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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生生동의보감] 고독(蠱毒)을 보내는 법

by 북드라망 2021. 3. 16.

고독(蠱毒)을 보내는 법

 

고(蠱)라는 것은 사람이 세 가지 벌레〔三蟲〕(두꺼비 지네 뱀이다.)를 잡아 그릇〔皿〕에 담아두어서 (고(蠱)라는 글자는 세 개의 虫과 皿을 합하여 만든 것이다.) 서로 잡아먹게 하여 마지막에 남는 하나를 ‘고(蠱)’라고 하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이 공경해야 할 일이 있다고 조작하여 술과 고기를 갖추어 놓고 제사를 지낸 다음 그것을 음식에 두고 독을 뿜게 한다. 사람이 그 독이 든 음식을 먹고 그 독에 중독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며, 얼굴빛이 청황색을 띠고, 가래와 피를 토하거나 뒤로 피고름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환자가 먹은 음식은 다 충(蟲)으로 변하여 장부(臟腑)를 파먹게 되는데, 다 파먹고 나면 사람이 죽는다. 급한 것은 십 수 일 만에 죽고, 완만한 것은 세월을 끌다가 죽는데, 죽은 다음에는 그 병 기운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기 때문에 ‘고주(蠱疰)’라고 한다.
- 『동의보감』잡병편, 해독, 1595쪽

 

 

고독(蠱毒), 글자의 뜻을 알면 끔찍하다. 그러잖아도 다 독이 있는 뱀, 지네, 두꺼비를 그릇에 담아 싸우게 하여 최종 한 마리만 남게 하다니. 그 최종으로 남은 ‘고(蠱)’는 그야말로 독 덩어리일 것 아닌가! 오직 독의 힘으로 싸워 살아남았을 테니까. 얼마나 그 독이 독하면 그 독이 든 음식을 먹었을 때 먹은 음식이 다 충(蟲)으로 변하겠는가? 그 충이 장부를 다 파먹어 죽게 한다니 이보다 더 처참할 수는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독을 만드는 것일까? 『동의보감』에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해독하는 처방은 자세히 나와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그 당시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 아는 걸로 보고 생략했을 듯하다. 추측컨대 이는 남을 저주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항아리를 열어 독을 음식으로 나가게 할 수도 있고 항아리를 저주하는 집 땅에 묻어두기만 해도 그 독기가 퍼져나가 그 집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옛날 역사 드라마에서 장희빈이 짚 인형에 못을 박고 주문을 외우며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이치다. 한의학에선 이처럼 동물의 실체가 없는 기운도 사람의 기운과 서로 넘나들고 뒤엉키면서 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고(蠱)’의 주인은 ‘고’가 죽지 않을 정도만 먹을 것을 주어 연명하게 하면서 계속 독을 키운다. ‘고’는 몹시 굶주린 상태이므로 무엇이든 먹어치우려고 하는 욕망이 극도로 치성해있는 상태다. 그게 바로 독이다. 그래서 음식을 통해 장부에 들어가면 장부를 파먹는 것이다. 그냥 버리면 그 재앙이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 주인은 버릴 수도 없어서 집에서 키우게 되는데 이 집을 방문한 사람은 운 나쁘게도 재앙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집에 ‘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동의보감』에서는 그 집의 문지방과 들보를 보라고 말한다. “대체로 고독(蠱毒)이 있는 마을에 들어가서 인가를 살펴보아 문지방과 들보에 먼지가 없고 깨끗한 집은 반드시 고독을 기르는 집이므로 조심하고 미리 방비해야 한다.”(위의 책 1595쪽) 청결과 독이 무슨 관계일까? 청결하면 할수록 독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이는 청결의 문제라기보다 이 집에 사람이 얼마나 드나드는가를 나타내는 표시인 것 같다.

문지방과 들보는 먼지 없기가 쉽지 않다. 문지방은 사람이 드나드는 방문의 턱이다. 따라서 아무리 쓸고 닦아도 여기엔 먼지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드나들면 들보에도 먼지가 묻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먼지가 없다는 것은 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는 뜻이다. 이 집의 깨끗함은 외부와 소통을 못 하는 무능력의 표시이다. 관계가 거의 파탄났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니 심하면 남을 저주하는 극단까지 갈 수 있다.

