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르크의 부활을 꿈꾸며
정철현(남산강학원 Q&?)
라마르크에 대한 추억
중학교 때 배운 진화론에는 용불용설, 의지설, 자연선택설 등이 있었다. 나는 그 중 용불용설과 의지설을 가장 좋아했다. 생명체의 의지나 노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신체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기막힌 이야기. 이 이론은 나를 매료시켰다. 또 만화책에서 기린 이야기를 읽고 나는 확신했다. 기린이 목을 길게 하려는 노력 끝에(용불용用不用), 목을 길게 만들 수 있었다고 말이다. 기린이 키가 큰 나무를 뜯어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애처로웠지만 그래도 기린을 응원했다. 결국 목이 길어진 기린은 의기양양하게 나뭇잎을 뜯어 먹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런 게 진화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나와 라마르크와의 첫만남이었다. (^.^)
그 후 계속, 나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확신은 대학에서 분자생물학과 자연선택설을 배우고 난 후 산산조각 나버렸다.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
라마르크! 센트럴 도그마에 무너지다
분자생물학에서 생물의 운명은 그 의지와 노력에 관계없이,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분자 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가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의 토대가 된다. 이 중심교리에 따르면 ‘DNA→RNA→단백질’의 일방향적인 흐름을 따라 우리의 유전정보가 발현된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 유전자’들은 이와 같은 흐름을 따라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단백질들을 만들어낸다. DNA에는 머리카락 모양이나 색깔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고, 이 정보대로 머리카락은 결정된다.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머리카락의 생물․화학적 구조가 바뀐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파마로 곱슬머리가 된다고 해서 머리카락 유전자가 바뀌지 않는다. 또 유전자가 변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자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반드시 DNA 상의 변화만이 유전되고, 이것이 자손에게 머리모양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정확히 이 ‘중심원리’를 부정한다. 라마르크는 의지나 노력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자손에게 전달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머리카락의 변화가 유전자의 변화를 야기하고, 그 유전자가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바로 라마르크는 ‘중심원리’를 거슬렀던 것! 때문에 라마르크설은 현대생물학과 양립할 수 없었다. ‘중심원리’에 의하면 우리는 유전자가 결정한 대로 살아야 한다. 유전자는 개체의 노력 따위로 변하는 물질이 아니었다. (쩝)
자연선택, 환경이라는 조각칼
라마르크 이론이 현대생물학과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달고, 나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자연선택설은 어딘지 모르게, 2%로 부족한 느낌이었다. 자연선택설은 무수한 생물 다양성과 진화 개념을 탁월하면서도 아름답게 설명해냈지만 그 속엔 ‘나라는 존재’가 설 자리란 없었다. ‘나라는 개체가 장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회의가 솟구쳤다. 자연선택설에 의하면 나는 단지 역사 속의 미미하고 하찮은 존재였다.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 뇌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사이버화 된 소령은 "인간이든 기계든 특수화의 끝엔 죽음 뿐이야"라는 말을 던진다.
자연선택설은 생명체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능동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직 환경에 적합한 자들만 살아 남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도태될 뿐이다. 이른바 적자생존(適者生存)! 바로 적응한 자가 살아남은 자이고, 살아남은 자가 적응한 자이다. 오직 적응해 살아가는 생명체에 의해서만 진화사는 그려진다. 그래서 생명의 진화를 보고 있으면, 생명이란 마치 환경이라는 조각칼에 의해 수없이 깎여 나가는 조각상처럼 보인다. 나는 이와 같은 진화사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자연선택의 틀 속에서 생명체는 오직 환경의 심판(선택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라마르크의 구세주, 후성유전학
유전자 결정론과 자연선택설 속에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무렵, 후성유전학을 접했다. ‘그냥 유전학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후성유전학은 엄청 놀라운 이론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오직 DNA만이 유전되는 게 아니라 환경적 요인으로 생긴 후천적인 변화 또한 자손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중심 원리’와 ‘DNA 중심주의’를 깨버리는, 나아가 환경이 생물체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자연선택설과 정반대되는 이야기였다.
후성유전학의 주요한 내용은 메틸기, 아세틸기, 히스톤 단백질과 같은 비-DNA가 유전되며, 이것이 단백질 생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는 오직 DNA만이 유전물질이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후성유전물질들은 DNA에 붙거나, 그 구조를 변형시키면서 DNA정보를 바꾸고, 이를 자손에게 전달하기까지 한다.
그림을 보자. 2m나 되는 DNA은 아주 작은 핵 속에 실패처럼 감겨져 있다. DNA가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려면, 이 실패가 풀려야 한다. 여기서 이 실패를 풀고 감는 것은 후성유전물질이 하는 일이다. 만약 아세틸기가 히스톤 단백질에 붙으면, 이 실패가 풀린다. 그리고 그 부분의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반면 메틸기가 붙으면 실패는 풀리지 않고,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지 못한다.
이러한 메틸기, 아세틸기와 같은 후성유전물질은 환경의 영향에 따라, 히스톤에 붙을 수도, 붙지 않을 수도 있다. 이 후성유전물질의 부착/탈부착 상태가 자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때문에 환경의 영향에 따라, 유전자, 정확히는 후성유전자가 바뀌고 이것이 유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현대판 ‘라마르크의 부활(^^)’, 즉 획득형질의 유전이 가능함을 암시한다. 그래서 후성유전학은 라마르크를 부활시킨 구세주였던 셈이다.
내 운명은 내가~!
후성유전학을 기반으로 한 ‘먹거리 운동’이 한창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장소에 살면서, 나의 유전자를 바꿔보자는 운동이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이미 결정되고 불변하는 유전자란 없고, 단지 무형의 배경으로서 조작불가능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전자에 의해 생명체의 삶과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도, 잘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고도 할 수 없다. 후성유전학에서는 ‘먹거리 운동’과 같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생명체 스스로가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환경을 만들고 바꾸면서,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에 후성유전물질을 붙일 수도, 뗄 수도 있다. 그에 따라 DNA의 실패가 풀릴 수도 감길 수도 있다. 이제 후성유전학은 생명체가 더 이상 진화사 속에서 그저 유전자에 의해 정해진 결정을 받아들이고, 환경의 선택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라마르크도 그랬던가? “생물의 삶은 자유의지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에게도 필연적인 자연법칙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명은 그러한 필연 하에서, 의지와 노력에 의해 자신을 무한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후성유전학 그리고 라마르크를 통해, 진화사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명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수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꿈으로써 진화사에 스스로를 참여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다시금 진화론 속에서 라마르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진화론이 더 이상 생명체를 한계 짓는 보수적인 이론이 아니라,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에 열려 있는 풍성한 이론이었으면 좋겠다.
<공각기동대> 중 한 장면. 스스로를 생명체로 주장하는 이 프로그램에게 인간은 반박할 말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변화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수동적'으로 인정받은 존재인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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