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누에 시집 보내기
금잠고독(金蠶蠱毒) 남방(南方)에서는 금잠(金蠶)을 기르는데 그 누에는 금빛이 난다. 그 누에한테 촉(蜀)나라 비단(상품의 비단)을 먹여 그 똥을 받아 음식에 두면 사람에게 독을 옮겨 사람이 죽는다. 그 누에는 기르는 사람에게 재물이 생기게 하여 갑자기 부자가 되게 하나 그 누에를 내보내기는 매우 어려워서 물이나 불이나 칼로도 죽일 수 없고, 반드시 많은 금이나 은을 누에와 섞어서 여러갈래로 난 길 모퉁이에 던져두어 사람들이 혹 그 금이나 은을 주워갈 때에 금잠도 묻어가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금빛 누에를 시집보낸다”라고 한다.
(『동의보감』, 「잡병편」, 해독, 1598쪽)
중국 삼국시대 때 촉나라였던 지금의 사천성의 특산물 중에는 비단이 유명하다. 촉나라에는 뽕나무가 많고 촉나라 사람들은 직조 기술이 뛰어나 품질 좋고 아름다운 채색의 비단을 만들어냈다. 세계 각처의 사람들은 이 촉나라 비단을 갖고 싶어 한다. 서양인들도 이 비단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촉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준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고급비단을 옷이나 물건을 만드는 데 쓰지 않고 누에에게 먹이는 사람이 있다. 남방에서 금빛 누에(금잠)를 기르는 사람인데 독(毒=蠱毒)을 만들기 위해서다. 고급비단을 먹은 누에의 똥에서는 독이 발생하는데 그 독은 신통력이 있어서 주인에게 많은 재물을 생기게 해준다. 주인은 이 재물을 탐하여 누에에게 비단을 먹이는 것이다. 그러나 누에 똥의 독은 재물만 주는 게 아니라 재앙도 동시에 준다. 그 똥을 접하는 사람을 반드시 아프게 하거나 죽게 한다. 중독시키는 것이다.
주인은 재물만 취하고 재앙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그 똥을 다른 사람 음식에 넣거나 그 집으로 보내려고 한다. 이 독에 걸려든 사람은 운이 없게도 아프거나 죽게 되는 것이다.
비단을 먹은 누에의 똥이 어떻게 독을 만드는지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지만, 누에에게 뽕을 먹이지 않고 순리를 어겨 비단을 먹였기 때문이 아닐까? 똥은 밖에서 들어온 음식이 오장 육부를 돌고 돌아 나온 최종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 먹은 게 음식이 아니고 비단이니 오장 육부의 고통이 오죽했을까? 자신이 만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비단을 먹었으니 오장 육부를 돌면서 엄청난 분노가 쌓여 독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오늘날 닭이나 소에게 그들의 배설물을 먹여 병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을 먹은 사람은 아프고 병들지만 그런 소, 닭을 키운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다.
주인은 이제 재물도 넘치고 있으니 남을 해치는 일은 그만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누에는 이 독의 활동을 멈출 수가 없다. 재물을 줌과 동시에 누군가를 계속 헤쳐야만 한다. 만약 남을 해롭게 하지 않으면 누에는 그 화살을 주인에게로 돌린다. 주인을 죽게할 수도 있다. 주인은 누에를 죽여서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지만 독의 힘으로 누에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진 상태. 물이나 불, 칼로도 죽일 수 없다. 오히려 누에가 주인이 되어 버렸다. 꼼짝없이 누에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이제 방법은 누에를 다른 데로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군가 이 누에를 길러주지 않으면 해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므로 아무 데나 버릴 수가 없다. 누군가 가져가 기르게 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가져가랴? 잘못 주워오면 해가 된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길에서 물건 함부로 줍지 말라는 말을 어른들에게서 들은 것 같다. 귀신이 붙었을지도 모르니 줍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니 주인은 사람들이 현혹되도록 그동안 모아두었던 금은을 듬뿍 싸서 그 속에 금잠을 숨긴다. 그것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갈림길에 가져가 놓아두는 것이다. 금은에 현혹된 사람은 금잠이 있는 줄 모르고 가져간다. 이를 ‘금잠을 시집보낸다’고 한다는 것. 아마 많은 지참금을 주어 보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많은 희사금을 내고 비난을 모면하려는 경우와 같다.
누에를 시집보낸들 주인은 과연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시집간 누에가 시집에서 잘 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멀리서라도 친정에 그 독을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집을 가서 잘 살기가 만무하다. 그 집 주인 역시 시집보내려고 할 것이기에. 이렇게 끊임없이 누에는 시집을 가고 독은 멀리 파급되어간다. 누군가는 아프고 죽을 것이며 주인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비단을 먹였던 업을 끊어내는 게 해독(解毒)이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탐욕의 업이 얼마나 질긴지를 금잠 고독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업을 지으며 살고 있다. 모든 업들이 얽히고설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통엔, 이 세상 누군가의 괴로움엔 혹시 내가 비단을 먹이며 누에를 길렀던 일도 포함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을 아는 것이 해독(解毒)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글_박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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