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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겉으로는 추워 떨고 속에서는 열이 나고

by 북드라망 2021. 1. 19.

겉으로는 추워 떨고 속에서는 열이 나고


적열오한(積熱惡寒) 어떤 부인이 몸이 찬데도 오한(惡寒)이 나서 음력 6월에 갖옷까지 껴입고도 추위를 느끼며 설사가 멎지 않고 맥은 활줄같이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가슴을 찜질하고 새로 길어온 물을 끼얹었다. 그러자 그가 아우성을 치며 사람을 잡는다고 외쳐댔다. 그래도 그치지 않고 연달아 30~40통의 물을 퍼부었더니 크게 떨면서도 땀이 나고는 1~2일 동안 정신이 혼곤해졌으나 고통스럽게 하던 것들은 다 없어졌다. 한(漢) 나라의 화타(華佗)와 북제(北齊)의 서문백(徐文伯) 역시 오래된 한증(寒證) 환자를 치료할 적에는 추운 겨울을 기다렸다가 찬물로 땀을 내주었는데 곧 이 방법을 쓴 것이다.


- 『동의보감』, 「잡병편」, 火, 1187쪽




사람이 살다 보면 병에 걸리는 게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아니라 태과와 불급으로 치우쳐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이다. 태과란 지나침이고 불급이란 부족함이다. 그해의 운기에 따라 또 계절에 따라 우주는 태과 혹은 불급으로 치우쳐 있다. 어떤 해는 유난히 바람이 많고 어떤 해는 습하고 비가 많이 오고 어떤 해는 건조하여 화재가 잘 난다. 이에 따라 걸리기 쉬운 병도 다르다. 어떤 해에는 풍병에 걸리기 쉬운가 하면 어떤 해에는 수 기운이 많아 관절염이나 부종 등의 병에 걸리기 쉽다.


또 계절 자체가 어떤 기운에 치우쳐 있음을 나타낸다.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으로, 여름에는 무성하게 발산하는 기운으로, 가을은 수렴하는 기운으로 겨울은 한 점의 씨앗으로 응축하는 기운으로 태과하고 다른 기운들은 불급하다. 기운이 치우쳐 있으니 병도 그에 따라 걸리기 쉽다. 봄에는 풍병, 여름에는 서병, 가을에는 조병, 겨울에는 추위에 상하는 상한에 걸리기 쉽다.


우리 몸의 장부도 사람마다 치우쳐 있으니 우주의 치우침과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간의 기운이 강한 대신 폐의 기운이 약하고 어떤 사람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러니 해와 계절과 각자 몸의 태과, 불급이 3중으로 겹치면 병에 안 걸리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이 세 종류의 치우침 중에 우리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경우는 계절의 치우침에 따라 병에 걸렸을 때이다. 예를 들어 여름에 더위를 먹어 열병에 걸리거나 겨울에 감기에 혹은 추위에 상하는 상한병에 걸려 추워 떨 때는 계절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며 처방도 대개가 겉에 보이는 증상대로 한다.


그러나 간혹 계절에 상응하지 않는 증상일 경우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여름에 추워서 몸을 떨며 옷을 여러 겹쳐 입으려 하고 이불을 덮으려 하거나 겨울인데도 열이 나면서 옷을 벗으려 하는 경우이다. 위의 부인은 전자에 해당한다. 음력 6월 한여름에 겨울에 입는 가죽옷까지 입었으면서도 춥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이처럼 추워서 떠는 사람에게 찬물을 몇십 통이나 퍼부었으니 환자는 사람 잡는다고 아우성칠 만도 하다.


의사는 왜 이렇게 추워하는 사람에게 찬물을 퍼부은 걸까? 일단 의사는 이 부인이 겉으로는 추워서 떨고있지만 속으로는 열이 심하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찬물을 끼얹어 열을 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속에는 열이 심하다고 보았을까? 여름에 추워한다는 것은 계절과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나타난 대로 한기로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열이 아닌가 유추해 보았다. 왜 반대로 유추했을까? 그것은 음양의 성질에 의해서다.


그 열이 심한 데도 스스로 냉하다고 느끼는 것은 화(火)가 극도에 이르면 수(水)와 비슷해지기 때문인데 이것은 열이 몹시 쌓인 것이다. 양은 지나치게 성하고 음은 지나치게 약하므로 이런 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 같은 책, 1184쪽


음은 극한에 다다르면 양으로 변하고 반대로 양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변하면서 음양이 순환하는 것이 음양의 이치다. 따라서 여름인데도 춥다는 것은 열이 너무 쌓여서 극에 달하니까 한기로 변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열이 극도로 심해서 생긴 오한이다. 그래서 찬물을 끼얹어 열을 내리려 했다. 땀이 난 것은 열이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인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속 열이 생긴 것일까? 아마도 여름철에 찬 것을 과식하지 않았나 싶다. 여름에 찬 것을 많이 먹으면 ‘여름철에는 양기가 모두 겉으로 나와서 위 속이 허하고 차게 되어 양이 미약해져서 찬 것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550쪽. 신동원 김남일 여인석 지음, 들녘) 열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화타나 서문백 같은 고수의 명의들이 오래된 한증 환자를 겨울까지 기다렸다가 치료한 것은 아무래도 겨울에는 열을 내리기가 수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이처럼 겉으로는 추워 떨면서 속에 열이 많은 환자는 겨울에는 감기나 상한증 환자와 혼동될 수가 있다. 모두 겉으로는 추워서 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야말로 명의를 필요로 한다. 화타나 서문백은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의사들이리라.


우리로서는 겨울철과 여름철 양생을 다르게 하는 것이 이롭다. 겨울일수록 위에는 열이 많으니 차가운 음식을 더러 먹고, 여름일수록 위는 차가우니 차가운 음식을 과하게 먹지 말고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게 좋다. 여름에 삼계탕을 먹고 겨울에 차가운 홍시를 먹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함부로 음식을 먹으면 위의 부인처럼 여름에 추워 떨게 될지도 모른다.


글_박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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