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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주역] 낯선 삶으로의 여행

by 북드라망 2020. 5. 19.

낯선 삶으로의 여행

 


火山旅 ䷷


旅 小亨 旅貞 吉.


初六 旅 斯其所取災.


六二 旅卽次 懷其資 得童僕貞.


九三 旅焚其次 喪其童僕貞 厲.


九四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 不快.


六五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上九 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 喪牛于易 凶.

 



얼마 전, 감이당 식사당번을 하면서 막간을 이용해 장금샘이 ‘별자리’를 봐줬다. ‘별자리’로 나를 해석해보는 게 처음이라 흥미로웠다. 장금샘의 설명에 의하면 나는 처녀자리와 양자리에 기운이 몰려있는데, 처녀자리의 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처녀자리의 특성은 봉사와 헌신을 좋아한다. 특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능력을 발휘하며 빈틈없이 관리를 한다는 거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왜 이렇게 기운이 치우쳐 있을까’, ‘그래서 지금껏 내 것만 챙기며 좀스럽게 살았나?’라는 자의식이 확하고 올라왔다.


헌데 그 날 밤, 갑자기 낮에 봤던 별자리의 원형이 떠오르면서 그 위에 우주 공간이 포개져서 나타나는 거다. 우주가 나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비어있는 별자리는 내가 가보지 못 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다면 앞으로는 낯 선 우주 공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 한 삶을 새롭게 여행한다는 맘으로 살아보자.’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주역에서 여행에 대해 얘기하는 ‘화산려괘’가 궁금했다. 여괘에서는 익숙한 곳을 떠나 낯 선 공간을 유랑하는 상황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여행자가 갖춰야 할 도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화산려괘의 여(旅)는 심신을 달래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관광’의 차원이 결코 아니다. 산위에 불이 나 자신의 터전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니 불안하고 곤궁한 자의 여행이다. 헌데 불이 나서 집을 잃게 되었다고 다 떠남을 선택할까?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익숙한 그 곳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괘의 괘사에서는 오히려 떠나는 것이 형통할 수 있고, 그런 중에 올바름을 얻으면 길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旅 小亨 旅貞 吉.) 왜일까? 여괘의 형통함과 길함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여괘의 단전(彖傳)에서는 여행의 길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행하거나 객지에 머물면서 겸손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자, 지혜롭고 강건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柔得中乎外而順乎剛)길하다.” 여행하는 자는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있는 게 없으니 빌려 써야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한다고 생각하면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지반을 떠남으로써 늘 스스로를 새롭게 리셋하고 도처에서 만나는 인연을 삶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 여행이 이롭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여괘는 곤궁함이 오히려 기회라는 삶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여괘의 각 효에서는 이렇게 여행하는 자에게 중요한 덕목을 그 위(位)에 맞게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육이효(旅卽次 懷其資 得童僕貞.)에서 말하는 여행자의 도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여행할 때 노잣돈이나 객사(客舍)도 필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육이효의 상전(象傳)에서는 동복에 관해서만 언급한다.(童僕貞 終无尤也) 왜 객사도, 돈도 아닌 동복이 중요한 걸까? 객사는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으로 어차피 사라질 허상 같은 것이다. 헌데, 그걸 내 것으로 만들려고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면 함께 하는 사람의 믿음을 잃을 수밖에 없고 절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건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 “소유하는 삶이 아닌 경험을 넓혀가는 삶”이 중요하다.


이번에 별자리와 화산려괘를 함께 공부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불이 나서 집을 잃은 것도, 상황에 떠밀려 반드시 떠나야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내 것만 챙기며 좁은 공간에 갇혀 답답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반드시 ‘내 소유’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여괘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 태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벼워져야 떠날 수 있고 다른 존재들과도 새롭게 접속할 수 있다. 그 과정 중에 좌충우돌하고 우여곡절도 생기겠지만 앞으로 펼쳐질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삶’.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글_신혜정(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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