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1)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필자의 말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도시가 탄생한 뒤 그리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도시의 침묵을 알아차렸다. 도시에서의 삶은 이전보다 외롭고, 각박하고, 파편적이다. 한동안 그것들은 그저 견뎌내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곧 그러한 침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의 형식을 발명하고자 했다. 그들은 그 형식의 이름을 다시 ‘마을’이라 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 곳곳에서 말해지는 ‘마을’의 이름은 도시 한 가운데서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슈퍼 아저씨’, ‘옆집 아줌마’, ‘아래층 할머니’ 등 한동안 익숙함의 루트에서 빗겨난 채 낯설음의 영역에 방치되어 있던 관계들을, 과거 시골 마을들이 그러했듯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다시 이어내자는 의미다.
그리고 장성익의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는 그러한 일련의 시도들을 아주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 잘살아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렇게 외딴섬처럼 살아서는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 새로운 의문을 품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살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그렇게 해서 찾은 소중한 대안의 하나가 공동체입니다. 더불어 살고 함께 어울리는 삶. 서로 돕고 나누는 생활.」(4-5p)
앞선 책들, 그러니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원미동 사람들』을 통해 나는 아이들에게 도시의 탄생 과정과 오늘날 도시에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의 특징 따위를 설명하고자 했다. 낯익은 것은 한없이 낯익어지고 낯선 것은 영원히 낯설게 남는 도시의 인간관계. 타자를 만나는 경험은 극히 줄어들고, 그에 따라 자기 자신 안에 매몰되는 도시적 삶. 그에 비해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를 고른 까닭은 어찌 보면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와 같은 도시 공간 안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주려던 것이었다.
2.
마을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에 대해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미 자기 곁에 있는 것을 낯설게 다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도시는 후자이고, 마을은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요컨대 공동체란 결국 ‘생활을 비롯해 공통의 활동이나 일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면서, 유대감을 공유하는 집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3p)
「마을 공동체와 협동조합은 좀 전에 얘기한 공동체의 세 가지 차원을 대체로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구체적으로 접하거나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 ‘공동체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딱딱한 이론적 설명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런 논의를 바탕으로는 하되 현실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공동체를 살펴보는 것이 공동체 공부에 더 효과적인 셈입니다.」 (이상 35p)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공동체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 개념을 마을 공동체와 협동조합으로 좁힌 다음,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가도록 한다.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가 택하고 있는 방식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책은 마을 공동체에 얽힌 여러 문제의식과 그것이 당면한 현실적 고민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었다.
책에 따르면 공동체를 정의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생활에서 맺고 교류하는 관계망이 어떤 범위에서 어떤 방식과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사람들의 일과 행위가 어떤 흐름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일어나는가이다. 그러므로 마을 공동체란 반드시 행정구역 등으로 결정되거나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의식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공동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공동의 목적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함께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일차적인 토대는 공간이지만, 본질은 그 안의 관계와 관계 형성의 과정이다.
이것이 도시에서야말로 마을 공동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도시의 시스템은 개인들이 홀로 제각기 사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게 하면서 익명성 속에 흩어진 개인들을 거느린 채 확장하고 팽창한다. 오늘날 도시에는 ‘사람’이 없고, 자연과 사람을 동시에 망가뜨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어야 하고,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재정의 되어야 한다. 이 때 마을 공동체는 상호부조와 연대가 이루어지는 구체적 삶의 생활 공동체로서, 주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행해지는 다원화된 정치 공동체로서, 협동조합을 위시한 새로운 경제 질서와 문화가 꽃피는 경제 공동체로서 개인의 삶을 넘어 마을과 지역, 도시를 바꿔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어느 정도 마을 공동체의 의미를 이해한 듯 보였다. 실제로 아이들은 평소와 달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대한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책이 마을 공동체의 개념과 여러 아젠다들에 대하여 내린 정의와 설명이 쉽고 명확했다는 뜻이리라. 대신 아이들이 이 책에 대해 가져온 건 자기들이 재미있었던 부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에 대한 아이들의 경험과 언어가 생각보다 훨씬 풍부하다는 점이었다.
3.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무지개 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녔다. 학교는 무지개 교육마을이라는 곳에 속해있었고, 무지개 교육마을에는, 꼭 무지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무지개 교육마을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었다. (...) 마을에서 지낼 때에는, 교육마을 사람들의 자녀들이 체하거나 열이 나면 머리나 손을 따주러 가기도 하고 그랬다. 사실 처음 그곳으로 이사 갔을 때에는 그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그 ‘정’에 익숙해져서,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어색할 정도였다. 사실 우리 학교가 있었던 동네는, 마을이라고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동네였는데 아이들이 있는 집도 많고 혼자 살고 계시는 노인 분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까 지나다니면서 인사도 많이 하고 처음 보는 아이들끼리 거리낌 없이 놀기도 했는데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는 지나다니다가 인사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인사를 한다고 해도 아주 어색하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 예인의 글 중
“나는 유치원 대신 ‘부천 산 어린이집’ 이라는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그곳에서는 세시 절기에 맞는 전통놀이, 텃밭 가꾸는 법 등을 배운다. 매일매일 산으로 나들이도 갔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별명으로 부르고 반말도 썼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어린이집 담장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고 마당에는 닭장도 있다. 아이들은 아침에 와서 선생님들과 나들이도 가서 올챙이도 잡고 텃밭일도 하고 다시 돌아와서 점심 먹고 낮잠도 잔다. 그렇게 그냥 놀다가 오후에 학부모가 데리러오면 집으로 가는 거다. 나는 그때 당시에는 내 또래의 모든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생활하는 줄 알았다. 유치원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산 어린이집과 다른 점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는 되게 특이한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는 공동체라고 하면 그냥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지금까지 내가 공동체에서 살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에는 공동체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책이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내가 공동체 안에서 생활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 책인 것 같다.”
