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림(至臨)의 마음을 훈련하는 밥당번
地澤 臨 ䷒
臨 元亨 利貞. 至于八月 有凶.
림괘는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하면 이롭다. 여덟 달이 지나면 흉함이 있다.
初九 咸臨 貞 吉.
초구효, 감응하여 육사에 가까이 다가가니, 바르게 하면 길하다.
九二 咸臨 吉 无不利.
구이효, 감응하여 육오에 가까이 다가감이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六三 甘臨 无攸利 旣憂之 无咎.
육삼효, 기쁜 낯으로만 아랫사람에게 다가가니 이로운 것이 없으나 이미 그것을 근심하고 있으므로 허물이 없다.
六四 至臨 无咎.
육사효, 초구에 다가감이 지극하니 허물이 없다.
六五 知臨 大君之宜 吉.
육오효, 다가감이 지혜로운 것이니 위대한 군주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서 길하다.
上六 敦臨 吉 无咎.
상육효, 다가감이 돈독하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
중국 상고 시대에 큰 홍수가 범람해 나라에 재앙이 닥쳤다. 이 때 우(禹)라는 인물이 임금의 명으로 치수 사업에 나선다. 당시 홍수를 다스린다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 그것은 홍수로 불어난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 살아갈 터전과 먹을 것을 잃은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었다. 재해를 입은 백성들은 기아로 고통받았으며 쇠약해진 몸으로 온갖 질병과도 싸워야했다. 지금으로치면 국토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우의 활약은 놀라웠다. 그는 직접 현장을 진두 지휘하며 홍수를 막고 땅을 북돋아 사람들이 살 곳을 만들었고 범람하는 물이 흘러가도록 물줄기를 터서 물길을 만들었다. 우는 그야말로 백성의 삶으로 직접 들어가 백성들의 고충을 살피고 민생을 보살핀 현장형 리더였다.
주역에서도 민중에게 다가가고 민생을 다스리는 것과 관련된 괘가 있다. 다가감을 의미하는 림(臨)괘다. 림괘의 모습은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 아래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괘가 있다. 땅과 물이 만나면 물이 땅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데 이것을 림괘는 아래의 연못(兌)이 기뻐하고 윗쪽에 있는 땅(坤)이 순하게 따르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위에서 대지처럼 넓은 도량으로 품고 아래에서는 기뻐하니 위아래가 서로 뜻이 맞아 화합하는 모습이다. 림괘의 시대란 두 양효가 아래에서 자라나 양강한 기운이 점차 커지면서 만물이 서로 기뻐하고 호응하는 때다. 하여 형통하고 정도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 그런데 괘사에서는 8월이 되면 흉함이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이 경고는 무슨 의미일까? 지뢰복에서 하나였던 양효는 지택림에서 둘이 되고 지천태를 지나며 계속 양의 기운을 확장한다. 그러나 커지던 양의 기운은 8월에 이르면 거꾸로 음의 세력이 확장되는 시기로 바뀌게 된다. 림괘의 괘사는 비록 지금 양강한 기운이 뻗어가는 호시절이라해도 음양의 생멸 변화라는 이치를 따라 양기가 쇠퇴할 시기가 도래함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상황에서 다가감이라는 림괘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가감이란 단순히 겉으로만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감응하고 소통하며 섞여야 한다. 우(禹)가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 다가가 그들의 고충에 감응하고 그들과 함께 삶의 현장을 일구어 갔듯이 말이다. 림괘를 보면 각 효별로 다양한 양태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소통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각각의 효는 감화하고 감응하며 다가가기도 하고, 감언이설로 다가가기도 하며, 지혜 또는 두터운 덕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우(禹)의 적극적인 실천력에 싱크로되는 효는 육사의 ‘지극한 다가감(至臨)’이다. 육사는 상체의 맨 아래에 있으므로 하체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다. 위에 있는 땅과 아래의 물이 만나는 곳, 즉 민생에 책임을 맡은자가 백성과 가장 가깝고 친근하게 만나는 자리다. 두 팔을 걷어 붙이고 현장에서! 그러나 육사는 음효로 음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들뜨거나 거만하지 않고 겸허하다. 림의 시대에 여섯 효들 가운데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고 교류하는 자, 그런 자가 육사다.
그럼 대중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세를 낮추어 현장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위의 육사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는 초구 또한 양으로써 진취적으로 육사와 공명해 감응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림괘에서 서로의 공감과 공명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다. 위와 아래가 함께 감응할 때 위의 음효가 감싸고 포용하며 아래의 양효가 강건한 힘으로 추진하고 따르는 상호 능동적인 소통의 기예가 가능해진다.
