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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청년 주역을 만나다

[청년주역을만나다] ‘덜어냄’ 위에서 살고있는 우리

by 북드라망 2022. 2. 3.

‘덜어냄’ 위에서 살고있는 우리


요새는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아침에 복지관에 출근하고 점심은 웬만하면 복지관에서 먹는다. 그 후 퇴근하고 연구실에 와서 또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한다. 돈 나갈 구석이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날 전역한 공익형들이 놀러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한 명이 지나가는 말로 ‘지형이가 밥 한 번도 안 사지 않았어? 돈도 많은데 한번 쏴야지!’ 라고 했다. 갑자기 가만히 있는 내 지갑을 왜 건드리지? 뭔가 나의 돈을 뺏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잠깐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성향이 있었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게다가 쓰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남을 위해 쓰는 돈은 뭔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아깝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내가 밥을 사주면 겉으로는 괜찮은 척! 내가 너 사줘서 되게 다행인 척!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이 올라왔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친구가 카페에서 커피와 간식을 사거나 2차 비용을 내면 거짓말같이 올라왔던 감정들이 싹 사라진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쓴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쓴 만큼 돌려받지 못했으면 기분이 안 좋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요새 감이당에서 ‘증여’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손해 보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많이 찔린다.^^; 남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것을 덜어내서 줄 수 있다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드나? 참 신기하다. 그러는 도중 주역 책을 봤는데 마침 덜어냄의 괘가 있었다. 바로 산택손 괘다.

 


손(損)괘는 손실, 희생, 덜어냄의 뜻이며 산을 뜻하는 간(艮)괘가 위에 있고 연못을 뜻하는 태(兌)괘가 밑에 있는 형상이다. 책상이 내 허리 높이라고 해도 누워서 보면 책상이 나보다 높아지듯이 연못이 깊으면 깊을수록 산은 높아진다. 그리고 밑에 있는 연못의 생명력이 산에 있는 온갖 나무와 풀들에게 전해지는 모습이다. 밑에서 덜어서 위를 증진 시키는 모습이다. 괘사에서는 損, 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可用享(손은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다. 바르게 할 수 있으니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어디에 쓰리오? 두 개의 대그릇에 가히 제사 지내느니라) 이라고 한다. 괘사를 보니 덜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하긴 덜어내는 행위 자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에 하기 힘드니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주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덜어낸다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손실이 맞긴 맞다. 돈을 남에게 주든 일을 도와주든! 자신에게서 무엇인가 줄어드니깐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만 놓고 봤을 때의 이야기다. 내 것을 받은 사람은 그만큼의 이익을 얻는다. 운동을 힘들어하던 택견 후배가 내가 사준 밥 한 끼에 조금은 힘이 날 수도 있고 배고픈 친구에게 간식을 사줘서 배고픔을 면할 수도 있다. 그러니 손해 보기 싫어서 계산하는 나의 마음을 덜어내고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덜어냄이다. 이렇게 보면 증여라는 것이 참 좋은 활동(?) 인 것 같지만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 내 눈에는 내가 잃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증여하면 ‘남’이 좋지 ‘내’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나는 누군가의 덜어냄을 받고 있는 ‘남’이었다.^^; 나는 현재 서울 한복판에서 보증금도 없이 월세 20만원으로 셋이서 같이 살고 있다. 심지어 이 집은 큰 방이 하나, 작은 방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있고 거실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다. 물론 월세를 다 내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다. 나머지 부족한 월세는 연구실에서 내준다. 이 말도 안 되는 곳이 바로 연구실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지방에서 공부하러 오시거나 다음날 아침 일찍 수업이 있으신 쌤들이 주로 이용하신다. 이곳에서 지내는 청년들은 월세를 적게 내는 대신에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한다. 이렇게 보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원룸을 구해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그 집을 관리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비는 하루에 5000원이면 해결된다. 연구실에 있는 주방의 8할은 선물로 운영된다. 연구실에서 공부하시는 쌤들이 집에 남는 식재료나 과일, 쌀 등을 선물 해주신다. 그러다 보니 주방팀에서 식재료를 구매할 때 돈이 훨씬 적게 든다. 그래서 끼니마다 2500원에 아주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이 만들어진다. 이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연구실 선생님들과 연구실에서 공부하시는 여러 학인들의 덜어냄 덕분이다! 그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도 하고 군 복무도 잘 마무리하고 있다.

 


나는 연구실에서 밥을 먹고 공부하고 상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있지만, 그것도 그냥 주위의 다른 청년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깐 ‘그런 거구나~’ 싶었다. 내 머릿속에서 금방 잊혀졌다. 하지만 손괘를 통해 손해 보기 싫어하는 것과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자, 조금은 여러 쌤들의 덜어냄 덕분에 연구실에서 생활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정말 많이 받았다는 것도! 그래서 저번보다는 남에게 주는 것이 거부감이 쬐~~금은 없어졌다. 나도 받았으니깐 남에게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직은 100% 기쁜 마음으로 남에게 주기는 힘들 것 같다. 받기는 참 쉽고 좋은데 주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싶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덜어냄 위에서 살고 있다. 이게 맞기는 한데 진심으로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증여를 할 때 그렇게 막 기쁜 마음이 잘 안 올라온다. 이렇게 증여라는 것이 어렵다 보니 괘사에서 믿음을 가져야지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하는 것 같다. 

 

글_김지형(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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