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면서 물질인 정보가 우주를 이룬다
질문자: 정신과 물질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요?
과학공부를 하면서 우리 몸이 부모님의 유전을 받고 이런 것을 떠나서, 일단 몸의 지수화풍이 모여서 물방울이 연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라고 이렇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몸이라는 건 인연 따라서 지수화풍이 모여서 이런 몸이 생기고 조건 따라서 계속 이어져가는 과정인데, 생각도 역시 마찬가지로 조건이 됐을 때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알게 됐습니다. 잠잘 때 의식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일어났다, 사라졌다하고 의식으로 전환돼서 나라는 의식이 생길 때 까지 시간이 걸리고 이런 걸 관찰하면서 생각과 조건이 닿아야 생긴다. 이런 걸 관찰하면서 정신과 물질이 다 사라지는 현상이 닙빠나(열반)라고 말씀은 들었지만, 닙빠나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신과 물질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그런데 닙빠나는 빠르나따가 실제로 있는 거라고 하기 때문에…
정화스님: 정신과 물질이 우주의 기본 속성입니다. 정신과 물질이 사라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정신과 물질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틀린 것입니다. 정신이면서 물질인 정보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과 물질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지수화풍이라는 이야기는 한 2~3천 년 전에 자연과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세계를 설명할 때 그냥 도입한 방법이에요. 지수화풍은 틀린 말이에요. 불교경전도 2천5백년, 수천 년 전에 쓰여 진 책이다 보니까 그 말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 중에 화가 있어요. 화, 뜨거움. 뜨거움은 몸의 분자들의 운동량이 얼마인지 정한 거예요. 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물질의 운동이 심해지면 열이 나고, 심하지 않으면 차가워지는 거예요. 화가 없어요. 물질의 운동성이 화로 등장한 거예요. 지수화풍을 받아들인 개념은 요즘은 옛날에는 어떤 지구를 이루는 근본적인 어떤 하나가 있어 가지고 원탑이 지구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부수는 거예요. 어떤 것에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원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든 것들은 여러 인연이 만들어 했다고 요즘 같으면 주기율표 있지요? 주기율?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자들이 지수화풍이예요. 그러면 지수화풍이 가지고 서로 연결될 때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아까 화 같은 것도 발생하는 거고 풍 같은 것이 발생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또 그전에는 이것은 4대설이고 또 5대설도 있어요. 그런데 지수화풍만 말하면 이것은 물질처럼만 들리잖아요. 땅 예를 들면 땅지(地)자 물수(水)자 불화(火)자 바람풍(風)에요. 움직임 네 개가 옛날에는 이것이 우주를 이루는 기본요소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명백하게 그것이 우주를 이루는 기본요소가 아니라고 밝혀졌어요. 이것을 가지고 설명하면 안돼요. 다만 그때도 우주는 유일자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생각을 부처님께서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인도에서 보면 타대애칸이라고 해서 유일자가 있어요. 유일자가 생각을 탁 하고 일으키니까 그랬더니 우주가 탄생했다고 말을 했어요. 부처님이나 다른 자연과학자들은 아닙니다. 우주는 원자들이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것들이 모여서 우주가 됐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배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그 요소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더 나아가서 아까 말한 대로 정신과 물질이라는 말 자체가 아예 용인되지 않는데.