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쿠바리포트

[쿠바리포트] 아바나의 매직 리얼리즘

by 북드라망 2019. 8. 27.

아바나의 매직 리얼리즘

 


전공을 문학에서 의학으로 확 틀기는 했지만, 요새 나는 틈틈이 남미 문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원래 자기 전공이 아니면 더 재밌어 보인다더니, 정말 맞는 말 같다. ㅋㅋ.) 그 주제 중 하나가 ‘매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이다. 매직 리얼리즘은 1960년대부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같은 작가들에 의해서 시작된 문학 사조인데, 단숨에 남미 문학을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유럽 문학이나 미국 문학과는 단단히 차별화된 스타일 때문이었다. 덕분에 남미 문학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매직 리얼리즘이라는 이름 정도는 기억하게 되었다.




실패와 유머로 만들어진 마법

그렇지만 매직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정말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학 교수들마저도 머리를 긁적거린다. 뉴욕에서 만났던 쿠바 교수는 ‘한 유럽인이 축음기로 클래식 음악을 틀며 아마존 정글에서 잠을 잔다고 생각해봐라, 이런 느낌이 바로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나는 교수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감히(?) 평가했었다.

아바나에서 9개월을 보내면서 나는 내 오만함을 철저히 반성했다.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은 몇 마디 말로 정의할 수 있을만큼 깔끔하지 않다. 세상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은 문제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방식이 상상초월이라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아바나에서 나를 괴롭혔던 수많은 문제들은 사실 내가 그 전까지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것들이었다!

매직 리얼리즘의 고장인 이곳에 ‘마법’은 없다. 문제투성이 현실을 한 번에 해결하거나 미화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어떻게 달을 가리겠는가.) ‘마법 같은 현실’을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은, 몇 백 년 동안 열심히 시도하고 또 어설프게 실패한 이야기로 가득한 사회와 적나라하게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부정하는 대신 유머로, 투지(鬪志)로, 삶의 방식으로 끌어안는 것이 바로 문학의 마법이다. 사회의 실패 속에서 유럽의 그림자, 미국의 그림자를 보는 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만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발에 박힌 가시처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문제투성이의 일상.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처럼 문학계의 대가도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백년의 고독>처럼 심오해 보이는 책도 사소한 부분에서 참 큰 웃음을 주니까.

오늘은 내가 경험한 쿠바 아바나의 소박한 매직 리얼리즘을 소개하려고 한다. 쿠바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안이 벙벙할 이야기, 그러나 쿠바에 직접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박장대소를 할 에피소드다. 정말 웃겨서라기보다는 ‘쿠바스럽다’라는 말 밖에는 이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것이 쿠바(esto es Cuba)’인 것이다.

에피소드1. 하늘을 나는 감자 껍질

아바나에서는 머리 위를 조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훌쩍 날아서 내 머리 위에 떨어질 지 모른다. 만약 아바나가 아닌 쿠바의 다른 지방에서 머무르고 있다면 새똥만 조심하면 된다. 그런 곳에서는 2층을 넘어서는 높은 건물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바나는 명색이 쿠바의 수도다. 쿠바에서는 보기 드문 5층짜리 아파트도 많고, 그 옛날 미국인들이 이곳 부동산 투자에 열중할 때 지어진 25층 되는 아파트 건물도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건물이 높아지는 만큼 일상의 위험 수위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떨어질까? 일단 물이다. 청소한 물, 빨래한 물, 개가 오줌 싸놓은 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깨끗할 리는 없는) 물이 길거리로 떨어진다. 그것도 몇 방울이 아니라 양동이 하나 가득, 철퍼덕하게. 여름 햇살이 작열하는 거리에 시원한 물줄기를 하사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창문을 열고, 경고의 소리도 없이, 물을 들이붓는다. 그때 하필 그곳을 걸어가는 재수 없는 행인이 있다면? 시궁창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예 파이프를 통째로 베란다로 끌고 와서 허공을 향해 배수하는 사람도 있다. 콸콸콸콸콸....... 그러면 길거리에 더러운 홍수가 난다. 쿠바 사람들도 기가 막힌지, 가끔씩 소리친다. “이보쇼, 물을 이렇게 배수하면 어쩌자는 거요?” “가뜩이나 비도 많이 와서 짜증나 죽겠는데, 지금 우리 엿 먹으라는 건가?” 그러나 늘 그렇듯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물소리만 들린다.