- 수인의 글 중
이미 어렸을 때 마을 공동체 운동을 경험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발도르프 학교나 여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이 책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삶 혹은 경험하고 있는 삶의 연원과 의미를 설명해주는 책이었다. 왜 자기가 그곳 – 학교, 어린이집, 마을 –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왜 그곳의 분위기는 유달랐는지, 왜 그런 곳이 존재했는지. 아이들은 도시인으로서의 자신들의 하루를 다시 읽어냈듯 ‘마을’에 대한 경험 또한 다시 읽어냈다.
그렇다면 마을 공동체 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어떨까? 그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먼저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로 나는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단원으로서 합창단이라는 공동체에 속하여 있다. 전에 찾아가는 연주회를 갔었는데 많은 분들이 연주를 보러 오셨었다. 노래를 부르던 중간에 관객들을 한번 쳐다보았는데 관객 중 한 분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았다. (...) 이런 모습을 통해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어서 더 값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학교가 있다. 한 학교에 한 학급의 학생으로서 공동체에 속해 있다. 학교에선 수업을 주요로 하긴 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공부 이외의 많은 것들을 배운다. 선생님들의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살면서 생기는 일들에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얻는다. 학생인 내가 가장 많이 접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학교가 공동체일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는 작은 사회공동체라 하는 것처럼 분명한 공동체가 맞다.
세 번째로 엄마가 이용하는 생협이 있다. 엄마가 생협을 이용하는 이유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돈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 되어 더불어 행복해지는 곳이어서이다. 책에서는 ‘나는 너를 돕고 너는 다른 사람을 돕는다. 이것이 돌고 돌아 결국 나한테 도움이 된다.’라는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연에게 얻은 만큼 보답해주는 것. 자연을 살리는 것은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이 자연과 공동체는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소통하고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며 공동체라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생소하기만 했던 공동체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동체라는 것은 그냥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배워가는 행복한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나누고 배운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젠 내가 지금까지 얻은 것들을 나눠 주어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차례이다.”
- 윤지의 글 중
반드시 마을 공동체란 이름을 내건 운동이 아니더라도 이미 나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여러 집단들 속에도 공동체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하느냐에 따라 당장 자기의 삶 안에서도 수많은 공동체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그 아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의의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날 수업은 결국 그러한 각자의 경험을 주로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남의 썰풀이를 듣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많지 않다. 아이들은 한껏 흥미로운 얼굴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책의 구절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을 발견하며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가까운 데서부터 감각을 찾기 시작하니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예시들에게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성미산 마을의 설명 중에서 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만들고 함께 토론하여 결정하면서 마을이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성미산 마을의 설명을 보니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하는 활동이 우리 학교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우리학교도 부모님들이 돈을 내고 그 돈으로 운영되고 학교를 지었으니 성미산 마을 학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나는 성미산 마을 같은 공동체 마을을 내 주변에서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조금만 더 넓히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 효준의 글 중
서울의 성미산 공동체부터 스페인의 몬드라곤, 언젠가 유투브에서 스쳐가듯 본 아이슬란드의 솔헤이마르 공동체 같은 해외의 예시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익숙함을 느끼는 듯 했다. 게다가 ‘마을’로부터 거꾸로 올라가니 앞서 난해하게만 다가왔던 『난쏘공』이나 낯설었던 『원미동 사람들』의 풍경들이 말하는 바와도 맥락이 닿았다. 도시의 탄생이 무엇을 무너뜨렸는지를. 그럼에도 무엇이 도시 안에 남아있었는지를. 마을이란 이름은 무엇을 이끌어내려는 것인지를.
4.
열띠게 이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꽤나 흡족함을 느꼈다. 이 흐름대로 쭉 이어가면 이 가을 시즌에 내가 설명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은 충분히 다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이번 시즌 준비한 책들은 거의 다 읽었지만 아직 한 가지 더 준비한 것이 남아있었다. 문탁 네트워크 주변, 그러니까 동천동 일대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마을 공동체 운동이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었고 그 중 하나가 마을장터 ‘해도두리’였다. 나는 이번 시즌을 시작할 때부터 ‘해도두리’가 열리는 날과 후반부 수업 즈음의 일정을 맞춰놓고 있었다. 겸사겸사 마을의 공방이며 가게들을 돌아다니는 안내 코스도 함께. 그것까지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 확실하게 마을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알려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웬만큼 할 말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나는 수업을 마무리했다. 해도두리 마을 장터를 통해, 도시의 탄생에서 시작한 이번 이야기가 마을에서 마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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