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20~30년이 조금 넘은 책이 있어요. 그 챕터 중 하나가 뭐라 했냐 하면은 양자는 자기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파동이면서 입자인 경우는 한 번도 없어요. 파동이거나 입자에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관찰 가능한 것은. 그런데 어떤 하나가 가다가 ‘여기서 파동으로 나타내야 되겠다.’ 하면 파동으로 나타낸다. 다른 하나가 지나가다가 ‘여기는 입자로 나타내야 되겠다.’ 하면 입자로 나타낸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물질입자가 챕터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자기가 파동으로 나타내야 될지 입자로 나타내야 될지를 알면서 지나간다는 거예요. 물리학자가 써놓은 말입니다. 양자물질이 알면서 자기모양을 그렇게 드러낸다는 거예요. 생물분자들은 다 압니다.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은 수정이 딱 되면 정자난자가 만나 수정이 딱 되면 유전병이 있는 영국에서 유전병을 고친 사례가 하나 있어요. 수정란을 보니까 대대로 집안에 유전병이 있어요. 이 유전정보를 떼어내고 병이 없는 유전자를 넣어 삽입해야 되는데 사람이 안 해요. 사람이 하는 일은, 크리스퍼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택배이면서 정보를 바꿀 정보를 입력해요. 택배기사하고 똑같아요. 가서 고치기도 하는 택배기사이면서 수리기사예요. 이 크리스퍼라는 물질분자는 어디로 갈지를 몰라. 카스라인이라는 물질분자, RNA인데, 이놈은 기사에요. 기사. 그래서 자기가 바꿔야 할 유전정보하고 수리기사를 싣고 그 작은 세포 속에서 그것만 넣어 놓기만 하면 그 둘이 알아서 거기에 도착을 해요. 도착하면 다음에 수리기사가 자기가 가져온 정보를 부착해요. 그리고 전부다 물질들이 하고 있어요. 어디로 갈지 알아, 어디를 자를 줄 알아, 어떻게 붙일 줄 알아. 옆에는 도와주는 애들이 다 있어요.
이 사건 하나에 전부다 우리 의식은 발끝에서 일어나고 손끝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의식을 해요. 근데 발끝 자체는 자기 일만 하기 때문에 전체 의식상황은 몰라요. 이건 큰 회사의 회장님과 올해 갓 들어간 신입사원의 역할과 똑같아요. 신입사원은 회사 전체가 돌아가는 상황은 모르잖아요. 그러나 그 사람도 알고 일을 하잖아요. 올해 들어가서도. 우리 모든 발끝 손끝에 있는 세포들도 물질이지만 알고 자기 일을 해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자극하면서 다 몰려야 해요. 그래서 아까는 생물의 물질이 아니에요. 양자라고 하는 것은. 양자라고 하는 물질 자체가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현상해야 될지를 이 환경을 보면 딱 알아. “아 여기는 내가 파동으로 나타나야겠구먼. 아 여기는 내가 입자로 나타나야겠구먼.” 이렇게 알듯이 생물 분자들도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 그냥 딱 보면 완벽하게 단백질이에요. 우리가 먹는 단백질. 근데 이들이 다 알고서 일을 해. 그래서 정신과 물질이라는 말이 성립이 안돼요.
다만 이놈들이 아까 말한 대로 말단사원이나 중견간부들을 전부 모아가지고 최종적인 이미지를 만들 때가 의식이 되는 거야. 의식이. 의식이 어디서 오냐면 몸 전체와 뇌가 상호 네트워크가 이루어졌을 때만 나와요. 상호 네트워크가 일어나서 나오는데, 의식의 스위치를 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참선할 때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의식집중이 일어나면, 젤 많이 경험하고 저도 제일 많이 경험하는 것 중 하나가 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거야. 몸의 감각은, 다른 감각지각이 있기 때문에 감각을 모은 우체국에서 배분을 해요. 몸의 감각을 해석하는 부분, 눈의 감각을 해석하는 부분, 귀의 감각을 해석하는 부분. 시상이라는 우체국에서 다 나눠줘요. 나눠서 다 받기는 하는데 몸에서 감각을 해석을 하는 부서가 있어요. 뇌의 꼭대기 즈음에 있어요. 이 꼭대기의 스위치가 꺼져있으면 몸에서 온 감각이 해석이 안돼요, 느낌이 안나. 오는 것은 있는데 느낌이 없어요. 근데 우체국의 스위치가 딱 꺼져버리면 아는 것은 있는데, 화물이 없어. 우체국이 배부해가지고 여기서 최종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체국이 일을 안 해. 그럼 의식되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아. 앉아있는데 아는 것은 있는데 아는 현상이 없어. 