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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의인문약방

[둥글레의인문약방]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by 북드라망 2020. 1. 13.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천식이라는 아이러니


회사에 다닐 때 기침감기를 심하게 두 번 앓았다. 두 번 다 기침이 한 달가량 지속되는 감기였다. 기침을 해대면서도 난 병원에 간다거나 약을 먹는다거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그것을 무시했다. ‘더 심해지면 약 먹지 뭐’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던 시기다. 증상이 심해지자 폐렴인가 싶어서 내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은 아니었고 기관지 알레르기였다. 다른 말로 하면 알레르기성 천식이다.




그때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 근무할 때 난 호흡기약물 상담서비스(Respiratory Service)를 전문적으로 하는 약사로서 폐질환 환자들에게 흡입제 사용법을 지도했다. 그런데 내가 천식에 걸리다……. 천식 치료제의 부작용을 너무 잘 알기에 처음부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단식과 채식 요법으로 몸을 정상화시키자 마음먹었다.

생애 최초의 단식을 3일 동안 했다. 그리고 동물권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내 몸을 위해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등산도 하고 건강 관련 책도 열심히 읽었다. 비쌌지만 유기농으로 먹거리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빵에 우유가 들어있어서 책을 보고 직접 비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외국 고객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채식을 했다. 점점 천식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단식과 채식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 성취감에 젖어 몇 달이 지났을 때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시 기침이 시작된 것이다.


알레르기성 천식은 사람에 따라 특정한 알레르기 유발 원인(알러젠)이 있다. 나의 경우는 집먼지 진드기. 하지만 공통적으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차가운 공기와 강도 있는 운동이다. 겨울바람이 불자 점점 내 천식은 심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가족의 죽음으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결국 난 폐활량이 25% 이하까지 내려가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병원에 제 발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난 내가 이 정도로 나를 방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더욱이 약사이면서도 이 지경이 된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스스로 창피함에 약사라는 것은 철저히 숨기고 치료를 받았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스테로이드 약물과 기관지 확장제는 드라마틱하게 천식 증상을 개선했다. 살 것 같았다.

    


의료화가 만들어낸 신화와 맹목


폐질환 환자들에게 상담서비스를 했던 약사가, 천식에 대한 임상적 지식이 충분히 있는 내가 천식에 걸린 것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일까? 질병에 대한 지식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의료 전문직들은 모두 장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조금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약사나 의사인데 큰 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료 전문직들은 건강할 것이라고 덮어놓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대 의료에 대한 믿음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임상 공부를 하면서 질병에 대해 100% 이것이 원인이다 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인을 모르는 경우, ‘특발성(特發性, Idiopathic)’ 또는 ‘본태성(本態性, Essential)’이라는 말을 질병명 앞에 붙인다. ‘고유의 체질적 영향’ 또는 ‘저절도 생기는 성질’이라는 뜻으로, 두 단어 모두 병의 원인을 모른다는 말이다. 고혈압의 대부분이 본태성 고혈압인 것처럼 의외로 질병의 원인에 대해 현대 의학이 밝히지 못한 부분이 많다. 최근엔 특정 질환을 발병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내기도 했지만 그 또한 그 유전자의 발현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만 얘기될 수 있다.


물론 일부 감염성 질환의 경우는 백신과 항생제로 사망률을 낮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항생제 남용으로 인해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병원균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반 일리치가 『병원이 병을 만든다』(미토, 2004)에서 말한 내용에 따르면, 결핵,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 많은 감염성 질환은 그 병의 원인균을 알아내고 거기에 따른 항생 요법이 발견되기 이전에 발병률이 감소했다. 이 질병들이 감소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영양의 개선으로 사람들의 저항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권장되는 질병 예방법이라는 것도 외출 후 손 씻기 등 위생 강화, 각종 영양제 먹기, 운동하기 그리고 건강검진이라는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다. 어떤 질병의 특정 원인에 따르는 조처로 보긴 어렵다.


의료의 진보가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만들어진 신화일지도 모른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신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의료가 전문직으로 소수 사람들에게 독점되어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돌볼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한 강박이 만사 제치고 우리를 병원으로 달려가게 한다. 아프면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고, 아프지 않으면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간다. 사회는 거대한 병원이 되었다. 의료화 된 사회는 질병에 처한 우리를 채근하며 미리 검진하지 못했다는, 건강을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몰고 간다. 그리고 우리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아바타가 된다.



내게 천식은 아이러니에 비정상이었다. 천식이라는 진단명이 나오자 난 정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단식과 채식으로 내 체질을 바꾸려 노력했고, 집안에 공기 청정기 등 온갖 렌털 제품들을 들였다. 바쁜 회사 스케줄과 그로 인해 치인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단지 내가 알고 있던 알량한 의학적 지식으로 좀 더 몸에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를 빨리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천식은 사라져야 할 악이었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생명에는 병이 포함되어 있다


병은 비정상이고 악이라는 이분법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해 의학(이라는 과학)은 발달해야만 한다는 목적론에 빠진다. ‘무엇을 위해’ 또는 '누군가를 위해’라는 말을 앞세워 그 외 많은 것들이 악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되거나 제거된다. 이러한 소외를 만들어 내는 이분법적 생각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도대체 사람에게 ‘병’은 왜 생길까?라고.


