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쿠바리포트] 아바나, 그 여백의 미(美)

아바나, 그 여백의 미(美)

 

다시 심심한 아바나로

지난 쿠바리포트에서는 쿠바에 대한 불만을 잔뜩 터뜨렸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멕시코에서 아바나로 되돌아오자 내 마음은 고요를 되찾았다. 잡생각과 감정의 기복이 없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땡볕에 서서 1시간씩 인터넷을 쓴다. ‘아, 오늘은 그래도 인터넷 연결이 비교적으로 안정적이었네,’ ‘최소한 시스템에 에러가 나서 내 인터넷 충전시간을 까먹지는 않았네’ 라고 감사하면서 말이다. 불평해봤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머리뿐만 아니라 온 마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마음이라는 게 마치 흙탕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맑아 보이지만, 바람이나 지진 같은 계기가 외부에서 찾아오면 맨 밑에 가라 앉아있던 침전물(불만, 욕망, 감정, 기타 등등)이 수면으로 온통 떠오른다. 또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면 침전물은 다시 가라앉고, 무색무취의 물과 같은 일상이 되돌아온다. 이런 감정의 폭풍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멕시코에서 겪었던 마음 속 폭풍우는 내가 꽁꽁 감춰왔던 불만을 봉인해제 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그 중 일부를 아예 뿌리 뽑기도 했다. 일종의 정화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시간이 흐르면 나는 또 다시 쿠바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새로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최소한 생활에서 오는 자질구레한 문제에 대해서는 점점 마음을 비우고 체념하게 될 것이다. 이미 스트레스가 최고치를 찍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정도가 점점 약해지는 일 밖에는 남지 않았다. 좋지 아니한가!



이런 희한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재무장하고 나자, 다시 만난 아바나의 풍경 앞에서 새로운 심정이 일어났다. 바로 이 도시의 여백의 미에 대한 감탄이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아바나가 ‘심심하다는’ 말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런데도 이 감정은 불시에, 잔잔하지만 여운이 길게 내 마음에 번지고 있다.

이 주 전, 나는 미라마르에서 일본 친구 나나꼬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센트로 아바나에서 꽤 떨어져있는 이곳에 가려면 버스나 루떼로(Rutero : 정부에서 운영하는 대형 합승택시)를 타야한다. 그날따라 버스가 오지 않아서 나는 결국 처음 보는 루떼로를 잡아탔는데, 알고 보니 이 루떼로는 약속장소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밖에는 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루떼로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쿠바에서는 5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진다. 우산도 없는데다가 가방에 노트북이 들어있었던 나는 얼른 근처 약국으로 피신했고, 도무지 그칠 기색이 없는 비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삼십 분 뒤, 마침내 빗줄기가 약해지자 나는 가디건으로 가방을 싸매고 식당으로 서둘러 향했다. 고급 주택단지인 미라마르는 조용하기만 했고, 아무도 거리에 나와 있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혹여 감기 걸릴까봐 비치타올로 꽁꽁 감싸 가슴에 안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아버지 한 명을 보았을 뿐이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가득 찼다. 비구름이 걷히고 그 자리를 석양이 채우고 있었다. 비 맞은 직후라 길거리 풍경은 훨씬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젖은 몸에 한기를 불어넣던 바람도 잦아졌다. 마법처럼 말이다. 갑자기 내가 살면서 이런 순간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이 평범함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비가 오면 3천 원짜리 일회용 우산을 사서 쓰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체크하며 매 분 단위로 대비를 하는 대도시에서 말이다. 이날 내가 만난 비, 석양, 아버지는 아바나가 갖춘 여백의 한 자락이었다.

