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과와 곶감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올해부터는 명절에 딸아이랑 명절 음식 한 가지씩은 꼭 만들어보리라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갔다. 지금까지 누군가 정성들여 마련해놓은 음식을 먹기만 했지 스스로 만들어 먹을 줄은 모르면서 사십 년을 넘게 살아왔다. 사놓고는 손도 못 댄 계피가 봉지 그대로 냉장고 안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기억났다. 일단,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용감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계피가 들어 있는 봉지와 야채칸에서 말라가고 있는 생강을 꺼냈다. 어린 시절에 수정과에 넣어주던 곶감 먹을 욕심으로 수정과의 매운 맛을 견디던 일이 생각났다.
생강을 물에 씻고, 껍질을 살살 긁어내고, 그 다음에는 뭘 하나? 아무래도 주워들은 레시피가 가물거린다. 믿을 만한 요리책을 찾아서 폈다. 흠, 그렇군. 생강을 손질해서 분량의 물에 넣으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최대한 얇게 썰면 생강맛이 더 강하게 나겠지? 물 한 냄비에 생강 한 움큼과 계피 두 덩이를 넣고 온 집안에 매운 냄새를 풍기며 끓였다. 아이는 부엌을 들락거리며 이렇게 매운 것을 어떻게 먹느냐고 걱정을 했다. 나도 걱정은 되었다. 조금 맛을 보니 맵기만 했는데, 요리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설탕을 넣고 더 끓였더니 그제야 수정과 맛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도 이건 조금 먹을 만하다고 인정을 했다. 이제 식히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숟가락을 놓기를 기다려서 수정과를 내왔다. 나는 이런 것도 만들어서 가족을 챙긴다면서 으쓱한 기분으로 남편이 수정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깥 날씨가 매서운 늦겨울 새벽이라 차가운 수정과를 마시는 게 꺼려졌는지 남편은 조금만 마시고 내려놓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얼른 수정과 담은 그릇을 전자렌지에 돌려서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제서야 남편은 수정과를 다 마시고 곶감을 우물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ㅎㅎ~ 성공이구나. 딸아이를 깨워서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수정과를 데워서 먹였다.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몸이 따뜻해 질 거라고 아이에게 한마디 곁들여가며 남기지 말고 다 마시라고 했다. 아이는 설탕이 들어있어서 먹기는 해도 여전히 코를 막는다. 내가 먹어봐도 계피 맛이 너무 진하다. 다음에는 계피를 한 덩이만 넣어야겠다. 어쨌거나 시도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저런 망상을 헤치며 가끔씩 책에 집중해가면서 오전이 지났다. 목이 약간 말랐다. 수정과를 마시고 싶었다. 냉장고에서 수정과를 꺼내서 작은 그릇에 따르고 건더기를 조금 넣고, 그만 의자에 앉아 버렸다. 일단 이렇게 앉고 나면 한 시간 안에는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다. 전자렌지에 데워먹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이거 마시고 밖에 나갈 것도 아닌데 어떠랴 싶어서 그냥 마셨다. 차고 맵고 달콤한 물이 목구멍을 자극하며 졸졸 내려간다. 으이그야~ 진짜, 앗쌀하구만. 이걸 곶감 없이 어떻게 먹냐? 분명히 곶감을 넣는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무가 흔들리고 마른 낙엽들이 날아다녔다. 손을 무릎 담요 안에 넣고 책에 눈을 박았다.
수정과는 원래 국물이 있는 화채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조 41년에 수정과가 처음 언급되었고,『동국세시기』에는 곶감을 달인 물에다 생강과 잣을 넣은 것을 수정과라 기록하고 있다. 지금처럼 설탕으로 단맛을 낸 것이 아니라 곶감과 꿀로 단맛을 내야했던 것이니, 곶감은 수정과에서 부재료가 아니라 주재료였던 셈이다. 수정과는 곶감이 마른 다음부터 정이월까지 식혜와 함께 잘 마시는 찬 음료이다. 특히 정초에 세배 오는 손님을 위하여 많이 마련해 놓았다. 수정과는 알코올 성분을 산화, 배설하는 데 필요한 과당과 비타민, 수분을 갖추고 있어서 명절에 과음으로 속이 얼얼한 손님을 위해 적절한 음료이다.
