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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차명식의 책 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2)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by 북드라망 2019. 6. 11.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2)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필자의 말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그날따라 아침부터 부산했다. 무심코 평소 시간대로 오는 아이들이 없도록 전화도 해야 했고, 미리 언질을 한 마을 장터 운영진과도 재차 연락해 일정을 확인해야 했다. 안에서 수업하는 것에 비해 여러모로 손에 많이 가는 야외수업이었지만 그래도 마을과 같은 테마에 있어서는 한 번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열 번 글로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행히 다들 제시간에 도착했고 날씨도 맑았다. 우리는 예정대로 시간에 맞춰 마을 장터가 열리는 마을 하천가로 출발했다.


야외수업이라고는 해도 막상 시작하고 나면 딱히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마을장터를 둘러보게 한 다음에는 마을 공동체에서 주관하는 마을투어 프로그램에 참가시키는 게 전부였다. 나는 현장학습에 따라온 학부모 마냥 그런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걷다보니 어느새 장터에 도착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투어 시간까지 자유롭게 장터를 둘러보게 한 다음 슬쩍 뒤로 빠져 섰다. 녀석들은 처음에는 잠시 쭈뼛거렸지만, 곧 자연스레 장터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녀석들은 시간에 맞춰 다시 모여 (저마다 손에는 군것질거리나 작은 소품들을 들고 있었다) 투어 프로그램에 따라 마을의 공방들을 찾아 나섰다. 퀼트 공방에서는 직접 퀼트를 해볼 수도 있었고, 생화를 사용하는 공방이나 여타 다른 공방들에서도 활동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아무 문제도 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무사히 소화하고 돌아와 그 날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과연 오늘 체험을 통해 마을이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을까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이들의 경우에는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책 몇 권 읽고 마을 장터 한 번 가고 공방 몇 곳 둘러본 것만으로 마을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어찌저찌 이 동네에서 10년을 넘게 살면서 그동안 마을 공동체 행사도 꽤 가본 편이었고 마을 공동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번 마을 장터에서도 상점을 낸 고교 동창과 그 부모님을 만나 인사도 주고받았다. 그만큼 ‘마을이 무엇인가’에 대한 감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가을의 커리큘럼을 마을이란 주제로 잡을 수 있었다. 헌데 그 화룡점정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마을장터 방문에서 나는 되레 위화감만을 안고 돌아왔다.


이 날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오늘 우리가 뭘 하려고 했더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될 때까지 둘러보며 물건을 사는 아이들, 코스를 따라 공방을 돌며 체험활동이나 안내를 받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따라가는 나. 그 구도는 어떻게 보아도 관광 여행을 온 여행객들이나 현장학습을 온 아이들의 그것이었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렇게 느꼈을까. 왜 스스로를 관광객처럼, 마을 장터와 공방을 - 마을 공동체의 현장들을 관광지처럼 느꼈을까.

어째서 ‘마을’은 ‘외부’로 느껴졌을까.

 


2.

 

마을 만들기라 하는 작업은 하루아침에 새로운 일상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도시적 일상의 틈새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 중 새로운 관계와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을 쪼개어 마을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삶의 기반을 여전히 도시에 두고 ‘마을’을 향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며, 한 사람 한 사람 뜯어보면 ‘마을’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마을을 원하는 까닭, 그리는 마을의 상,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의 수준……오직 도시적 개인의 삶을 넘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공감대만이 그들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것이다. 이처럼 제한된 조건들 속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마을 만들기는 바라보는 이상보다 딛고 있는 현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당연히 동천동 마을 공동체도 그런 조건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동천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마을’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그들 모두가 다르다. 우리가 방문했던 마을 장터의 풍경만 떠올려도 그렇다. 장터에 직접 가게를 내어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그런 광경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흘깃거리면서 무심히 옆을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 마을 장터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네트워킹의 일환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달에 한 번 하는 이벤트일 뿐이다. 아직 동천동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동천동 주민이라는 사실은 단지 그들의 주소지가 그 지역에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동천동 마을’이란 이름은 동천동의 모든 사람들이 소속된 마을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은 적어도 이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천동 마을이라는 것은 차라리 동천동이란 지역에 새로운 형식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그 ‘노력’, ‘시도’의 이름이라 하는 편이 옳다.


