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질문자1: 선생님이 무섭습니다.
제 요즘 고민은 ‘선생님이 무섭다’입니다. 제가 다년간 공부를 했기 때문에 단련이 이미 되긴 했는데, 최근 들어서 좀 약간 공포감을 느낄 정도가 되가지고, 쫄아가지고 뭘 못하겠는 상태가 있어요. 그게 감정적인 미움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정화스님: 그것이 감정적인 미움이나 아니나 공포라고 하는 감정이 느껴지면 똑같은 거예요.
질문자1: 저도 선생님이 밉지는 않은데 자꾸 쫄리니까 뭘 못하겠어가지고, 안 쫄고 공부를 하고 싶은데…
정화스님: 못한 나를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는 신체를 만들어야 돼요. 잘한 나를 들어내려고 지금 자기를 엄청 쪼인 거예요. 그 선생의 잘한 목록에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요. 자기 자신도 자기 잘한 목록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저 선생님 눈에 쏙 드는 그런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겠어요. 근데 선생으로 딱 정해놓으면 그다음부터는 거기에 잘 맞추려고, 맞지도 않는데 막 억지로. 그래서 불교 경전에 보면 자꾸 나오는 소리가 “둥근 기둥을 가지고 네모난 거기다 막 집어넣으려고 쓸데없는 애를 쓴다.”는 비유가 많이 나오는데 지금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 거울을 보면 굉장히 좋은 점도 선생이 보면 안 좋을 수가 있어. 여기서 이걸 떼어다가 여기다 맞출 수가 없어. 그런데 그 선생한테 훌륭한 제자인 것처럼 자기가 비춰지기를 원하면 그 일이 이뤄지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원을 빨리 내려놓고 “나는 선생한테 배우긴 하지만 선생과 나의 관계에서 난 제일 꼴등이에요.”라는 것을 빨리 터놓고, 거기에 칭찬받을 생각 일체 하지 말고 그냥 ‘칭찬하면 좋고, 안하면 네 탓이고.’(일동 웃음)
이것을 빨리 익히지 않으면 공부해서 편해지겠다고 하는 공부가 자신을 옥죄면서 인생 허비하는 거지. 그 공포가 다른 공포랑 똑같아. 안에서 느끼는 거는 똑같은 거예요. 하나는 상대가 무기를 들고 나를 해하는 거고, 하나는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받는 것처럼 내부에서 만들어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체가 받는 느낌은 마치 지나가는데 어떤 나쁜 놈이 나와서 막 공격하는 거랑 똑같아. 자기 신체는 똑같이 지금 굉장히 스트레스와 공포를 받고 있는데 선생은 훌륭한 분이어서…(이렇게 생각하는 거랑) 상관없는 거예요. 선생이 훌륭하던 안하던 나한테는 똑같이 지금 받고 있는 거예요.
요즘 혼자 사는 여성들 뒤에 따라가는 이상한 남성들 있잖아요. 그런 것에서 느끼는 공포가 저것과 똑같아. 선생은 전혀 안 해도. 자기 신체는. 그래서 빨리 네모난 기둥을 동그란 구멍에 맞추려고 그렇게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서로 안 맞는데 뭐 할라고 노력을 해. 그리고 그 선생이 “너는 항상 꼴찌야.” 그러면 그냥 귀로 듣고 흘려버리고 그런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그 선생하고의 관계를 끊어야지.
근데 어디 가서도 저런 분들은 항상 맞지도 않는 홈에다 맞추려고 열쇠를 막 계속 쓸데없는 열쇠질만 하니까 인생이 괴로워. 안 맞는다니까.(일동 웃음) 어쩌다 맞으면 그냥 우연히 그런 거예요. 거기다가 계속 되지도 않는 열쇠를 찔러가지고 헛수고 하면은 인생이 괴롭지.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 무섭잖아요. 열어야 되는데 안 열리니까. 그것은 아까 말한 대로 밤중에 지나가는데 무슨 강도 만난거랑 똑같다니까. 신체가 느끼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어. 공부를 뭐 할라고 해. “꼴등해도 좋다.”라는 생각 빨리 만들어야 돼요.
