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를 만난다는 것 : 카프카의 두 친구에 대하여
1. 막스 브로트
카프카를 카프카로 만들어준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막스 브로트(Max Brod : 1884~1968)로 그는 청년 시절부터 카프카의 절친이었지요. 두 사람은 하루에 두 번 이상 만날 때도 있었고 종종 새벽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파리며 바이마르며 온갖 곳을 문학 예술을 탐구하기 위해 같이 여행하기도 했구요. 카프카는 일기에서 오직 브로트와만 여행하고 싶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카프카 생전에는 브로트가 카프카보다 훨씬 더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브로트는 자신의 임무란 카프카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고, 카프카의 세계를 보다 확장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프카를 만나 자신의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워졌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랬기에 카프카가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버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고와 일기를 편찬해서 출간하는데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습니다.
막스 브로트(Max Brod)
브로트는 후에 친구의 삶, 그 정신세계의 심오함과 특별함을 소개하기 위해 자서전을 남깁니다.(1937 출간) 이 자서전에서 브로트는 카프카의 삶을 신(유대교의 신)을 향한 성스러운 투쟁으로 되살려내지요. 브로트는 카프카가 이 투쟁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것은 카프카가 너무나 철저하게,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신을 향한 구도의 길을 닦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도의 길을 걸어간 성자! 소설을 통해 그 구도의 의미를 탐구하려 했던 위대한 유대정신! 그것이 브로트의 카프카였습니다. 브로트는 ‘카프카에 대한 모든 것이 다 여기에 있노라!’라고 자서전에서 자부했습니다. 영원의 동반자만이 할 수 있는 생생한 ‘증언’임을 강조했지요. 브로트는 마치 자신이 카프카의 정신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는 듯이 확신에 찬 어조로 자서전을 썼고, 카프카가 남긴 미완의 원고를 카프카라면 이렇게 마무리했으리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편집 출간했습니다.
2. 구스타브 야누흐
브로트처럼 카프카를 만나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친구는 구스타브 야누흐입니다. 18세의 청년 시인 구스타브 야누흐(Gustav Janouch : 1903~1968)는 1920년 3월, ‘노동자 재해 보험공사’에 다니던 아버지의 소개로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변신』(1915)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1924년 6월 3일 카프카가 죽기 전까지 둘의 우정은 지속되었어요. 1965년, 야누흐는 그들이 나누었던 우정을 세상에 선물하기로 결심하고 카프카를 만나고 난 뒤에 남기곤 했던 노트를 출간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카프카와의 대화』였습니다.
이 회상록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브로트를 통해 아들(핍박받는), 오라비(참견하는), 연인(신뢰할 수 없는), 친구(영혼을 나누는), 성자(신을 경배하는)로서 알려져 있던 카프카의 또 다른 얼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헌신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이 책은 카프카가 시오니즘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과 전쟁과 기계화되어가는 관료제에 대해, 급변하는 프라하의 정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그가 썼던 작품의 핵심 키워드(투쟁, 자유,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 설명들도요.
그런데 『대화』는 카프카의 전기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야누흐는 카프카에 대한 그 어떤 객관적 정보도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적했던 날짜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고, 카프카의 무정부주의 활동에 대한 부분은 신뢰할 수 없다는 반박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화』는 카프카 작품의 해설서도 아닙니다. 야누흐는 카프카 작품을 분석하지도 않았거든요. 야누흐는 단지 자신이 만난 카프카를 묘사하고, 카프카의 말씀을 옮겼습니다. 그 어떤 분석과 비판을 곁들이지 않으면서요. 카프카와 산책을 나서고. 프라하의 시가를 걷고 바람과 햇살을 맞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함께 까페나 극장에 가고. 두 사람은 읽었던 작품과 보았던 연극에 대해, 만났던 사람과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시온주의와 무정부주의에 대해, 자유와 투쟁에 대해, 사랑과 가족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카프카는 브로트와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겠지요, 그렇지만 자신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친구와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야누흐는 자신이 했던 말을 감히 『대화』에서 쓸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는 오직 카프카의 말만을 충실히 옮기고자 했습니다. 야누흐는 카프카의 유고를 읽는 것도 거부했는데요, 불경스럽다고 생각해서지요. 카프카 사후에 그가 사무실에서 쓰던 컵을 유품으로 받기도 했었지만, 차마 거기에 입을 댈 수조차 없었답니다. 야누흐의 『대화』에는 카프카에 대한 절대적 거리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야누흐에게 카프카가 너무나 고귀하고 너무나 성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야누흐는 카프카를 ‘청춘의 감정과 정신의 지평선’으로 정의했습니다. 브로트의 카프카가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면, 아누흐에게 카프카는 절대적인 선, 신 그 자체였던 것이지요.
브로트의 카프카와 야누흐의 카프카. 하나는 ‘전기(사실)’ 임을 자처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화’라고는 하지만 카프카를 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영으로 그립니다.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운가를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브로트와 야누흐는 다 각자의 방식으로 카프카를 만나고 겪었기 때문입니다. 카프카의 일기와 작품을 읽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때로 저는 미로에 갇힌 듯 카프카의 말들 속에서 헤매게 되고, 문득 고독해집니다. 카프카에 대한 참고문헌에 참고문헌만을 찾는 긴 여행을 떠나야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브로트와 야누흐의 기록들을 읽으면 용기를 얻게 됩니다. 카프카란 해석되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체험되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바로 그날부터 나는 내 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카프카 박사를 만날 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내 수용 능력을 증진시켰다. 나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내 세계는 더 냉정해지거나 불분명해지지 않으면서 더욱 심오하고 복잡해졌다. 반면 나를 계속 놀라게 만드는 사물과 인간의 실로 형언할 수 없는 다양성을 통해서 내 실존은 더욱 풍성하고 더욱 살 가치를 지니게 됐다. 행복과 감동의 물결에 휩싸여 그 시절을 지냈다. 더 이상 보잘것없고 하찮은 관리의 아들이 아니라, 세계와 자기 자신의 척도를 얻으려고 전력을 다하는 인간, 인간과 신을 위해 싸우는 작은 투사였다. … 그가 겪게 한 강렬한 체험 덕에 나는 매일 성장했고 내적으로 더욱 자유롭고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구스타브 야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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