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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이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의 힘

by 북드라망 2018. 2. 9.

『아파서 살았다』  책 만든 (뒤) 이야기

- “이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의 힘   




보통 한 권의 책을 만들 때 편집자는 교정을 세 번 본다. 초교, 재교, OK교(혹은 삼교, 최종교). 그런데 또 보통은 그 전에 원고를 한번 일별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아무리 적게 보아도 한 책을 편집한다고 할 때는 그 원고를 4번은 정독해서 보게 된다. 물론 책에 따라 이것도 차이가 크긴 하지만 말이다. 예전에 내가 편집한 어떤 책은 거의 십교 가까이 보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교정만 10번을 진행했다는 거다. 젊을 때라 그쯤 되니,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까지 외워 버렸다(외워짐을 당한 것에 가깝다;;). 아무튼 그냥 독서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초집중 상태로 텍스트를 보아야 하다 보니, OK교에 가서도 내용을 보며 감탄하게 되는 일은 드문 편이다(웬만한 감탄은 재교 정도 오면 보통 마무리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 『아파서 살았다』는 OK교에서도 감정이 식지 않은 드문 책이다. 특히 저자 오창희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말년에 편찮으시다 임종하시기에 이르는 이야기 부분은 반복해서 읽어도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고 만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담담한데 너무 생생하다. 


처음 ‘아파서 살았다’의 씨앗이 된 원고는 감이당 대중지성 에세이 발표였는데, 그 글은 보지 못했고, 내가 처음 ‘아파서 살았다’를 접한 것은 2012년 연말 학술제 때 선생님의 발표를 통해서였다. 그때도 그렇고 이후 얼마 안 있어 ‘아파서 살았다’를 북드라망 블로그에 4회로 연재했을 때도 그렇고 나는 (당연히) 선생님의 입장에서 글을 읽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아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선생님과 책을 내기로 말씀을 나누고, 감이당-남산강학원의 MVQ 공간에 다시 연재하시기 시작한 글을 읽어갈 때는 선생님의 어머님 입장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이 내가 엄마가 되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곱디고운 스물한 살 나이에 자리에 누워 꼼짝도 못하게 된 막내딸 옆을 지키며 병에 효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오시고 나을 수 있다는 일은 무엇이든 하신 선생님의 어머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더불어 막내동생이 많이 아파 내내 곁을 지켰던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원고를 책으로 만들고 난 후 ‘오창희 선생님’ 하면 지금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한 장면 속 선생님과 선생님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르게 되었다. 투병 초기 온갖 명약과 명의를 구해도 차도가 없을 때,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혹시 선생님을 혼자 두었을 때 나쁜 생각을 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에 (시험 삼아) “동촌 거랑에 큰물 나가드라. 거기 니하고 내하고 가서 빠져 죽자. 니 혼자 죽으라 카면 죄 많고 내하고 같이 죽자. 이래 고생시리 사니 죽는 게 안 나을라(낫겠나)” 하신 적이 있었다(책 본문 77~80쪽). 그때 선생님께서 단칼에 나는 안 죽을 거라고, “이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고 하시는 장면이다. 비록 내가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은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보전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데도 “이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스물두어 살의 어린 오창희 선생님의 모습과 내심 속으로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을 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지며 나도 미소를 짓게 된다. 


손 쓸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이래도 사는 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힘. 이것이 타고난 것인지, 부모님 덕분에 키워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창희 선생님께는 그런 힘이 느껴진다. 아마 이 힘이 선생님의 매력의 원천이 아닐까, 사람들이 선생님과 같이 있고 싶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통스러운 질병을 오래 앓을 때 당사자가 힘들어하면 사실 주위 사람은 무엇을 더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어머님께서도 “그동안 니가 신세를 한탄하거나 자포자기했더라면 가족 모두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시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던 게 아니겠나. ‘한탄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이래도 사는 게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딸도 오창희 선생님 같은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책을 만드는 내내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기회는, 질병은 그저 생길 뿐이지만 삶을 의미 깊게 만드는 방향으로 우리가 질병 경험을 엮어낼 수 있음을 깨닫는 데 있다.”(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144쪽)



『아파서 살았다』는 ‘류머티즘 투병기’나 ‘극복기’가 아니다. 병을 앓고 있음을 한시도 잊을 수 없게 하는 통증이 늘 따르는 이 질병의 경험을 어떻게 삶을 엮어 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는지, 선생님이 그렇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 사람과 책과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가 겹겹이 펼쳐져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자기만의 ‘질병’을 앓는 분들에게 그 질병을 어떻게 삶을 ‘의미 깊게 만드는 방향으로’ 엮어 갈지에 대한 단초와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덧. 오늘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가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있고 5월부터 투어에 나선다는 뉴스를 보았다. 화창한 5월 어느 날 조용필 공연장 한쪽에서 영원한 ‘오빠’를 목청 높여 외치며 ‘단발머리’를 따라 부르는 오창희 선생님의 모습이 뉴스 위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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