질문자2: 저는 살아가면서 자존심을 버려야하는지 갖고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어떤 것으로 자존심을 세울 것인가라는 항목이 중요합니다. 돈 많은 것으로 자존심 세우려면 전 세계에서 1등 부자만 가능하고, 무엇을 잘 외우는 사람은 24시간 기억을 잘하는 것으로만 자존심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를 자존감 있게 느끼는 설정을 대부분은 잘못해놓고 그것이 나한테 없으니까 나는 존재가 이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항목들은 DNA의 처지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우리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설계도를 갖고 있고 인식의 내용을 지배하고 있는 DNA는 그런 것들을 무가치하게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통로에 가치 없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학습하면서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배워왔어요. 쓸데없는 자존감의 덕목을 정해놓고 “나는 이런 것이 없으니 인생이 이렇다.” 이래요. 그러나 DNA 설계에서 보면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나이가 40억 살이에요. 태어나서 몇 십 년 되었다고 해서 내 나이가 몇 십 년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생물의 나이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거예요. 매일매일 2000억 개씩 세포가 바뀌어요. 하나가 나가면 하나가 채워져야겠죠? 채워지는 순간 그 자리에 들어있었던 본래 있었던 세포의 전 역사적 정보를 그대로 상속합니다. 새로 생겼는데 역사를 상속받는 거예요. 그런데 40억년동안 살아오면서 그 애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은 방금 같은 대부분은 다 가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가장 존재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딱 들지 않는 한, 자기 존재적 가치와 어긋나는 것을 가치 덕목으로 설정해놓고 스스로 괴로워하도록 하는 것 이예요. 오늘부터 가셔서 “자존감을 어떻게 세울까?”는 문제가 아니고 “무엇을 내가 자존감으로 여기고 있는가?”를 알아가지고 잘못 설정하고 있는 것을 빨리빨리 버려야해요. 그거 안 버리면 일생동안, 전제가 틀리면 결론은 논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안 맞는 것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일이 많아요. “나는 무엇을 가지고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는가?”라고 할 때 그것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그것을 알기위해서는 생물학 공부를 제일 먼저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물학 공부를 제일 먼저 해야 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인지적 가치가 불교라던가 많은데서 환상과 같다고 합니다. 환상. 아까 2000원짜리 커피하고 4000원짜리 커피를 놓고 4000원짜리 커피의 가치를 막 환상으로 만들잖아요. 뇌에서 인지하는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사실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든 환상이에요. 여러분이 얘기하다보면 보일 거예요. 실제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는 내가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보인다고 하는데 정말로 이렇게 보이는지 알 수가 없어요. 왜 알 수가 없냐하면, 이것은 직접적으로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두 번째, 다르다고 하는 것은 내가 보는 이 해석의 지도하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해석의 지도가 조금씩 달라. 우리 안에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비춰 아는 지도가 다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동일할 수 없는데 동일하다고 상호 인정하는 거예요. 상호 인정. 근데 직접적으로 보는 것조차도 서로가 이렇게 다른데, 우리가 가치 등급을 매기는 것은 환상에 또 환상을 만드는 거예요. 이 환상에 환상 만드는 것 가운데 사람을 참 골탕 먹이는 것은 방금 말하는 쓸데없는 자존감. 이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이 쓸데없다고 하는 이유는 설정의 항목이 완벽하게 틀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부터 중요한 일은 생물학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내가 무엇을 가지고 나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것인가를 잘 판단한 다음에 지금까지 학습되어 있는 존재적 가치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빨리 깨닫지 않으면 무엇을 설정하던, 무엇을 설정하지 않던 아무 상관없어요. 설정하면은 그 설정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면 본인이 쪼그라드는 거지. 그리고 잘못 설정된 가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1퍼센트의 힘 있는 사람들이 전 세계를 이리저리 하는 것이지. 헛된 망상을 심어주면서. 오늘부터 가서 할 일은 그거예요. “자존감을 갖느냐. 않느냐.” 문제가 아니고, “무엇을 자존감으로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해요.
질문자3: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최근 들어서 스스로를 좀 부정한다고 할까요. 어떤 사건이 왔을 때 스스로 긍정하고 가벼워지기 보다는, 나를 부정하는 것 뿐 아니라 어느새 삶을 부정하게 되고 그래서 뭔가 계속 무거워지는 느낌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공부하는 건데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요? 어떻게 사유를 해야 할지요.