이 감정을 며칠 전에 또 느꼈다. 그날도 폭우가 쏟아졌고, 나는 우산을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쿠바를 먼저 떠난 친구가 엽서를 부쳐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비가 오는 센트로아바나는 미라마르와는 달리 몹시 더럽다. 개똥과 기름이 길거리를 흘러 다니고, ‘메이드 인 쿠바’인 우산은 너무나 가냘퍼서 비바람에 쉽게 부러지고, 땀 냄새와 물 냄새가 폴폴 나는 사람들이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그런데 요새 하도 비가 쏟아져서인지, 이 심난한 상황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우산이 없어서 웃통을 벗고 뛰어가는 아이들, 택시에 태워달라고 사정하는 노인들,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아줌마. 비라는 사건 때문에 도시 전체가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신선했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아바나의 이런 모습이 ‘개발이 덜 된 도시’로 비치겠지만, 다르게 본다면 이는 ‘자연이 스며들만한 여백이 있는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뉴욕을 사랑하는 만큼 증오하고, 증오하는 만큼 사랑해야 진정한 뉴요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매일 ‘진정한 아바네라(Habanera)’로 갱신되고 있는 것 같다. 아, 아바나, 애증의 아바나. 이곳은 내가 뉴욕에서 3년 반 동안 켜켜이 쌓아온 감정보다 더 강력한 감정을 8개월 만에 선사하고 있다. 세상에 이곳처럼 심심하고 또 강도 높은 도시가 또 있을까?

아파트에서 찍는 나 홀로 시트콤

이런 여백의 미를 즐기게 된 것에는 혼자 살게 된 것도 한 몫 하리라. 3월 말부터 나는 아파트를 옮겨서 혼자 살고 있다. 까리와 아벨과 함께 사는 것도 좋았지만 이것도 반년이면 충분했다. 혼자 살아보면 쿠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혼자 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자질구레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번에 언급한 가스통 사고는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일 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빨래다. 아바나를 걸어다니면 집집마다 빨래가 수북이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바나의 건물 구조 상 빨래를 집안에서 말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풍이 잘 안 될뿐더러 베란다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열하는 쿠바의 햇살은 반나절이면 빨래를 바짝 말려준다. 나 역시 부엌 창문 바깥쪽에 걸려 있는 빨래 줄에 빨래를 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빨래를 널어놓고 오후에 집에 돌아온 나는 빨래를 걷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내 파란 블라우스에 새로운 무늬가 찍혀있었던 것이다. 이 무늬는 블라우스뿐만 아니라 수건, 청바지, 티셔츠에까지 골고루 찍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본 나는 결론을 내렸다. 오호라, 이것은 새똥이로구나.....



그 뒤로 빨래와 관련된 사건사고는 계속되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빨랫감 중 몇 개가 아래로 떨어졌고 (우리 집은 4층이다), 그때마다 나는 부리나케 아래로 뛰어가서 보답으로 초콜렛을 드리며 옷을 주워 와야 했다. 이웃이 시치미를 뚝 떼고 옷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새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추가되었다. 바로 비다.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서 빨래를 게릴라전 치르듯이 잽싸게 해내야 한다. 이는 철저히 운에 달려있는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해가 쨍쨍 비치더라도, 단 오 분만에 폭우가 쏟아질 수 있는 게 쿠바 날씨이기 때문이다. 빨랫감을 널자 마자 ‘자연 샤워’가 쏟아지는 바람에 같은 빨래를 세 번까지 하는 친구도 보았다. 이처럼 아바나에서 빨래는 쉽지 않은 미션에 해당한다. 비에 젖을까, 바람에 날아갈까(그래서 누가 훔쳐갈까), 새똥 어택(attack)을 받을까......

두 번째 에피소드는 쓰레기에 대한 것이다. 뉴욕과 마찬가지로 아바나에도 분리수거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도 그냥 일반쓰레기에 버린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쓰레기를 이틀 동안 비우지 않은 적이 있었다. 혼자 살아서 쓰레기 양이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쿠바에서는 쓰레기통에 사용할 비닐봉지를 구하는 것도 큰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통통한 흰 쌀알들을 보았다. 어라, 나는 쌀을 버린 적이 없는데? 이게 뭐지? 그러자 ‘쌀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꿈틀꿈틀. 그것은 애벌레 군단이었다. 48시간 만에 부화해서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까지 자란, 놀라운 생명력을 자랑하는 친구들이었다. 벌레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나는 비명을 질렀고, 때마침 집을 방문한 친구가 뒤처리를 도와주었다. 그 뒤로 나는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매일 쓰레기통을 비운다. (멕시코시티에서 비닐봉지를 한 무더기 사왔다.) 저런 룸메이트라면 절대로 사양이다. 나는 혼자 살고 싶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도시, 아바나. 이곳은 심심하지만 또 심심할 수가 없는 곳이다. 석양을 볼 때면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가도, 애벌레 룸메이트를 볼 때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이것이 쿠바의 매직-리얼리즘이 아닐까?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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