀던『동의보감』을 참고해보자. “정은 몸의 근본이다(精爲身本).”, “정은 지극히 보배로운 것이다(精爲至寶).” 정이 근본[本]과 보물[寶]이라니 엄청 중요한 건 알겠다. 게다가 정은 은밀하게 숨겨 잘 간직해야 하며 수련을 해서 아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아무래도 이렇게 귀한 것이 그냥 주어질 리 없다. 망종을 망종답게 보내야 리환궁에도 갈 수 있고 더불어 영액도 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아 욕심난다. 갖고 싶다. 영액!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精)을 기르는데는 밥이 최고다. 특히 가마솥에 밥을 할 때 가운데 모이는 밥물은 정을 기르는 최고의 보약이다. 뱀이나 웅담, 해구신 이런 것들은 비교도 안 된다. 맞다. 밥을 제때 제대로 챙겨먹는 거, 이거 무진장 중요하다.


마이 프레셔스~~ 영액을 찾아서!

영액 즉 정(精)을 얻고 싶다고? 그렇담 정(精)이라는 한자에 주목하라. 쌀 미(米)자가 보일 거다.『동의보감』에서『내경』을 인용하기를 “정은 곡식에서 생긴다.”고 하였고 오곡의 담담한 맛이 정을 잘 기를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제 리환궁이라는 천상의 세계를 고만 탐하고 눈을 아래로 좀 깔자. 땅 위에서 곡식을 직접 기르는 농부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면, 정(精)을 얻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오 마이 갓! 다시 눈을 위로 뜨고 싶을 정도로 그들은 바쁘다. 그래, 미안하다. 절기 쓸 때마다 맨날 농부들 바쁘다고 하는 거 같아서. 그런데 망종은 명실상부 1년 중 농사일이 가장 바쁜 날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생겨났겠나.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온다.” 등등. 망종에 보리를 재빨리 수확하고 그 자리에 모내기를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망종(芒種)이라는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망(芒)자는 풀[艹]이 시들어서[亡] 된 까끄라기를 뜻한다. 즉 망종이라는 절기 자체가 까끄라기로 된 곡식을 파종하는 절기인 것이다.

아하! 그래서 火가 치성한 오월(午月), 농부들의 몸에도 火의 기운이 상초(上焦)까지 꽉 차고 그 기운으로 가열차게 파종을 하는 거구나. 그리고 농부들이 망종의 절기에 비지땀을 흘리며 농사일에 정점을 찍으면, 가을에 주어지는 것이 쌀[米] 즉 정(精)인 거로구나! 정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무더위에 별 보고 나가 오줌 눌 새 없이 별 보고 들어오는 고된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여름의 뜨거움과 열정이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름의 뜨거움을 참을 수 없어한다. 빵빵한 에어컨은 여름의 필수품이다. 한여름에는 코엑스몰같은 실내 아케이드에, 백화점에 사람이 몰린다. 시원한 공간을 찾아서 순회하며 소비하는 모습이 오늘날 도시의 여름풍경이다. 하지만 자연의 리듬은 그리 만만하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살아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여름이 되면 농활에, 국토대장정에 사서 고생하는 일들을 만든다. 집에만 있어도 기력이 딸리는 판에, 떼거지로 다니며 씻지도 못하고, 근육통에, 물집에, 낯선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만 해도 불편할 텐데. 그런 행사가 한번 열리면 경쟁률이 무지 치열하단다. 뭐 스펙이 된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고생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지. 무더위와 싸우고 포기하려는 마음과 싸우고 그 위기를 딛고 넘어선 뒤에 얻는 뿌듯함과 자기애! 요건 돈 주고도 못 산다.

(精)이란 그건 것일 게다. 몸의 차원에서 보자면 계속 생명이 이어지게 하는 것. 그래서 그것은 밥이다. 자존감이다. 지금의 나를 당당히 서 있게 하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精)은 때로는 곡식으로, 또 때론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사람을 낳고 나에게 머무르게 되면 나를 살아가게”(『동의보감』「精」)하는 힘인 거다. 망종에 농부들이 모내기에 하는 데 모든 기운을 다 써야 일 년 배불리 먹고 살 듯, 우리도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정(精) 농사를 지어야 하리라. 망종에 리환궁까지 올라가보자. 달려라. 힘들면 걸어서라도, 기어서라도 가자. 어떻게든 리환궁에 도달해보자. 가서 영액 한 꾸러미씩 챙겨오기를! 굳 럭!

사용자 삽입 이미지모내기를 해본 사람은 알 거다. 모와 모 사이의 간격, 적당히 논바닥에 심는 기술이 필요로 하다는 거. 그리고 이걸 터득하는데 오래 걸지 않는다는 거. 맞다. 누구나 먹고 사는데 필요한 기술은 금방 익힌다. 그게 아마도 우리 생명이고 정(精)일 거다. 무엇이든 되게 만드는 것, 정이고 밥이고 자존심이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보릿고개의 절기, 소만은 잘 넘기셨나요? 네? 덕분에 욕 많이 드셨다구요?ㅋㅋ 그런데 21C 보릿고개는 현존합니다. 저한테는 소만이 그야말로 보릿고개나 다름없었죠. 그동안 함께 살던 제 동거인이 급히 결혼을 하게 되어, 졸지에 독립다운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도 독립 자금이 있어야 하잖아요? 월세에서 살다 전세로 옮겨 보려하는 통에, 있는 돈 눈먼 돈 박박 긁고 없는 돈까지 끌어 모았답니다. 돈이란 게 참 재밌어요. 돈의 비움과 직면하니, 그것도 金기운이라서 그런지 생활의 잉여가 얄짤없이 드러나데요.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실감나게 고민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렇게 통장이 비워지니 친구들이 빈자리를 채워줍디다. 밥이며 간식이며 참 많이 얻어먹고 마음도 훈훈해지는 소만이었습니다.^^;; 비록 비운 것과 같은 것으로 채워주는 친구는 없었지만(!), 분별심을 버리면 비움과 채움이 끝없이 운동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죠. 잃은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무엇이 빈자리를 채워주었는지도 함께 살펴보세요.^^

※ 임진년 망종의 절입시각은 6월 5일 오후 3시 26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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