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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내인생의주역 시즌2

[내인생의주역시즌2] 무망(无妄)과 공부

by 북드라망 2023. 10. 5.

무망(无妄)과 공부

 

天雷 无妄(천뢰무망)
无妄, 元亨, 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무망괘는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그 올바름이 아니면 화를 자초하고, 가는 바를 두면 이롭지 않다. 

初九, 无妄, 往吉.
초구효, 망령되지 않음이니, 그대로 죽 나아가면 길하다.

六二, 不耕, 穫, 不菑, 畬, 則利有攸往.
육이효, 밭을 갈지 않고서도 수확하며 1년 된 밭을 만들지 않고서도 3년 된 밭이 되니,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六三, 无妄之災, 或繫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육삼효, 망령되지 않음의 재앙이다. 혹 소를 매어 놓았더라도 길 가던 이가 얻으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된다.

九四, 可貞, 无咎.
구사효, 올바름을 지킬 수 있으니, 허물이 없다.

九五, 无妄之疾, 勿藥, 有喜.
구오효, 망령되지 않은데 병이 생긴 것이니 약을 쓰지 않더라도 기쁜 일이 있다.

上九, 无妄, 行, 有眚, 无攸利.
상구효, 망령되지 않음에서 움직여 나아가면 화를 자초하고 이로울 바가 없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3년이 넘었다. 10년 전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시작된 소위 치매증상이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후 더욱 심해지셨다.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자식으로서 도리를 못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안심도 되었다. 비록 자식들과 함께는 아니지만 혼자 계시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위안했다. 요양원에서는 매일 그날그날 진행된 프로그램 속 엄마의 모습을 올려주었다. 엄마의 표정에 따라 일희일비했다. 우울해 보이면 따라서 우울해지고 조금이라도 환하면 내 마음도 환해졌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면회 가서 얼굴을 보고 외출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쉬운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코로나의 여파로 면회가 금지되었다. 중간에 잠시 코로나 상황이 나아졌을 땐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있었다. 의례적인 짧은 몇 마디와 늘상 똑같은 단답형 대답. 그리고 다시 등 돌려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마음은 이전보다 더 무거웠다. 그러다 다시 전면적으로 면회가 금지되었다. 4~5개월 전부터 엄마의 활동참여가 현격히 줄고 얼굴표정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돌아서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거의 1년 가까운 동안 자식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탓에 더 안 좋아지신 건 아닌가 싶은 자격지심에 마음이 어두워졌다. 지금 엄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엄마의 표정처럼 점차 무감해지고 있다. 이대로 그냥 스러져갈 엄마의 여생, 힘들어도 엄마의 여생을 돌보아 드리는 게 자식의 도리였을까. 막상 제대로 돌볼 자신도 없으면서 하는 생각이니 망령된 생각일 따름이다. 지금 내가 엄마에 대해 가장 가슴 아픈 건 엄마의 삶이 너무 허망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엄마의 허망해 보이는 삶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니면 나의 이런 마음이 헛된 것일까. 나는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무망괘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妄망’에는 허망, 망령, 거짓, 속임, 제멋대로 등의 뜻이 있으니, 무망은 허망하거나 망령되거나 거짓되거나 제멋대로가 아닌 어떤 마음이다. 천뢰무망은 하늘인 건괘가 위에 있고 우레가 치는 진괘가 아래에 있다. “움직이되 하늘로써 움직이면 진실함이 되고, 인간의 욕심으로 움직이면 거짓됨(妄)이 있다.”(정이천, 『주역』, 521쪽)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늘의 이치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망령되지 않음이라 한다. 하늘은 만물에게 망령되지 않은 하늘의 본성을 주었다. 그 부여받은 진실무망의 도에 따라 산다면 ‘천지와 그 덕을 합치한다’(같은 책, 522쪽)고 했다. 그럼 인간이 부여받은 무망한 마음, 즉 하늘과 천지자연의 이치에 비추인 나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10년 전 쯤부터 서서히 정신도 몸도 무너져가는 엄마를 보고 두려움이 올라왔다. 아니 말로만 듣던 치매를 이렇게 옆에서 겪게 되다니… 그 두려움은 이전 같지 않은 엄마로 변해가는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마를 감당하는 일이 나의 일이 된다는 것이 보다 솔직한 두려움의 실체였다. 증상이 심해지지 않았을 땐 가까이 살면서 엄마와 함께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전적으로 엄마에게 매달려야 할 시점이 되자 갈등이 일어났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잠시라도 접어야 하나. 그렇게라도 하면 혹 한결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러나 치매는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병이었다. 엄마를 모시는 문제로 남동생과도 감정적인 마찰이 생겼다. 우여곡절을 거쳐 요양원으로 들어가시고 난 후, 나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마음은 늘 한 곁에 자유롭지 않은 지점이 있었다. 그 감정들은 복합적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들, 불쑥불쑥 올라오는 보고 싶은 마음, 일말의 죄책감, 안쓰러움, 허망함 … 따위들. 이런 나의 감정들을 볼 수 있게 해 준 건 이곳 감이당 연구실에서의 공부였다.

