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책』 을 쓰고 나서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필자 후기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에는 모두 스물두 명의 필자가 참여하여 서른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글도 쉽게 쓰여지지 않았고, 어떤 글도 친구의 개입 없이 쓰여지지 않았지요. 이렇게 쓴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소감이 없을 수 없겠지요. 그 감회를 나눕니다.(뒤에 붙인 고딕체 글씨는 각 필자가 이 책에 쓴 글의 제목과 그 글이 다루고 있는 책 제목입니다.)
명식 어떤 책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문득 벼락같이 찾아오는 것이라 그 까닭이며 과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가까스로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던 건 오직 이 책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그러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_ ‘가르칠 자격’에 대하여(『무지한 스승』)│시대의 끝자락에서 청춘에게 말을 걸다(『청춘의 커리큘럼』)?
블랙커피 문사책글쓰기로 6행시를 지어봤습니다.
“문탁에서 책을 낸다며 글을 쓰라고 한다.
사랑하는 루쉰을 쓰라니 흔쾌히 오케이~
책을 다시 뒤적뒤적 읽어보니 역시 재밌다. 그러나…
글쓰기는 어렵다. 창작의 고통이 몰려온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며 봄, 여름, 가을이 지났다.
기쁘다. 책이 나온다. 이제 그만 고쳐도 되는구나~” _ 기꺼이 몰락하기 위한 싸움(『무덤』)
노라 축제에 맞추어 붉은 색 ‘문사책’이 나오니 반갑네요. 이제야 고백하건대 제 글이 다 제 글이 아니랍니다. 봄부터 매달 만나 같이 수정하고 조언하며 만든 ‘문사책팀’의 글입니다. 이제 한동안 ‘문사책’ 안에 있는 서른 권의 책을 만날 생각에, 서른 권의 책을 같이 읽을 친구를 만날 생각에 설렙니다. _ ‘학교화 되지 않는 사회’ 만들기(『학교 없는 사회』)
히말라야 책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간으로써, 그동안 신세 진 책들에게 아주 미약하나마 은혜를 갚은 듯한 기분이 잠깐 들었습니다~ 책을 써주고, 함께 읽어주고, 책에 관한 글을 쓰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_ 질기도록 굴복하지 않는 목소리들(『밀양을 살다』) │ 아주 찬찬히 전해지는 것들(『나무에게 배운다』)
게으르니 사마천은 열전을 쓰고 나는 에세이를 썼다. 사마천은 이름을 남기고 나는 정념을 남겼다. 사마천처럼 이름은 못 남기더라도 정념은 버려야 할 텐데. 그러자면 계속 써야겠지? _ 쓴다면 사마천처럼(『사기』)
꿈틀이 문탁은 정말 신기한 곳인 것 같다. 올해 초 기획세미나를 참석했을 뿐인데, ‘마을경제워크숍’ 강의안을 준비하고 그것이 ‘문사책’에 실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을 하고자 하지 않아도 무엇이 되어가고 정말 무엇이 되는 곳…. 재미있는 곳이다. _ 근면: 미덕인가, 규범인가(『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오영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선물이니 증여니 하는 말들이 다 낯설었다. 그러니 저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만 왜, 무엇이 마음이 드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다. 그 후 한동안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에 <파지사유인문학>을 계기로 다시 읽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 서평까지 쓰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간의 아쉬움을 떨쳐버려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것은 서평을 쓰느라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비로소 이 책이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_ 사랑이 돈을 움직인다(『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문탁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 이전에 『문탁네트워크 이야기』가 먼저 나왔어야 했다. 계약도 먼저 했고, 원고도 일찍이 80%가 넘어갔었다. 그런데 20%를 채우지 못한 채 난 여전히 ‘양치기 소년’이다. 내년에 난 ‘양치기 소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끙~~. _ 『주역』과 길흉회린의 해석학(『주역』)│나의 ‘중국철학사’를 쓸 수 있을까?(『중국철학사』)│결코 사라지지 않는 간디의 꿈(『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청량리 이상하게 글이 안 써졌다. 책은 재밌었으나 도시를 벗어나고픈 난 뉴욕에 대한 애정도 없었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책은 읽고 쓴 거냐는 출판사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뜨끔했다. 그러면 다른 책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있었으나 존심이 있지, 어떻게든 써 보고 싶었다. 그리고 왜 난 도시를 싫어하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니까 문제는 ‘뉴욕’에 있지 않았다. 『뉴욕열전』은 그걸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_ ‘뉴욕’은 어디에나 있다(『뉴욕열전』)
뚜버기 여름과 가을 나를 따라 다녔던 책이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책이 나를 데리고 다녔던 듯하다. 책아, 고마워 _ 우리는 모두 선물의 윤리에서 나왔다(『증여론』)│안에서-대항하며-넘어서기(『크랙 캐피털리즘』)
둥글레 “넌 왜 능력도 있는데 돈을 안 버니…” 엄마의 한숨과 함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본 지도 어언 6년. 비록 한 꼭지 썼지만 이 책 안겨드리면 좀 나아지실까요? 울 엄마 얼굴에 웃음꽃 피우게 책 한 권 더 써 드려야겠어요~ _ 필연과 자율의 삶, ‘건강’(『병원이 병을 만든다』)