먼저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진화는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남아서 후대에 유전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어려운 말로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자연선택에 따르면 진화가 거듭될수록 질병에 취약한 개체는 도태되고 건강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또는 개체들의 질병에 대한 방어 능력이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병의 유전은 진화론적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형질로 선택되었다는 모순이 생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샤론 모알렘은 『아파야 산다』(김영사, 2010)라는 저서에서 유전되는 병들 중에 일부는 개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 선택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곧 장기적으로는 그 질병 때문에 죽겠지만 당장 살아남아서 후손을 남기기 위함이었던 것. 여기서는 소아 당뇨병(제1형 당뇨병)을 예로 들어보자. 소아 당뇨병은 보통 성인 당뇨병(제2형 당뇨병)과 다르게 췌장이 인슐린 분비를 잘 못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인슐린을 투약해야 한다. 그런데 북유럽 후손들의 소아 당뇨병 발병률이 월등히 높고 따뜻한 지역인 순수 아프리카, 아시아, 히스패닉 계열 후손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샤롬 모알렘이 찾은 진화론적 가설은 이렇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북유럽의 기온이 올라가자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했고 인구가 늘어났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갑자기 30도 이상 기온이 급강하하자 추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이때 인슐린의 역할을 떨어뜨려 혈당을 높인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가설이다. 당분이 부동액 역할을 해서 조직이 추위에 얼어 손상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철에 사람들의 혈당 수치가 높아진다.


이러한 유전병들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선조들은 아팠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금의 후손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진화는 현재 환경에서 어떻게든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적응 또는 타협의 과정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진화의 결과인 유전자들은 또한 현재의 환경이라는 변수에 따라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랜 진화의 여정 속에 있는 우리의 신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또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양의학의 관점은 어떨까? 동양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원래부터 아픔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동의보감』에서 설명하고 있는 생명의 탄생과정을 보자. 처음에 기운이 생기고 난 뒤에 형체가 갖춰진다. 그 형체에 어떤 질적인 특이점이 나타나는 단계에서 ‘아痾’라고 하는 병증이 생기는데 이때 생명이 완성된다. 즉 생명은 병과 함께 탄생한다. ‘아痾’는 ‘미병未病’으로 아직 발현되지 않은 병이다. 따라서 발현되었건 잠복되어 있건 병은 누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학과 함께 음양오행론을 따르는 명리학으로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음양이 조화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치우쳐서 태어난다. 그래서 완벽할 수 없다. 역으로 말해, 음양이 조화롭다면 아예 생명 자체가 탄생할 수 없다. 그러니 조화가 깨진 상태인 아픔은 생명에게 필연이다.


서양의 진화론으로도 동양의 의학과 역학으로도 ‘생명에 병이 포함되어 있다’는 같은 인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천식이라는 아픔은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구나! 나는 질병의 필연성을 알고 난 후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내게 천식은 아이러니도 비정상도 아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약국을 오는 환자들도 비정상인들이 아니고 약사가 아픈 것이 수치가 되지 않는다. 이제 내게 남은 문제는 이 아픔을 어떻게 겪을 것인가? 어떻게 천식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가?이다.

    

 

천식과 함께 살아가기


사람에게 왜 질병이 생겼나?라는 질문에 질병의 필연성이란 답을 찾고 나니 난 그제사 내가 왜 천식에 걸렸을까? 를 삶 속에서 좀 더 오래도록 그리고 깊숙이 볼 맘이 생겼다. 삶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자책으로 얼버무리지 않을 답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물론 그 답들은 정해진 것도 아니고 하나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천식은 그 증상이 계속되는 한 계속해서 내게 묻기 때문이다. 또 내 일상이 지속되는 한 난 이런저런 답들을, 의미들을 찾을 것이다.


알레르기 반응이란 면역반응이다. 다른 사람들의 면역체계에서는 받아들이는 어떤 물질을 나의 면역체계는 명백한 외부물질로 인식한다. 그래서 면역세포들이 출동하여 그 물질과 싸운다. 그 결과 나의 경우는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고 기관지가 좁아져서 기침이 나온다. 난 그 물질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생활 속 나의 습관으로 치환해서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입장이 너무 강해서 저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천식은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강하게 주장하는지 자문하게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천식 발작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그 스트레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제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고 내게 물을 때 ‘천식’을 빼지 않는다. 물론 살다 보면 천식 증상이 없어질 수도 있겠고 그럼 좋긴 하겠지만, 천식을 고치기 위한 특별한 일상으로 잔잔한 일상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는 어떻게 천식과 함께 살아갈까? 와 다르지 않은 질문이 되었고 약사로서 어떻게 아픈 사람들과 만나야 할까?라는 고민도 깊어졌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난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나쁜 공기에 덜 영향을 주고 싶어서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전기를 덜 쓰기 위해 전기주전자를 안 쓰고 엘리베이터도 덜 이용한다. 좀 시끄럽지만 저전력 DIY 공기청정기를 만들어서 쓰고 있다. 이제는 동물권 때문에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동병상련이라는 말 그대로 아픈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질문에 예전과는 다른 무게의 대답을 하게 된다. 이런 다른 선택들을 통해 나는 천식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천식 덕에, 내가 아프기 때문에 내 삶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글_둥글레(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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