물론 그 노력과 시도조차도 단일하고 일관된 흐름은 아니다. 동천동에는 ‘마을’을 자처하는 수많은 공간과 집단들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던 공방들 외에도 지역 인문학 공동체인 문탁 네트워크, 혹은 생활협동조합이나 동네의 작은 도서관들이 있으며, 대안학교, 성당, 교회도 있다. 허나 그들 집단 모두 기본적으로는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른 종류의 활동을 하여 일상을 영위한다. 더욱이 각 집단의 내부에서도 구성원들의 욕망과 의지, 조건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집단의 구성원들 모두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힘을 합친다. 때로는 관계가 끝나 사라지고, 때로는 관계를 맺고 새로이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우연한 마주침을 반복하며 아주 천천히 저마다의 마을을 발견한다. “동네 사람들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마을 활동이라는 건 이런 것들이 필요하구나.” “마을 공동체란 건 이런 조직이어야 하는구나.”


이런 점에서 도시의 ‘마을 만들기’는 과거 농촌 공동체로서의 마을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적 삶이라는 조건에서 도시의 다양성이라는 역능을 가지고 새로운 관계와 삶을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상이한 ‘마을’들이 끊임없이 생성과 충돌을 반복하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구성해가는 과정, 얼핏 보기에는 느슨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기에 생명력을 가지고 맥동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오늘날 도시에서 논해지는 ‘마을’인 것이다.


내가 ‘동천동 마을’을 새삼 외부로 느낀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동천동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들 활동이 낯설지 않다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이어져온 그 시도와 과정의 맥락 속에 나 자신이 들어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나의 내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3.


그렇다면 이러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근에는 정부와 지자체들도 도시에서의 ‘마을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때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그 지역만의 무언가를 발굴해내는 작업이다. 대개 마을의 향토사나 옛 풍습, 마을 출신의 인물이나 주요 산업 등인데 때로는 문화사업을 유치하여 새로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들이 이러한 작업에 집중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인데, 흩어진 도시적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에게 새로운 지역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심어 한 집단으로 묶어내려는 목적이 하나고 새로운 ‘컨텐츠’를 창출하여 관광산업적 측면에서 지역 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두 번째이다.


물론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좀 더 많은 이들이 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이러한 작업은 ‘마을 만들기’의 밑작업 단계일 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마을을 만들어나가는데 정말로 핵심적인 것은 바로 그러한 활동들을 주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점차 그 활동들이 나의 일상의 영역에 침투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상적 경험들에 있다. 그런 점에서 가을 시즌이 끝나갈 무렵 희진이가 공동체에 대해 써낸 글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에서 다룬 공동체의 문제점 중 하나는 갈등이다. 공동체 생활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모든 이들이 공동체 생활에 만족할 수는 없고, 갈등은 크고 작게 존재한다. 몇몇 공동체는 이를 극복하지 못해 흐지부지 되거나 깨지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이 무조건 안 좋은 것일까? 공동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모두의 타협점을 찾는 과정 속에서의 불협화음은 생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갈등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전교 회의가 있었다. 불꽃 튀기는 토론을 기대하고 나갔건만, 모두가 말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형식적인 회의였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의견이 나오면 선생님이 다 쳐내셨기 때문이다. 다들 받아들여지지 않을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그 체념한 분위기가 평화로움으로 감싸지는 것에 놀랐다. 차라리 힘들더라도 내 의견으로 공동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의 대부분의 일은 선생님이 결정하신 후 학생에게 통보하신다. 나는 선생님의 의견에 따르기만 할 뿐, 내 의견을 학교 운영에 반영시키지 못한다. 이렇듯 선생님과 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 필요가 없기에 우리 사이에서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 가족끼리는 갈등이 잦다. 이번 여름, 여행을 가서도 의견이 안 맞아 고생했다. 낯선 곳에서의 불편함과 긴 시간 동안 계속 함께 있어야 하니 집에서는 넘어갔던 것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서 아빠는 우리가 아빠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추천한 길은 빙 돌아서 가는 길이고, 언니가 추천한 길은 지름길인데도 우리는 아빠의 길로 가야했다. 화를 내면서 먼저 가버린 것도 있고, 따라주지 않으면 삐져서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모든 일의 결정은 아빠가 주도했다.