곶감에는 타닌(tannin) 성분이 많아 수렴작용이 강하다. 곶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는 말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수정과에 잣을 넣으면 맛뿐만 아니라 영양의 균형과 곶감의 수렴작용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어 빈혈과 변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잣은 지방유가 대부분이라 변비 치료에 탁월하니, 곶감과 잣은 함께 먹으면 더욱 좋은 먹거리이다. 호두를 곶감 속에 박아서 말아먹는 곶감쌈의 작용도 마찬가지다. 곶감과 잣은 고명으로 수정과 위에 띄워주는 장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곶감이야기는 다 아실 것이다. 울다가도 뚝 그칠 만큼 어린 아이들의 사랑을 받은 먹거리가 바로 곶감이다. 변비 환자가 아니라면 곶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곶감이든 단감이든 감을 먹을 때 꼭지와 심지 부분만 잘 피해서 먹으면 변비는커녕 소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감은 고려시대부터 재배하였고, 곶감은 조선시대부터 만들었다고 한다.『동의보감』을 펴보니 곶감을 건시(乾枾) 혹은 백시(白枾)라고 하는데, 불에 말린 것을 오시(烏枾)라고 하고 볕에 말린 것을 백시라고 한다. 따뜻함을 지켜서 장과 비위를 튼튼하게 해주고 오랜 식체를 삭힌다고 한다. 곶감은 어혈을 풀어주고 주근깨를 없애준다니 특히 여성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백시는 곶감의 표면에 묻어있는 하얀 가루를 두고 붙은 이름인 듯하다. 곶감 표면의 하얀 가루는 과당과 포도당 성분이 응결되어 생기는데, 잘 건조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기 쉽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항아리를 열고 꺼내주시던 거무스름한 곶감이 생각난다. 그때는 표면에 살짝 핀 하얀 가루가 곰팡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맛있게 먹었다. 요즘은 곶감을 인공으로 건조하면서 갈변을 막아 색조가 선명한 곶감으로 만들기 위해 유황으로 훈증한다. 전에 외할머니께 얻어먹은 곶감 생각이 나서 직접 만들겠다고 감을 한 상자 사서 껍질을 깎아 바구니에 담아 말리다가 흰 가루대신 검은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몽땅 버렸던 기억이 있다. 맛난 곶감을 만들려면 깨끗한 공기와 충분한 빛과 바람과 사람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곶감 만들던 시절을 그리워하기에는 너무나 편한 것에 익숙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났다. 마셨으니, 이제 화장실에 갈 때가 되었나?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콧잔등이 축축한 것 같다! 뭐지, 이건? 찜질팩이 식은 지도 한참 되었는데, 왜 코에서 땀이 날까?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바람이 눈까지 품고 어슬렁거린다. 주워들은 이야기가 진짜인가? 수정과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더니 속설이 아니라 정말인가보다. 아무래도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겨울철 난방비 절감과 수정과의 상관관계가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지나갔다. 수정과를 먹어서 몸이 따뜻해진다면 난방 온도를 줄여도 되지 않을까. 수정과가 몸의 온기를 높여주면 추위뿐 아니라 감기에도 덜 걸리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곶감까지 먹으니 아이 간식도 해결하는 셈이다.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으니 앞으로도 겨울철이면 애용하는 음료가 될 것 같다. 본초에 관한 나의 호기심은 먹을 것과 에너지라는 우주적 관심을 둘러싸고 적극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올해부터는 명절에 딸아이랑 명절 음식 한 가지씩은 꼭 만들어보리라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갔다. 지금까지 누군가 정성들여 마련해놓은 음식을 먹기만 했지 스스로 만들어 먹을 줄은 모르면서 사십 년을 넘게 살아왔다. 사놓고는 손도 못 댄 계피가 봉지 그대로 냉장고 안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기억났다. 일단,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용감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계피가 들어 있는 봉지와 야채칸에서 말라가고 있는 생강을 꺼냈다. 어린 시절에 수정과에 넣어주던 곶감 먹을 욕심으로 수정과의 매운 맛을 견디던 일이 생각났다.
계피는 육계(肉桂)라고도 불린다. 계수나무의 두꺼운 껍질이라는 뜻이다. 계피는 맵고 달다. 매운맛은 소화기를 따듯하게 해주고 단맛은 소화기를 편안하게 해준다.
초딩 5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소리에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온다. 이 아이는 먹고 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파진다는 시기, 즉 성장기에 들어섰다. 정말 엄청 먹는다. 안 그래도 넉넉지 못한 집안 경제에 엥겔 계수가 치솟는 요인이 물가뿐 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40줄 후반에 다다른 남편도 전에 없이 보양식 비스므리한 것에 살살 애착을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 뭐 먹을 거 없어?”