봄날 2012년이었던가, 『부채』로 북앤톡 발표를 하면서 밀려오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 그때 요약했던 내용이 서평에 요긴할 줄 몰랐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난 책을 확실하게 장악했을까? 부끄러움이 앞서는 건 ‘No’라는 답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아, 소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난 이제 최소한 “빚은 안 갚아도 된다”고 남편한테 무턱대고 들이대지 않을 만큼 신중해졌다. _ 세상에 돈이 있기 전에 빚이 있었다(『부채 그 첫 5,000년』)
세콰이어 자신의 역량이 달려서 포기하겠다는 염구에게 공자는 “너 스스로 금을 긋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문탁에서 공부하는 것은 스스로 긋는 금을 흐리게 한다. 혼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을 일. 『근사록』 서평쓰기도 그랬다. 너무 어려웠다. 솔직히 지금은 중도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없었다면 글은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문탁이 곧 『근사록』이다. _ 주희의 근사한 공부(『근사록집해』)
여울아 아아…. 사실 제가 『장자』를 잘 모릅니다. 4년 전 학이당에서 처음 『장자』를 접했을 때 관련 동서양 연구서적들을 무지 많이 읽긴 했어요. 유소감, 그라네, 미조구치 유조 등등. 하지만 제게 가장 어려운 건 『장자』 그 자체였습니다. 그땐 사람들이 『장자』에 열광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얼마 뒤 문탁샘이 출간한 『낭송장자』를 읽고서야 장자 이야기의 맥락이 꿰어지더군요. 제가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부디 동양고전도 쉽고 재미있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_ 누구나 읽기 쉬운 『낭송 장자』(『낭송 장자』)
뿔옹 이럴 줄 알았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멋진 책을 쓰고 싶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말이 이미 다 쓰여졌음을 발견한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란 나 자신을 던지는 일인데, 몇 페이지 안 되는 서평에 드러난 내가 두려워진다. 그래도 알게 된 건, 딱 쓴 만큼이 나라는 것! _ 안다는 것에 대한 착각???앎, 존재, 행위는 나눠지지 않는다(『앎의 나무』)
자누리 내내 생각났던 것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에서 한정된 지면에 글을 내보기 위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쓰고 지우고 교정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이 좋은 머리로도 그건 어림도 없더군요. 아쉬운 게 없어서 그런가 보다 포기했습니다. 아쉬운 삶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_ 『담론』 읽기, 삼세번+α(『담론』)
달팽이 글쓰기는 어릴 적 하기 싫던 숙제 같다. 쓰고 나면 내 말 같지 않아 도대체 뭘 쓴 건지 당황스럽다. 그런데 찬찬히 읽어보면 그 순간의 나를 닮아 흠칫 놀란다. 글은 내가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감추려던 것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고맙지만 대개는 피하고 싶다. _ 폐허에서 피어나는 자율적 개인의 도덕성(『이 폐허를 응시하라』)
인디언 공자님은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나는 글쓰기만 하려면 벽 앞에 코를 박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리저리 도망 다녀도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하는 친구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문사책에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_ 내 삶의 주인 되기, 자기수련으로서의 공부(『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새털 20대 때 내 꿈은 ‘전국노래자랑’ 스탭이 되어 전국을 떠도는 일이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끼니를 때우는 ‘인문학강사’로 살아가고 있다. 꿈을 반쯤 이룬 것 같다. 이제 ‘문사책’을 들고 전국의 도서관을 돌아보리라! _ ‘무한도전’은 끝났다(『액체근대』)│뱀파이어의 ‘윤리학’ 공부(『에티카』)
진달래 여러 번 『논어』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번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논어』를 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사책’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고 제대로 잘 쓰지 못해 혹 이 책에 누가 될까 걱정도 된다. 나와 이 책을 함께 공부하고 글을 쓰고 봐 준 모든 친구들에게 땡큐! _ 공자님, 질문 있습니다(『논어』)
요요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읽고 쓰는 것에 관해서. 그 말들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동출판 프로젝트 북앤톡을 시작했고,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힘에 부치는 ‘문사책’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 덕분에 문탁의 지난 10년 공부를 이렇게 갈무리 했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많은 말에 대한 부끄러움은 두고두고 돌이켜 볼 내 몫으로 남겨두련다. _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거대한 전환』)│변신과 차이가 번성하는 공유지(『공통체』)│혁명으로서의 책 읽기(『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지원 한때 사람들이 저를 푸코리안이라고 불렀습니다. 말만 하면 “푸코가~”, “푸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떠들었습니다. 그 죄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교훈: 자나 깨나 입조심 _ 생산된 진실만이 있을 뿐(『감시와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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