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엮은이 인터뷰
혼자서는 읽을 수 없는 책 읽기
1.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는 ‘마을’이나 ‘인문학’, ‘공동체’ 등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곳이지만, 아직 문탁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먼저 접하는 독자들도 많을 듯합니다. 문탁을 처음 만나는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히 문탁을 소개해 주세요. 문탁은 공부하는 곳인가요? 마을인가요? 어떤 분들이 모여 계신가요? 아무나 가서 공부할 수 있나요?
문탁네트워크는 공부를 통해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인문학 공동체입니다. 가정집 아파트 거실에서 이반 일리치(Ivan Illich)를 읽는 작은 공부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공부하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거실에서 나와 터전을 마련하여 공부하고 활동해 온 지 이제 햇수로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 문탁네트워크의 공부의 영역도 활동의 영역도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되어 왔습니다. 세미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공부의 내공을 다지는 것이 언제나 기본이지만, 문탁네트워크의 색깔과 방향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공부를 하느냐, 어떤 활동이 만들어지느냐, 어떤 사람들이 접속하느냐에 따라 변신을 거듭해 온 것이지요.
지난 10년간 일관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부와 마을이라는 화두입니다. 지식 축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의 비전을 찾기 위한 공부, 공부로 만난 친구와 함께 다른 삶을 만들어 가는 실험적인 공동체로서의 마을, 우리에게 공부와 마을은 어느새 공통의 감각이자 공통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청년, 주부,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갑니다만, 문탁네트워크의 세미나에서 우리는 나이, 성별, 직업 등에 관계없이 함께 공부하는 학인이 되고, 여러 활동을 통해 공유지를 함께 만드는 친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문탁네트워크는 공부를 통해 친구를 만들고, 친구와 함께 다른 삶을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여러 세미나나 강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오실 수 있으니, 일단 세미나 혹은 강좌로 접속해 주시면 됩니다.^^
2. 이 책은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이라는 제목 그대로 ‘문탁이 사랑한 책들’ 30권의 서평 모음집입니다. ‘문탁이 사랑한 책들’이란 문탁에서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이 반복해서 읽어 왔던 책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문탁이 사랑하는 책들’을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또 ‘문탁이 사랑하는 책들’에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요?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문탁 학인들에게 커다란 배움이 일어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고, 공통의 활동을 만들어 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이지요.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은 더 많습니다만, 지난 10년간의 공부를 동양고전, 인류학, 철학, 교육의 카테고리로 나눈 뒤, 세미나에서 자주 반복해서 읽게 되고, 문탁 학인들의 말과 글에 계속 등장하는 책들 중에서 30권을 골랐습니다.
3. 문탁이 사랑한 책들은 모두 ‘함께 읽은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읽는 책은 어떤 점이 다를까요?
함께 책을 읽다 보면 혼자서 책을 읽을 때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고, 전혀 떠올리지 않았던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의 생각과 만나 화학적 반응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나는 거지요. 관념과 관념 사이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체험은 커다란 기쁨을 줍니다만,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나’로 변용되기 때문입니다.
또 텍스트에 대해 생각과 말을 서로 섞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가 눈에 보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 역시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앎과 삶의 괴리는 곧바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책을 읽는다는 건 더 능동적으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며, 다른 한편 남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타자를 이해해야 하는 아주 불편하고 도전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혼자서는 읽을 수 없는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세미나 후에 자주 하는 말입니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편식을 하기 쉽습니다. 또 웬만한 독서가가 아닌 이상 익숙하지 않은 주제나 좀 어렵다 싶은 책은 피하게 됩니다.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런 장애물을 넘어가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스승이 되어 주는 책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유용한 책 읽기라고 할 수 있지요.
여기에 더하여 책을 읽은 뒤 서로가 쓴 에세이를 읽고 피드백을 하면 아주 금상첨화입니다. 더 불편해지고 더 위험해지고 더 유용해집니다. 이렇게 계속 하다 보면 함께 책 읽는 것의 마력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문탁네트워크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4. 문탁은 가정집 아파트 거실에서 시작된 독서 모임이 확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작은 마을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생산(경제) 활동, 원전 반대 운동, 청소년 교육 등 분야도 특정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책 읽기(공부)와 이런 활동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10년은 공부가 새로운 공부를 낳고, 새로운 공부가 활동을 낳고, 활동이 또 다른 공부를 낳는 순환의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문탁네트워크에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서로를 알아 가면서 함께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고, 다른 경험과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기꺼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맞추려 애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경제 세미나>가 마을작업장을 만들었고, 마을 작업장 활동을 하면서 인류학과 정치경제학 공부에 대한 열의를 불태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율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공동체의 철학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동양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청소년과 만나는 장을 조금씩 넓혀 오는 사이에 마을과 교육이라는 주제로 공부를 심화시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밀양 어르신들과의 인연으로 에너지나 핵 발전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활동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녹색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공부가 어떤 활동을 낳게 될지 우리도 모릅니다. 지금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은 ‘늙음과 죽음’, ‘양생과 건강’ ‘마음과 명상수행’ ‘글쓰기’ ‘손 인문학’과 같은 것입니다. 문제의식이 깊어지고 다르게 살고 싶은 친구들이 뭉치고, 문탁네트워크 안에서 이러한 노력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또 새로운 공부와 활동의 길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마을 만들기’나 공동체를 꾸리는 데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어떤 세미나를 만들면 좋을지, ‘노하우’(^^)를 공유해 주세요.
다른 공동체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우리도 관심 있는 공동체들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지금도 배우러 다닙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마다 각자의 역사와 맥락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공동체를 꾸린다는 점은 같지만, 어떤 사람들이 모였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모든 공동체는 각자의 독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하우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로 마음을 모아 보려는 분들에게는 이반 일리치의 책들과 선물사회를 연구한 인류학 텍스트들로 공부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책들로 시작했고, 어려움에 처할 때면 끊임없이 이 책들로 돌아가 다시 읽으면서 영감을 얻고 용기를 내기 때문입니다.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에 나오는 한 권 한 권이 모두 문탁네트워크를 꾸려 오는 동안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준 책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든 같이 책읽기를 하는 것은 마음을 모아 내고 공통의 감각을 만드는 탁월한 수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평범한 생활인들이 삶의 비전을 찾는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모임이 여기저기에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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