물은 가장 평범한 비행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바나에서는 때때로 감자껍질도 하늘을 날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아바나에서는 보기 드물게 높은 23층 아파트에 산다. 이 아파트는 A동과 B동이 데깔꼬마니처럼 마주 보게 설계되어 있는데, 그 거리가 몹시 짧아서 커튼을 열면 맞은편 이웃집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어느 날 친구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보니, 맞은편 동에 사는 아주머니 역시 부엌에 있었다. 갑자기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었다. 혹시 인사를 하려는 걸까?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방금 깎은 감자 껍질을 창문 밖으로 훌훌 자유낙하시켰다. 2층도 아니고, 3층도 아니고, 23층의 높이에서. 무념무상의 해탈한 표정으로. 참 재수 없게도 그때 그곳을 지나가는 보행인은 머리에 감자껍질 폭탄을 맞고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친구는 차마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때로는 ‘정상적인’ 물건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한다. 2층에 있는 피자집에서 주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굳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종업원을 소리쳐 부르면 2층 테라스에서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무판 하나가 내려온다. 여기에 돈을 얹어서 올려보내고 한참을 기다리면, 이제는 피자가 내려온다. 일종의 쿠바식 ‘테이크 아웃점’인 셈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열대 기후를 닮은 쿠바인들의 느긋함은 귀차니즘으로, 귀차니즘은 일단 결과에 도달하고 보는 ‘빨리빨리’로 변하는 모양이다.

에피소드2. 피 흘리는 도둑

 

쿠바의 현관문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생겼다.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현대식 현관문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 무조건 열쇠를 쓴다. 그렇지만 강력 범죄는 없어도 좀도둑은 많은 쿠바에서는 보안이 늘 관건인지라, 이곳에서는 오래된 이중 잠금장치가 쓰인다. 한 번 문을 잠그면 밖에서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열쇠 없이는 열 수 없는 문이다. 가령, 어젯밤에 문을 잠그고 잤는데 오늘 아침에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나는 하루종일 집을 못 나가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목숨 걸고 열쇠를 사수하게 된다.

이 오래된 보안 장치가 얼마나 기똥차게 작동하는지 다음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날 내 중국 친구는 집에 돌아왔다가 심장마비에 걸리는 줄 알았다. 매 주 방문하는 쿠바인 청소부 아줌마가 피 흘리며 소파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이 청소되어 있기는커녕, 도리어 엉망진창이었다. 서랍은 죄다 열려 있고, 지폐와 값나가는 물건이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본업을 하러 이 집에 온 게 아닌 것은 분명했다. 딱 봐도 도둑질 현장이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청소부 아줌마는 이 집에 중국 친구가 세들어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 ‘부유한 외국인’의 (쿠바에서 외국인은 모두 ‘부자’다. 실제 부자가 아니더라도 부자로 낙인찍힌다.) 재산을 탐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도면밀한 집주인은 청소부에게 끝내 집 열쇠를 주지 않았다. 반드시 집에 사람이 있을 때에만 와서 청소하게끔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청소부 아줌마는 창의적인 발상을 해냈다. 옥상에 밧줄을 묶고, 벽을 타고 내려와, 창문을 깨고, 유유히 집안에 잠입하는 것. 그러나 이 중년 아줌마의 운동신경은 대도(大盜) 루팡처럼 기민하지 못했고, 마지막 단계에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깨진 유리가 다리에 깊게 박히면서 물건을 훔치기도 전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도둑질이고 뭐고, 어서 빨리 병원에 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열쇠가 없었다! 열쇠가 없으면 집 안에 있더라도 문을 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친 다리를 끌고 다시 창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서 사람이 집에 와서 빨리 도둑질이 발각되어야 병원에 갈 수 있다. 자포자기한 그녀는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집에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친구는 그녀를 부축해서 일단 병원으로, 그 다음에는 경찰서로 데려갔다. 쿠바에서는 도둑질마저도 어이 없는 이유로 실패한다. 만약 친구네 집이 최첨단 현관문을 달고 있었다면 청소부 아줌마는 진작 현장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오래된 문짝이 완벽하게 제기능을 한 셈이다.