공부는 변함없는 하늘의 이치, 천지자연의 이칙을 배우는 일이다. 매일 해가 뜨고 지며 낮이 오고 밤이 온다. 따뜻한 봄이 오면 여름, 가을을 거쳐 추운 겨울이 온다. 변함없는 천지운행의 법칙이다. 하지만 어느 하루도 어느 계절도 아니 어느 한 순간도 똑같을 때가 없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 쉼 없이 하늘은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일 때도 있지만 천둥 번개 치고 우레가 진동하며 격렬하게 요동칠 때도 있다. 홍수와 가뭄과 지진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시시때때 변하는 조건에 따라 천변만화하며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렇게 끊임없는 변화와 사건의 연속 속에서도 천지의 운행은 한결같다. 온갖 변화무쌍한 일들을 받아들이며 변함없이 항상한 것이 무망이다.

 

 

천지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 하늘이 그때그때 조건에 따라 온갖 변화와 일들이 일어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 닥쳐온 병은 엄마의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엄마의 몸과 마음과 여러 조건들이 엮여서 만들어 낸, 자연인 인간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노화의 과정중 하나일 뿐이다.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하늘과 자연의 이치다. 거기엔 좋음도 나쁨도 옳고 그름도 없다. 그저 매 순간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인 나는 과거의 엄마가 아니라고, 더 이상 함께 할 기억이 없다고, 원치 않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망령되이’ 슬퍼하고 걱정하는 꼴이었다. 이런 내 마음의 근저에는 막연히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막상 엄마를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자식의 도리를 운운하며 스스로 번뇌를 만드는 것도 그렇다. 마치 내가 가장 엄마를 잘 알고 있고 가장 엄마에게 잘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역시 자신을 속이는 거짓되고 망령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삶이 허망하게 여겨졌던 나의 마음 역시 허망하지 않은 좋은 삶을 특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온전하든 그렇지 못하든 하늘 아래 천지자연의 모든 삶은 삶 그대로의 가치로서 존재할 뿐이다. 

무망괘의 주인공은 초구효다. 천둥우레처럼 세상을 진동시키고 깨어나게 해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한다. 이는 강함이 밖으로부터 와서(剛自外來) 유한 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올바름으로써 올바르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모습이다. 무망의 올바른 이치로 그간 나에게 일어났던 엄마에 대한 마음들을 보았다. 하늘은 인간인 나에게 진실무망한 본성을 주었다면 엄마는 내게 그런 덕을 받을 수 있는 신체를 주었다. 몸으로써 연결된 존재인 엄마. 어떤 이성적인 판단 이전에 몸으로써 반응하는 관계다. 나는 엄마에 대한 애착 때문에 생긴 그간의 마음들을 받아들였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무망괘에 비추어 들여다보는 과정은 말 그대로 무망을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그로써 망령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得志) 공부는 곧 무망의 길을 가는 것임을 알았다. 나의 본성이기도 한 무망을 깨우치는 길로 나아갈 때(无妄往)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무망한 그 길(道)이 길(吉)한 이유이다.

 

 

글_안혜숙(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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