림괘의 육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 적극적으로 소통하지만 이런 지림(至臨)의 마음이 반드시 위아래의 상하 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는 상주하는 학인들 뿐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수백 명의 사람이 오가며 공부를 하는데 이들의 공부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에는 ‘밥과 주방’이 있다. 공부든 활동이든 뭔가를 하려면 먹어야하는데 각자 알아서 매 번 끼니를 해결하려면 연구실이라는 공동체의 역량이 중심으로 모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 연구실에는 하루 두 번, 점심과 저녁을 언제나 먹을 수 있고 이를 위해 학인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하는 밥당번 시스템이 있다. 학인들은 보통 두어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식사 준비를 하는데 밥당번이 되면 그 날 공부하러 온 수십 명의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그렇지만 처음 밥당번을 할 땐 당황스럽다. “난 강의 듣고 공부를 하러왔지 밥하고 설거지하러 온 게 아닌데? 근데 수십 인분 밥을 하라고?!” 그렇다. 연구실은 공동체 공간이고 다들 밥은 먹어야하니 돌아가면서 밥을 한다. 그런데 둘이나 셋이 함께하는 밥당번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학인과 함께 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한 밥을 먹는 학인들 중엔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또 어떤가. 그날의 메뉴가 주어지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든 옆 사람에게 물어보든 아무튼 그 메뉴를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내야 한다. 정신없이 식사 준비를 하고나서도 밥당번은 대부분의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거의 마지막에 식사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건 그렇게 고생한 밥당번도 자기가 돈을 내고 밥을 사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뿐인가. 설거지와 뒷정리, 주방과 식당의 청소까지 하고 나면 그야말로 큰 일을 치룬 기분이다.
처음 연구실에 왔을 때 이 모든 게 낯설고도 신기했다. 그런데 연구실을 오가며 공부 하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밥당번을 하며 북적북적 주방에서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할 때 정말 연구실에서 학인들과 교류하고 공동체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모르는 학인이나 평소에 안면식은 있지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던 학인과 밥당번의 짝궁이 되면 함께 밥을 하면서 친해진다. 밥물을 얹히고 야채를 다듬으며 연구실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앞치마를 두른 채 뒤늦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밥이 맛있었다고 고마움을 건네는 새로운 학인들과 대화를 트는 것도 즐겁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구실에서 밥당번으로 두 팔을 걷어 붙일 때, 내가 편하게 공부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의 조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공동체와 나와의 섞임이자 소통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의 돈을 지불하고서 강의를 듣고 밥을 먹는 교환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밥당번과 같은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나를 공부하게 하고 활동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육사와 초구가 현장에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지림의 마음으로 공부의 장에서 함께 하는 학인들의 식사를 준비할 때 그것은 단순히 노동을 넘어서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과 함께 먹고 살아가기 위해 정성껏 마음을 내는 일이 된다. 공동체의 현장인 주방에서 쌀을 씻고 커다란 프라이팬에 야채를 볶고 걸레로 식당 바닥을 쓸고 닦다보면 이것이 바로 지림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동체의 중요한 현장에서 사람들과 섞이고 이러한 교류 속에 어떻게 나와 모든 학인이 공동체로 존재하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우(禹)는 임금의 명을 받은 고위 공직자였으나 거친 옷을 입고 거친 손으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정치란 높은 자리에 앉아 이것 저것 지시하는 게 아니라 림괘의 육사처럼 지극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어 백성들과 현장에서 교류하는 것이었다.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자에게 공부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여 공동체의 현장에 접속하고 그 속에서 나를 겸허하게 낮추면서 다른 이들과 섞이고 교류하며 밥과 일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나와 공동체가 어떻게 상호 존재하게 되는가를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다.
양강한 힘이 점차로 커지며 기쁨이 생기지만 자칫 자만할 수 있는 지택림의 시대에 육사는 이 시절을 통과하는데 그런 지극한 마음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겸허하게 그러나 부지런하게 몸과 마음을 움직여 타자와 감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연구실의 밥당번은 이런 지극한 지림(至臨)의 마음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또 다른 공부의 장이 아니겠는가.
글_이윤지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동양고전 이야기 ▽ > 내인생의주역 시즌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인생의주역시즌2] 나의 ‘기쁜’ 여드름 분투기 (0) | 2022.03.02 |
---|---|
[내인생의주역시즌2] ‘공부’는 사냥하는 것처럼 (0) | 2022.02.14 |
[내인생의주역시즌2] 기르는 자의 위태로움과 이로움 (0) | 2022.02.08 |
[내인생의주역시즌2] 멈춤의 도리로 차서있는 말을! (0) | 2021.12.29 |
[내인생의주역시즌2] 소인의 개과천선 (0) | 2021.12.21 |
[내인생의주역시즌2] 마음의 등불로 밝히는 변혁의 길 (0) | 2021.1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