에피소드3. 사랑스러운 설사

쿠바의 위생 상태는 썩 좋지 않다. 친구의 경험에 의하면 인도에 비하면 쿠바가 훨씬 깨끗하다지만, 제1세계에서 평생 먹고 씻고 똥 싸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쿠바의 길거리 음식은 그야말로 ‘설사 폭탄’이다. 내 위장은 몇 개월 만에 적응을 마쳤다. 그러나 나보다 더 예민한 장을 가지고 사는 친구들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매번 설사에 시달린다. 그래서 이들은 집에서 스스로 밥을 해먹거나, 반드시 검증된 고급 식당에서만 밥을 먹는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설사를 야기하는 괴로운 식당들이, 쿠바 사람들에게는 적은 월급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이다. 이는 막 쿠바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 외국인에게 적지 않은 골칫거리가 된다. 내가 항상 가는 식당은 쿠바 친구들에게 너무 비싸지만, 쿠바 친구들이 가는 식당에 간다면 분명 나는 내일 아침 화장실에서 봉변을 당할 텐데, 이를 어찌하면 좋나? 이것이 우정의 문제라면 차라리 낫다. 주머니가 텅 빈 쿠바 애인을 사귀게 된 사람에게 음식은 실존의 문제가 된다.

 

내 친구가 딱 그 짝이었다. 깡마른 몸에 큼지막한 눈, 누가 봐도 그녀는 건강하지 못한 위장을 타고 태어난 여성이었다. 그렇지만 살사를 추거나 연애를 할 때는 내장에 100만 볼트 배터리를 장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운이 넘쳤다. 이 친구는 메마른 캐나다 남자에 질린 후로 건강한 쿠바 남성을 물색하고 있었다. 성격도 착하고 생각도 깊은 캐릭터라서, 금세 남자가 나타났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마초 사회인 쿠바에서는 첫 데이트 때 여자가 밥값을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돈 많은 외국 여인을 꼬시는 ‘히네떼로(Jinetero)’처럼 보이기 싫었던 쿠바 애인들은 반드시 밥을 사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야 뻔했고, 친구는 차마 싫다는 소리를 못한 채 애인을 따라서 로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녀는 아랫배를 움켜잡고 침대에 누운 채, 학교 수업을 결석하겠다는 문자를 날렸다.....

이런 과정이 반 년 사이에 8번은 반복되었던 것 같다. 우리 친구들이 그녀의 ‘남친 리스트’에 새로운 이름을 등록할 때마다, 그녀의 위장도 한바탕 설사 폭풍을 겪었다. 새로운 남자와 만날 때마다 새로운 설사 사이클이 시작된다. 사랑스러운 설사라고 제목을 붙여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다.

놀랍고도 무서운, 무서우면서도 더러운, 더럽고도 슬픈, 슬프고도 로맨틱한 현실. 이곳이 아바나다. 나는 바로 이런 곳에 살고 있으며,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중 한 요소라도 빠지면 아바나는 아바나가 아닐 테다. 이 긍정의 순간에 매직 리얼리즘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어째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그토록 희한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아바나에서 9개월을 보내고 난 지금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글_김해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