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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주역] 말(馬)이 튼튼해진 뒤에나 길하다

by 북드라망 2020. 6. 2.

말(馬)이 튼튼해진 뒤에나 길하다



地火 明夷 ䷣


明夷, 利艱貞.


初九, 明夷于飛, 垂其翼, 君子于行, 三日不食. 有攸往, 主人有言.


六二, 明夷, 夷于左股, 用拯馬壯, 吉.


九三, 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貞


六四, 入于左腹, 獲明夷之心, 于出門庭.


六五, 箕子之明夷, 利貞.


上六, 不明晦, 初登于天, 後入于地.



 

최근 지인의 고민을 두고 주역 점을 친 일이 있다. 지인에게 일을 배우고 싶다는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찾아왔다. 일을 나눠서 하면 지인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또 젊은이의 자립을 돕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가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다른 일을 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거라거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데 일을 안 맡겨준다거나 하는 불평을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도 30대 초반의 나이로는 경제적으로 꽤나 안정되게 살고 있다. 그런데 부모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줘서 이미 벤츠에 큰 집을 가진 친구들만큼의 경제력이 없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장 촬영을 주로 하는 일이라 날씨라든가 기타 등등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생기면 순발력과 유연성이 필요한데, 그가 그런 부분이 아직은 좀 부족하지만, 내달에 시작될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혼자 해 보라고 맡겨 놓은 상태라고 했다.


이렇게 지인 나름대로는 신경을 쓰고 있는데 불평을 하니 속도 상하고, 이 상태로 가다가는 나중에 관계가 틀어져서 안 좋게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이쯤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해법은 두 가지였다. 그를 설득해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일을 하는 것과 여기서 헤어지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순리일지 주역 점을 쳤더니, 지화명이 괘의 二효가 나왔다. 지화명이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위에 있고, 밝은 빛을 상징하는 리괘가 아래에 있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자면, 밝은 빛이 땅 속에 들어간, 즉 밝음이 숨겨진, 또는 밝음을 숨겨야 할 상황이다. 섣불리 지혜를 드러내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화를 부르기 쉽다. 그러니 밝음을 안으로 감추고 정도를 지키라는 것이 명이 괘에서 말하는 이 문제를 대하는 기본자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지인은 지금 어떤 단계를 밟고 있으며, 이 단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지인이 뽑은 육이효는 ‘밝음이 감춰질 때(明夷), 왼쪽 넓적다리를 다쳤다(夷于左股). 구조하는 데 튼튼한 말을 쓰면 길하다(用拯馬壯, 吉)’고 한다. 지인은 지금 넓적다리를 다친 상태다. 육이는 음이 음의 자리에 있고, 아래 괘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올바르게 순응하는 자이지만, 전체 상황 자체가 밝음이 손상을 당하는 때인지라, 소인으로부터 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손상이 그리 크지는 않다. 그것이 왼쪽 넓적다리의 상처로 표현되었다. 넓적다리의 상처가 발의 상처보다는 덜 불편하고, 왼편이 힘을 덜 쓰는 쪽이기에 치명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구조할 수단으로 튼튼한 말을 써야 한다. 그러면 길하단다. 다행히도 이 상황을 벗어날 방도가 있는 것이다.


육이의 메시지를 지인의 문제에 적용하여 해석해 보았다. 지금은 밝음을 안에 숨겨야 할 때라는 것. 즉, 처음 함께 일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좋은 마음을 품고 그를 대하면서 그가 불평을 하더라도 지금 단계에서는 그걸 드러내어 지적하는 건 좋지 않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의 언행으로 인해 받는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것. 상처라는 것은 객관적인 강도가 있는 게 아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선결문제가 되기도 하고 후순위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이 받는 상처를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자신을 구원해 줄 말이 튼튼해질 때까지(해결 방향이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더 이상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명확해질 수도 있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거취를 결정할 수도 있고,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우연이 끼어들어 상황을 종료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즉 해결의 방향이 자연스레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순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여유롭게 지켜보질 못한다. 그 상황에서 내가 겪는 힘듦, 내가 받는 오해와 심리적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조급한 마음이 생기고 조급함이 어떤 쪽으로든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재촉하고 그런 조급함 때문에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화명이 괘의 이효에서는 이런 우리들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준다.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묵묵히 현재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함께 흘러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이 튼튼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글_오창희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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