참선할 때 그런 게 보여요. 그러다가 이 뇌관에 있는 지각스위치가 탁 꺼져버리면 깊은 잠처럼 갑자기 모든 의식현상이 사라져버려. ‘깊은 잠처럼’이 중요해 깊은 잠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열반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좌뇌 스위치가 꺼지고 우뇌 스위치만 켜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우주와 합일된 자기를 잘 알아. 갑자기 자기가 우주가 돼. 그래서 뇌의 스위치들이 어떻게 연결 작동하느냐에 따라서 세계가 달라지는데, 지금 이 스위치들이 전부 다 작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 300년 전부터 사건 사고를 분류해서 언어도구로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도 뭐만 배우냐, 좌뇌를 활성화시키는 훈련, 계산하고 따지는 훈련. 그러니까 통일적 자아를 경험하는 우뇌의 활동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어져요. 옛날 사람들은 좌뇌를 너무 많이 안 쓰니까 조금하면 좌·우뇌의 이미지 현상들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었는데, 오늘날에는 우뇌의 작동을 할 수가 쉽겠어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계속해서 좌뇌의 계산만 막 하고 컴퓨터라는. 무슨 말이냐면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말에요. ‘er’붙으면 사람이잖아요. 계산하는 사람인 거예요. 우리 뇌를 컴퓨터 사람처럼 만드는 거죠. 이삼백년부터. 그래서 앉아있으면 누구나 분별만 많이 해요. 분별만. 옛날부터 너무나도 분별을 많이 해서 부처님께서 ‘분별하지 마시오. 분별하지 마시오.’ 했어요. 왜냐하면 분별을 쉬어야 자기 삶의 다른 면들이 보여요.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주로 분별하는 것은 좌뇌의 기능을 가지고 세상과 접속하는 거예요. 아까 말한 대로 좌뇌의 기능도 있고, 우뇌의 기능도 있고, 우체부의 기능도 있고, 뇌관의 기능도 있고. 이것들의 작용 양상에 따르면 자기가 접속한 세상이 계속 달라지는 거예요. 굉장히 분별을 잘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은 자기 삶 전체 중에서 삼분의 일, 사분의 일밖에 못 쓰는 거예요. 물론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긴 해요. 배고픈데도 배부르다고 분별하면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래서 마음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고 신체의 작동을 자기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스위치를 켜고 끄는 능력을 획득하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그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나한테 욕을 하면 마음 편해지는 스위치를 올리지를 못해. 실제는 그것을 훈련만 하면 올릴 수도 끌 수도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지금 자동반사만 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아니에요. 깨달음은 스위치를 작동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근데 슬프게도 아까 말한 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삶을 살면서도 자기 삶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착각하는 스위치를 다 켜놓고 있어. 맨날 가면 “잘못했습니다. 죄인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 내가 죄인인 줄을 저 분은 어떻게 아셨지?’ 가서 돈을 막 부쳐야지 하고. 쓸데없는 헛소리에 그냥 호주머니 다 털어가지고. 아무도 그런 죄인 아니에요. 타고난 죄인 아무도 없어요. 유전자를 물려줄 때 정보가 상속되기는 하는데, 정보를 운용하는 체계를 상속받은 자한테 일임해 놨어요. 가나다라만 주고 “네가 책을 쓰세요.” 이랬어요. 부모가 가나다라를 조작해서 글자를 만들어서 후손한테 물려주는 게 아니고 자모음만 물려주는 거랑 똑같아요. 부모가 설사 굉장히 잘못한 일을 했었다고 다 지탄할지라도 그 밑에 태어난 일은 부모 죄를 하나도 갖고 태어난 일은 지구상에 하나도 없어요. 왜 그렇게 했냐면 생물들이 40억년을 살다보니까 네가 살아갈 세월이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없어요. 네 이야기는 네가 써서 살라고, 완전히 글자의 자모음만 물려준 거예요.