정화스님: 우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사건들을 부정적으로 보도록 신체의 코드가 세팅되어 있어요. 기본적으로. 왜냐면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인 편도체가 손가락 크기만 한데, 이것에 신경세포가 천만 개 있습니다. 근데 천만 개 중에서 팔백만 개 이상이 부정적인 신호하고만 일을 해요. 그 다음에 2백만 개 미만이 긍정적인 것하고만 신호를 주고받아요. 그러니까 같은 일을 하면 거의 5분의 4는 부정적인 것만 나오고, 5분의 1정도가 긍정적인 것이 나와요. 여기 다섯 가지 사건이 만나는 데, 그 다섯 가지가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다 긍정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할지는 몰라도. 막상 감정적 해석 코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것은 훨씬 더 잘 찾아요. 부정적인 신경세포가 더 많으니까 잘 찾는 거예요. 긍정적인 것은 덜 찾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거기까지는 굉장히 생리적인 움직임이에요.
근데 이것이 지도를 100% 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훈련을 하는 거예요. 내가 생리적으로는 그렇게 보긴 하지만 사실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보는 것이지. 그래서 이제 다섯 개 중에서 2개를 긍정적으로 보는 훈련을 계속 하면은 2백만 개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커져가고 8백만 개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줄어들어요. 많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게 아니고, 줄어들고 커지는 힘이 세져요. 그래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고, 그렇게 볼 수 있는 개연성이 훨씬 많으니까. “아~ 생물학적으로 그렇구나.” 그러나 세상이 그렇지 않아요.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지금부터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나를 원하는 게 아니고, “나는 지금 부정적으로 보는 거구나.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그걸 통해서 많은 어려움을 해결했으니까. 훌륭한 일을 했어.” 그러나 그것이 힘이 커지면 불필요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져서 자기를 먹기 시작하니까 그걸 잘 알고 “편도체야. 그렇게까지 강하게 할 필요는 없어.”라고 자꾸 자기한테 이야기 해 주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할 때 가족한테 “원함이 없이 좋아하라”고 했잖아요. “원함이 없이” 원함이 없이 좋아하는 첫 번째 대상은 자기예요. 내가 지금 부정적인 감정이 자꾸 일어나. 그거 싫어하면 안 돼.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일어나도록 돼있어. 지금까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좋아.”라고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러면 뒤에 있는 2백만 개가 힘을 얻어가지고 이야기 해주면서 자기 삶에 대해서 싫어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다.”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좋고 나쁜 게 아니고, 그냥 그 애들이 그냥 자기 습관대로 펼쳐놓은 거예요. 편도체가 부정적으로 자기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8백만 개가 자기 일만하는 거예요. 2백 개는 자기 일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훈련을 통해가지고 이것이 어느 정도 조율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부터 하는 데. 첫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는 내가 좋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좋아해라.”예요. “잘했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잘했어. 그래서 네가 여기까지 살아남았어.” 이렇게 하고 다음부터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훌륭했다.”라고 자꾸 이야기해야 해요.
그 담에 심리적 상황을 계속 바꿔가는 거예요. 연상 훈련을 통해가지고, 그래서 그렇게 한 바로 다음에 긍정적인 느낌이 왔을 때를 연상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가만있을 때는 “오는 것은 잘 했어.” 그리고 이미지를 바꿔서, 이미지를 자꾸 띄워 올려야 돼요. 여러분 특히 자동차 판매가 많이 그러는데, 차를 파는 데 옆에 항상 아주 눈에 탁 튀는 여성분들을 세워 놓잖아요. 모델로. 차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눈이 싹 갔다고 이리 싹 돌렸는데 이 여성분이 마음에 들면 이 차가 마음에 들도록 나한테 인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보는 연상에 마치 차 옆에 모델을 세우듯이, 그렇게 감정을 세우고 나면 다음 찰나에 그것이 오더라도 이것을 통과해서 보도록 해서 감정이 많이 누그러져요. 그래서 이때는 이미지 훈련을 해야 해요. 가만히 있을 때는 내가 마치 차 옆에 있는 모델과 같이, 느낌을 떠올려 봐요.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 자꾸 그렇게 떠올리는 이미지 훈련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정리_금요대중지성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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