“왜 없겠냐, 이거 먹어라.”
내가 흔들어대는 봉지 속에는 돌돌 말린 마른 나무 껍질이 들어있고, 손에는 생강이 한 움큼 쥐어있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 내가 곰이야? 허걱~ 이 냄새는 또 뭐야?”
“이것들을 손질해서 물에 넣고 팔팔 끓이면 보약이 되는 거야.”
“나무껍질을 끓여먹는다고?”
아이는 계피를 꺼내들고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엄. 먹을 때는 네가 좋아하는 곶감이랑 잣도 넣고.”
“에이, 그냥 곶감이랑 잣만 주면 더 좋은데.”
이것이? 몸에 좋을 걸 해준다는데, 웬 말이 많아?
“암튼 기둘려봐라. 오늘 저녁에 끓여서 밤새 식히고 내일은 곶감을 넣어서 먹을 수 있게 해줄 테니.”
아이는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리킨다. 내가 냉동실에서 곶감 하나를 꺼내 아이의 입에 물려주자,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생강을 물에 씻고, 껍질을 살살 긁어내고, 그 다음에는 뭘 하나? 아무래도 주워들은 레시피가 가물거린다. 믿을 만한 요리책을 찾아서 폈다. 흠, 그렇군. 생강을 손질해서 분량의 물에 넣으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최대한 얇게 썰면 생강맛이 더 강하게 나겠지? 물 한 냄비에 생강 한 움큼과 계피 두 덩이를 넣고 온 집안에 매운 냄새를 풍기며 끓였다. 아이는 부엌을 들락거리며 이렇게 매운 것을 어떻게 먹느냐고 걱정을 했다. 나도 걱정은 되었다. 조금 맛을 보니 맵기만 했는데, 요리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설탕을 넣고 더 끓였더니 그제야 수정과 맛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도 이건 조금 먹을 만하다고 인정을 했다. 이제 식히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숟가락을 놓기를 기다려서 수정과를 내왔다. 나는 이런 것도 만들어서 가족을 챙긴다면서 으쓱한 기분으로 남편이 수정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깥 날씨가 매서운 늦겨울 새벽이라 차가운 수정과를 마시는 게 꺼려졌는지 남편은 조금만 마시고 내려놓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얼른 수정과 담은 그릇을 전자렌지에 돌려서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제서야 남편은 수정과를 다 마시고 곶감을 우물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ㅎㅎ~ 성공이구나. 딸아이를 깨워서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수정과를 데워서 먹였다.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몸이 따뜻해 질 거라고 아이에게 한마디 곁들여가며 남기지 말고 다 마시라고 했다. 아이는 설탕이 들어있어서 먹기는 해도 여전히 코를 막는다. 내가 먹어봐도 계피 맛이 너무 진하다. 다음에는 계피를 한 덩이만 넣어야겠다. 어쨌거나 시도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저런 망상을 헤치며 가끔씩 책에 집중해가면서 오전이 지났다. 목이 약간 말랐다. 수정과를 마시고 싶었다. 냉장고에서 수정과를 꺼내서 작은 그릇에 따르고 건더기를 조금 넣고, 그만 의자에 앉아 버렸다. 일단 이렇게 앉고 나면 한 시간 안에는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다. 전자렌지에 데워먹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이거 마시고 밖에 나갈 것도 아닌데 어떠랴 싶어서 그냥 마셨다. 차고 맵고 달콤한 물이 목구멍을 자극하며 졸졸 내려간다. 으이그야~ 진짜, 앗쌀하구만. 이걸 곶감 없이 어떻게 먹냐? 분명히 곶감을 넣는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무가 흔들리고 마른 낙엽들이 날아다녔다. 손을 무릎 담요 안에 넣고 책에 눈을 박았다.
수정과에 왜 곶감이나 잣, 호두 같은 것들을 넣어서 먹는 걸까. 참 궁금하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것들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먹는 게지 뭐^^ 그런데 진짜 수정과에 무슨 비밀이라도?
