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 한 계절의 습(習)과 결별하는 과정
宰予晝寢
재여주침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牆也 於予與 何誅
자왈 후목 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어여여 하주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
자왈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 개시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 할 수가 없다. 내 재여(宰予)에 대하여 꾸짖어 뭐하겠는가?”
또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에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다시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宰予) 때문에 이 버릇을 고치게 되었노라.” - 〈공야장〉 9장
=글자풀이=
=주석풀이=
봄이 왔다. 바야흐로 겨우내 잠자던 생명력이 꿈틀꿈틀거리는 계절이다. 가끔 쌀쌀한 바람이 불어 겨울의 흔적이 느껴지긴 하지만 푸근한 공기와 향긋한 꽃가루, 코밑을 간질이는 황사(+미세먼지)가 새로운 계절, 새로운 해가 시작됐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춘삼월을 지나 어느덧 춘사월, 여전히 무거운 내 몸은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도 부족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눈꺼풀의 압박이 밀려온다. 맑은 정신으로 봄바람을 맞이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지난 겨울 나의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겨울바람을 피해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애벌레 신세다. 본격적으로 리듬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 막중한 시기에 잠은 치명적인 유혹이자 쉽사리 물리쳐지지 않는 난적이다. 아, 잠이란! 1
잠의 문제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2,500년 전 공자의 제자 중에도 잠으로 곤혹을 치른 이가 있었으니, 공자의 십철(十哲) 중 하나인 재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재여가 낮잠을 잤다(宰予晝寢).” 이 한 구절 뒤에 재여가 호되게 혼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니, 도대체 낮잠 한 번 잤다고 이렇게 혼내는 일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춘곤증이 몰려온 것일 수도 있고, 감기 기운이 들어 몸 관리하는 차원에서 낮잠을 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논어》를 통해 공자의 위대함을 알아가던 중 이런 대목을 보면, 괜히 공자에 대한 반감이 솟구친다. 하지만 공자의 꾸지람은 단지 재여가 낮잠을 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제자에게 딱 맞는 족집게형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재여의 평소 모습을 살펴봐야 공자가 왜 이렇게 심한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자공과 더불어 언어의 귀재로 불린 재여지만, 정작 《논어》에서 그려지는 그의 모습은 ‘문제아’다. 그는 항상 스승으로부터 호되게 혼이 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도 있지만, 재여는 항상 말이 앞서는 것이 문제였다. 말이 앞서는 사람은 실천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지 못하고 원칙을 쉽게 저버리는 경향이 있다. 〈옹야〉편 24장에서는 인(仁)한 사람은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람을 구하느냐는 질문으로 스승을 시험했고, 〈양화〉편 21장에서는 삼년상을 일년상으로 줄여야 한다며 공자와 정면으로 대립했다. 사실 재여의 질문은 우리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추측컨대 재여가 이와 같이 질문했던 것은 공자의 핵심가치인 예(禮)와 인(仁)이 실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재여는 공자의 가르침을 형식적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낮잠을 잔 재여는 공자에게 썩은 나무와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이라는 심한 꾸지람을 듣게 된다. “포 열 마리 이상만 가지고 온다면 나는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 〈술이〉편 7장).”,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아야 한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는 구절은 공자가 배우는 자의 태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분명 공자는 배움을 청하는 모든 이에게 가르침을 주었지만, 최소한의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가르침도 주지 않았다. 재여의 문제는 배우는 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에 따르면, 침(寢)이란 글자는 단지 ‘잠을 자다’가 아니라 침실에 누워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재여는 졸려서 잠시 잠을 잔 게 아니라 침실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재여가 방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공부할 뜻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고 냉철하게 현실적인 문제를 볼 수 있다 한들 성실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기기만에 불과할 뿐이다.
공자는 차라리 말을 어눌하게 할지언정 실천에 게으른 사람을 매우 싫어했다(“군자(君子)는 말은 어눌(語訥)하게 하고, 실행(實行)에는 민첩하고자 한다.君子 欲訥於言而敏於行” - 〈이인〉편 24장). 재여가 재능과 언변은 출중했을지 모르지만, 공부의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결코 ‘군자’는 아닌 것이다. 썩은 나무는 모양을 내려고 해도 바스라질 뿐이고, 거름흙은 아무리 손질을 해도 단단한 담장이 되지 못한다. 둘 다 그 바탕이 약해 외부로부터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약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재여의 낮잠은 자신이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썩은 나무와 거름흙의 담장과 같음을 시인한 것과 상태로 만든 것과 다름없었다.
공자는 ‘처음에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믿었지만, 재여 덕분에 이제는 그의 말을 들으면 그의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라고 했다. 이토 진사이에 따르면, 사람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을 믿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성의(誠意)이고, 말을 듣고 행동을 보는 것은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공자는 마치 재여 덕분에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된 것처럼 말했지만, 핵심은 배움에서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걸 알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재여가 낮에 침실에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내 모습도 겹쳐 보인다. 잠에 취해 좀 더 이불 속에 있고 싶고, 그러다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연구실에 도착한다. 하루가 늦게 시작된 만큼 공부도 밀리게 되고, 오늘 할 일을 밤을 새서 하거나 다음날로 미루게 된다. 이불 속에서 행복하게 꼼지락댄 시간만큼 다음 순간에 겪을 괴로움은 더욱 쌓인다. 게으름이 불러온 악순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다고 모두가 봄을 상쾌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봄을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지난 겨울 추위로부터 나를 지켜준 이불을 빨고, 창문에 앉은 먼지를 닦아내는 대청소가 필요하다. 아! 왜 봄맞이 대청소가 필요하겠는가? 그것은 겨우내 나를 무겁게 만들었던 한 계절의 습(習)과 결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절에 발맞춰 변하기 위해선 내 몸에 박힌 습을 빼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란 바로 내일 눈을 떴을 때 꼼지락거리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즉, 상쾌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 동안 묵었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신체의 리듬을 새기는 일이다. 내일은 눈을 뜬 그 순간부터 하루를 시작해보자.
글_규창(고전비평공간 규문)
- '봄'에 작성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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