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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주역] 풍요 속의 어둠

by 북드라망 2019. 12. 17.

풍요 속의 어둠


䷶雷火豐


豐, 亨, 王假之, 勿憂, 宜日中.


初九, 遇其配主, 雖旬, 无咎, 往有尙.


六二, 豐其蔀, 日中見斗, 往得疑疾, 有孚發若, 吉.


九三, 豐其沛(旆), 日中見沬, 折其右肱, 无咎.


九四, 豐其蔀, 日中見斗, 遇其夷主, 吉.


六五, 來章, 有慶譽, 吉.


上六, 豐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不覿, 凶.


늦은 나이에 지방에서 서울까지 오고 가는 공부를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났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족들에게 소홀해졌고, 이웃들에게도 무심해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참 희한했던 것은 그동안 아무도 나의 공부에 대해 딴죽을 건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응원을 받는 듯 묘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공부만 하면 되는 탄탄대로의 공부길 이었다. 그저 쭉~ 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웬걸! 이 마음은 뭐지? 자꾸만 멈추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고민하던 중 뇌화풍 괘를 공부하면서 이 마음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뇌화풍 괘에서 말하는 시간적 조건은 의일중(宜日中), 중천에 해가 떴을 때이다. 중천에 해가 뜨면 어떠한가? 강렬한 태양의 볕 아래 만물은 자신들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세상의 풍성함이 그대로 드러난 때, 상황적으로 보자면 풍괘는 풍요의 시대를 말한다. 외적 조건이 이렇게 풍족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불만이 없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풍괘는 풍요로운 시대 속에 사람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천에 해가 뜨자, 사람들은 태양이 너무 뜨겁다며 큰 장막(부, 蔀)이나 휘장(패, 沛)을 덮어쓰고 밝음을 피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덮개 속에서 어둠을 떨쳐내기 위해 북두칠성(두, 斗)이나, 샛별(매, 沬)을 찾는다. 그러더니 상육효에서는 급기야, 풍기옥, 부기가, 규기호, 막기무인, 삼세부독, 흉(豐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不覿, 凶)의 상태에까지 간다. 고대광실 부잣집에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는 흉한 상황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풍요 속의 빈곤’, 아니, ‘풍요 속의 어둠’이니 말이다.



풍요의 시대에 왜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풍족함을 피해 어둠의 덮개 속에서 고립되려고 하는 것일까? 소동파는 말한다. “지혜는 우환에서 생기고 어리석음은 편안함에서 생긴다고.”(『동파역전』 p.439) 이 말은 풍족함이 편안함을 낳고 편안함이 오히려 인간을 무지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리라. 이것이 바로 탄탄대로에서 자꾸만 멈추고자 했던 나의 마음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넘치는 공부복의 풍요로움 속에서 어쩌면 나는 너무 편안했던 것이다. 편안함이 낳은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의 덮개로 감각을 가리고, 마음을 가리고, 그 안에 파묻혀, 갈 수 없다고, 힘들다고, 나 자신을 의심하고 두려워했던 마음. 이것이 나의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


길함을 알려주는 육이효와 구사효와 육오효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듯하다. 육이효는 유부발약 길(有孚發若, 吉)이다. 성실함으로 덮인 것을 열면 길하다. 구사효는 우기이주 길(遇其夷主, 吉)이다.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 연대하면 길하다고 한다. 도반들과 함께 나아가되,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공부길에 있어 도반과 성실함은 기본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것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풍괘의 조건 때문일 것이다. 풍족함과 편안함이 나태와 오만을 낳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오히려 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것을 풍괘는 알려준다. 풍요의 시대에는 삶의 기본을 놓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경계한다면, 마침내 래장 유경예(來章, 有慶譽)할 수 있다. 어둠을 물리치고 드디어 밝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덮어쓴 덮개를 스스로 걷어 낼 수 있는 힘, 그 지혜를 터득해 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밝음, 그 자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어둠이라는 덮개 또한, 지혜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조건이다. 결국, 어둠도 밝음도 결국 우리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음인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탄탄대로의 공부길. 이 길에 더 이상 의미는 필요 없을 것 같다. 공부길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면, 그 조건이 어떠하든, 그저 묵묵히 걸어가면 되는 것임을, 혼자 가는 것이 아님을,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공부임을. 이것이 ‘풍요 속의 어둠’, 풍괘가 알려준 지혜이다.


글_이한주(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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