수정과는 원래 국물이 있는 화채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조 41년에 수정과가 처음 언급되었고,『동국세시기』에는 곶감을 달인 물에다 생강과 잣을 넣은 것을 수정과라 기록하고 있다. 지금처럼 설탕으로 단맛을 낸 것이 아니라 곶감과 꿀로 단맛을 내야했던 것이니, 곶감은 수정과에서 부재료가 아니라 주재료였던 셈이다. 수정과는 곶감이 마른 다음부터 정이월까지 식혜와 함께 잘 마시는 찬 음료이다. 특히 정초에 세배 오는 손님을 위하여 많이 마련해 놓았다. 수정과는 알코올 성분을 산화, 배설하는 데 필요한 과당과 비타민, 수분을 갖추고 있어서 명절에 과음으로 속이 얼얼한 손님을 위해 적절한 음료이다.
곶감에는 타닌(tannin) 성분이 많아 수렴작용이 강하다. 곶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는 말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수정과에 잣을 넣으면 맛뿐만 아니라 영양의 균형과 곶감의 수렴작용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어 빈혈과 변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잣은 지방유가 대부분이라 변비 치료에 탁월하니, 곶감과 잣은 함께 먹으면 더욱 좋은 먹거리이다. 호두를 곶감 속에 박아서 말아먹는 곶감쌈의 작용도 마찬가지다. 곶감과 잣은 고명으로 수정과 위에 띄워주는 장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곶감이야기는 다 아실 것이다. 울다가도 뚝 그칠 만큼 어린 아이들의 사랑을 받은 먹거리가 바로 곶감이다. 변비 환자가 아니라면 곶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곶감이든 단감이든 감을 먹을 때 꼭지와 심지 부분만 잘 피해서 먹으면 변비는커녕 소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감은 고려시대부터 재배하였고, 곶감은 조선시대부터 만들었다고 한다.『동의보감』을 펴보니 곶감을 건시(乾枾) 혹은 백시(白枾)라고 하는데, 불에 말린 것을 오시(烏枾)라고 하고 볕에 말린 것을 백시라고 한다. 따뜻함을 지켜서 장과 비위를 튼튼하게 해주고 오랜 식체를 삭힌다고 한다. 곶감은 어혈을 풀어주고 주근깨를 없애준다니 특히 여성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백시는 곶감의 표면에 묻어있는 하얀 가루를 두고 붙은 이름인 듯하다. 곶감 표면의 하얀 가루는 과당과 포도당 성분이 응결되어 생기는데, 잘 건조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기 쉽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항아리를 열고 꺼내주시던 거무스름한 곶감이 생각난다. 그때는 표면에 살짝 핀 하얀 가루가 곰팡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맛있게 먹었다. 요즘은 곶감을 인공으로 건조하면서 갈변을 막아 색조가 선명한 곶감으로 만들기 위해 유황으로 훈증한다. 전에 외할머니께 얻어먹은 곶감 생각이 나서 직접 만들겠다고 감을 한 상자 사서 껍질을 깎아 바구니에 담아 말리다가 흰 가루대신 검은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몽땅 버렸던 기억이 있다. 맛난 곶감을 만들려면 깨끗한 공기와 충분한 빛과 바람과 사람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곶감 만들던 시절을 그리워하기에는 너무나 편한 것에 익숙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났다. 마셨으니, 이제 화장실에 갈 때가 되었나?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콧잔등이 축축한 것 같다! 뭐지, 이건? 찜질팩이 식은 지도 한참 되었는데, 왜 코에서 땀이 날까?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바람이 눈까지 품고 어슬렁거린다. 주워들은 이야기가 진짜인가? 수정과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더니 속설이 아니라 정말인가보다. 아무래도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겨울철 난방비 절감과 수정과의 상관관계가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지나갔다. 수정과를 먹어서 몸이 따뜻해진다면 난방 온도를 줄여도 되지 않을까. 수정과가 몸의 온기를 높여주면 추위뿐 아니라 감기에도 덜 걸리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곶감까지 먹으니 아이 간식도 해결하는 셈이다.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으니 앞으로도 겨울철이면 애용하는 음료가 될 것 같다. 본초에 관한 나의 호기심은 먹을 것과 에너지라는 우주적 관심을 둘러싸고 적극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콧잔등의 땀, 이 정도는 나줘야 땀 좀 흘렸다 싶을 게다. 땀은 우리 몸의 피다. 그래서 땀을 함부로 많이 흘리면 기력이 쇠하고 사지가 축 늘어진다. 단, 운동으로 흘리는 땀은 우리 몸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수정과도 우리 몸을 데워 노폐물을 몸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출발! 인문의역학! ▽ > 본초서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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