음식에 고독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날콩을 씹어보아 비린내가 나지 않고 단맛이 날 때이다. 너무 먹고 싶은 ‘고’의 욕망이 덧씌워져 비린 것도 달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도 무언가에 홀리거나 사기를 당할 때는 제대로 있는 그대로 못 보고 달콤하게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만약 이를 모르고 고독에 걸렸다면? 여기 고독의 해독제로 양하 잎을 이용한 부인이 있다.

 

고독에 걸려서 뒤로 돼지 간 같은 피가 나오고 장부(藏腑)가 다 상해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는 양하잎을 환자의 잠자리 밑에 몰래 깔아 알지 못하게 하면 환자가 저절로 고독을 퍼뜨린 사람의 성명을 부르게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성명을 부르면서 고독을 가져가라고 하면 곧 낫는다. 장사선(蔣士先)이 이 병을 얻어 뒤로 피를 흘렸는데, 고독에 걸린 것이라고들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부인이 몰래 양하잎을 잠자리 밑에 깔아주었는데, 장사선이 갑자기 크게 웃으면서 “나를 고독에 걸리게 한 것은 장소(張小)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곧 장소에게 거두어 가라고 하자 장소가 거두어 달아났다.
- 위의 책, 1596쪽

 

환자 장사선의 부인은 양하 잎을 환자의 잠자리 밑에 깔아준다. 양하(양애)는 생강 비슷한 특유의 향기가 진한 식물로 제주에 많다. 나도 봄부터 가을까지 종종 나물을 해 먹는데 특유의 향기가 톡 쏘고 군내를 없애주며 맛있다. 향기가 진해서인지 벌레가 오지 않고 옛날 우리 할머니도 독한 채소라면서 임신한 여자들은 먹지 못하게 한 걸 보면 귀신도 엄접 못할 정도로 양기(陽氣)가 센 채소이다. 단 환자가 모르게 해야 한다. 고가 알면 도망가 버리기 때문이다. 옛 의사들은 충(蟲)도 영험하여 말을 알아듣고 활동을 한다고 보았다.

양하의 양기에 고독의 기운이 눌려서 비로소 환자는 고의 독에서 풀려난다. 고의 주술에서 풀려나니 제정신이 돌아오게 되어 이제는 자기가 누구의 집에서 고에 중독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마도 장사선은 장소의 집에서 음식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 후에 중독되었다가 깨어났으니 장소를 호명했고 가져가라고 하니 장소는 허겁지겁 가져갔을 것이다. 물론 그 기운을 가져갔겠지만. 관가에서는 고독의 주인이 발각되면 가장 무거운 형량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모반 대역죄와 똑같이 고독죄는 사면에서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소도 급히 거두어 달아났으리라.

고독을 푸는 해독제로 ‘태을자금단(太乙紫金丹)’이 있는데 그 만드는 법 또한 음양의 이치를 따랐다. “이 약은 단오(端午, 음력 5월 5일), 칠석(七夕, 음력 7월 7일), 중양일(重陽日, 음력 9월 9일)이나 천덕(天德)과 월덕(月德)이 합(合)하는 날*에 깨끗한 방에서 향을 피워놓고 재계하고 만드는데, 여자나 상제〔孝服人〕가 보지 못하게 하고, 닭이나 개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 위의 책, 1596쪽

*3월의 丁日, 6월의 己日, 9월의 辛日, 12월의 乙日

 

 


고독은 몰래 남을 괴롭히는 기운이니 음(陰) 기운이 치우친 상태다. 한의학적 치료는 음양(陰陽)을 맞추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5, 7, 9는 양수(陽數)이다. 그러므로 양수가 둘씩 겹쳐진 단오, 칠석, 중양절은 양기(陽氣)가 센 날이다. 여자나 상제, 닭, 개는 음기(陰氣)이다. 그래서 이들은 금한 것이다. 약재뿐 아니라 약을 만드는 날도 양일로 택하여 양기를 극대화해서 음기와 하나가 되게 하였다.

남을 해코지하기 위해 집에서 독을 만들어 기른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식욕이 얼마나 강렬한 욕망이며 그것을 제어하지 못할 때 독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처방을 음양의 논리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얼핏 미신 같은 이야기로 들렸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자연철학적인 논리를 깔고 있었다. 허준의 시대엔 당연했던 음양의 이론이 현대의 우리에겐 낯설었을 뿐이다.

글_박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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