각자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 다른데, 모두가 한 사람에게 맞춰야한다는 것이 싫었다. 즐거워야하는 여행이라는 강박에 속으로만 썩히다가, 결국에는 여행 중간에 터져버렸다. 우리는 여행 중간에 모여서 각자의 의견을 말했고, 문제는 해결되었다.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의식하며 맞춰주려고 한 것이다.


서로 타협점을 찾기까지는 서로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 섭섭해 하셨고, 언니들은 답답해했으며, 나는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등이 생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고, 그 해결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따르기만 했다면 결국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갈등을 피하고자 따르기만 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갈등은 공동체의 문제 해결의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동체 속의 갈등은 필요하다. 그것이 있음으로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알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희진의 글 중

 

만일 우리가 마을 공동체를 아름다운 성과로 쇼윈도 안에 남겨놓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도시적 인간관계를 - 수많은 낯선 이들은 영원히 낯선 이들로 남고 극히 일부의 익숙한 이들은 영원히 그 익숙한 관계로 그대로 남기는 그 영속적인 고립의 관계를 -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적인 관계’ - 대개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만 나누던 것들을 동네 이웃들과도 나누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내가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공간이기도 한 동천동 인문학 공동체 ‘문탁 네트워크’의 동네 카페 ‘파지사유’에 앉아있으면 꽤 자주 ‘청소’나 ‘식사준비’에 대한 ‘토론’을 들을 수 있다. 마을 공간이라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는 공간이다. 헌데 당연히 그들 누군가는 그 공간을 청소해야 할 것이고, 관리비를 신경 써야 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식사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 보통 이러한 문제들은 집안, 가족들 사이에서나 생각하게 되는 ‘사적인’ 문제고 그 해결도 ‘사적’으로 이루어진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명령하거나, 남편이나 아내가 조용히 알아서 한다. 희진이가 학교 회의에서 경험한 것처럼 너무나 익숙한 관계에서는 누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자 혹은 자식 사이가 아닌, 마을 이웃끼리 이런 ‘사적인’ 문제를 논의하게 될 때는 어떨까. 이웃끼리 누가 청소를 할지에 대해, 누가 밥을 할지에 대해 명령하거나 알아서 하는 것은 너무나 어색하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국면이 발생한다 : 토론이든, 회의든, 몇 사람 간의 의견조율이든, 그도 아니면 그대로 방치되어 문제가 터지든,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 새로운 갈등으로 경험되며, 그 일련의 과정 전체를 몸으로 익혀나갈 것을 요구한다.




그러한 경험들은 오랜 시간 고정되어 있던 일상 전체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내포한다. 집에서만 이야기하던 것들을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하던 것들을 집으로 가져온다. 집에서 하던 방식대로 밖에서 하다가 갈등을 빚기도 하고 밖에서 하던 방식을 집으로 가져와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을 공동체의 탄생이 의미하는 ‘새로운 인간관계’는 또 하나 낯선 외부 영역의 탄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관계 맺기의 과정 속에서 항상 익숙했던 사적 영역과 항상 낯설었던 공적 영역이 함께 확장되어 서로의 영역을 침식, 종국에는 그 경계를 흐트러뜨리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마을’은 새로이 감각되는 것이자, 나 자신의 감각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닐까, 내가 아이들과 했어야 했던 것도 마을 장터를 구경하고 투어를 하는 것보다도 함께 공간을 청소하고 간식 준비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그런 일이 아니었을까.


가을의 수업이 끝나갈 무렵 나는 뒤늦게 그러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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