자모음을 조합을 달리해서 다른 이야기책을 써가고 있는데, 부모님들은 착각하는 거지. 부모가 한 30년 살아봤으니까 내가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거기에 심으려고 하는 거예요. 물려줄 때는 “그렇게 살지 마세요.” 해놓고 교육할 때는 그렇게 살라고 말해. 그러니까 둘이 부딪히는 거예요. 왜 자모음을 물려줄 때는 내 이야기는 내가 쓰라고 해 놓고, 부모가 내 이야기를 쓸라고 하는 거랑 똑같다니까. 유전자를 물려받을 때. 태어나면서 이 만큼의 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태어나서 20년 간 부모가 부모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타인이에요. 다른 사람이에요. 아까 유전 개체가 99.9%가 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와 똑같아요. 타인도 99.9%가 똑같아. 부모와 배열 수와 특징만 좀 같을 뿐이지. 두 사람을 20년간 삶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만 가지고도 그 일은 엄청난 복을 지은 겁니다. 저나 여러분들은 다 태어날 때 죄는 한 푼도 없었고 커가면서 최소한 두 사람한테 엄청난 삶의 의미를 만들어준 이 복이 일생을 사는 거예요. 근데 다 엄청난 죄를 지은 것처럼 착각을 해가지고 아무도 죄를 그렇게 진 일이 없고, 돌아가시면 또 이 정보가 흩어져가지고 다들 나쁜 데는 아무 데도 안가. 혹시 누군가가 옆에서 당신 부모가 지금 나쁜 데서 고생하고 있으니까 돈 천만 원을 내서 천도제를 하랬다고 하면 ‘아, 새로운 사기꾼을 만났구나. 빨리 정신을 차려야지.’ 하지 않으면 천만 원 뺏기는 거지. 또, ‘아니 당신 아들 보니까 내년에 운수가 너무 나빠서 일 억짜리 굿을 안 하면 죽겠어요.’ 하면 그 사람은 상대를 전혀 모른 사람이거나, 알았다 할지라도 이 아들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 아들 보고 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꿈같은 헛것을 보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얘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냥 그 사람 머릿속에 떠오르는 헛것이여 헛것.
그런데 거기다 이렇게 바치는 사람 있잖아요, 굿하면서. 아무도 조상은 후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모든 조상은 전부 다 자기 후손들이 즐겁고 웃고 살기를 바라요. 그러니까 돌아가시고 나면 49일만 울고 그 다음부턴 절대 울면 안 돼. 부모가 자식 눈물 좋아하지 않아. 뭐 하러 울어. 어릴 때는 뭣 모르고 울었겠지만 나이 들면 즐겁게 살아야지. 아무런 허물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경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경복! 경복궁이죠, 임금이 사는 궁궐이 경복궁이에요. 경복이 무슨 말입니까 가장 큰 복이란 말이에요. 현생 인류는 다 경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예요. 그러고 경복을 하며 살았어요. 근데 이것이 착각을 해가지고 자기를 비하하고 뭣하고 하면서 쓸데없는 사건을 막 일으켜 가지고 온갖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에 전혀 속지 말고 또 그런 것을 누가 막 해 가지고 “다~ 꼭두각시처럼 우리를 하고 있다.” 이런 말들을 듣고서 이렇게 또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긴 해요. 어쨌든 수 천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할 거에요. 아마. 그러나 현재 밝혀진 아인슈타인이 아니 아인슈타인이 아니지. 다윈이 나온 150년, 160년 이후부터는 점점 이런 생각들이 방금 같은 생각. 제가 방금 한 이야기로 바뀌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대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도 좋습니다.
정리_금요대중지성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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