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 위대한 작가의 일상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류가 말을 할 때부터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있었을 것이다. 마치 공기나 물 같은 것이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야기’는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야깃거리'라고 불러야 한다. 진짜 '이야기'가 되려면 어딘가에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는 ‘이야기’에 또는 '전하기'에 평생을 걸었던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인터뷰 목록 만으로 '세계문학전집'이 구성되는 엄청난 라인업이다. 이 '위대한 작가들'의 인터뷰가 이미 훌륭한 '이야기'가 된다. 작가들은 자신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소설을 쓰게 된 동기, 작품을 쓸 때의 상태 등등에 관해서 털어놓는다. 그게 이미 '이야기'인셈. 놀랍게도 이 '위대한 작가들'의 인생에는 이렇다할 특별함이 별로 없다. 어느 정도냐하면 우리가 '특별한' 딱 그만큼만 그들도 특별하다.
“독자가 인터뷰를 통해 알고 싶어 하는 작가의 면면은 위대함이 주는 ‘환상’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이기도 하다.
― 파리리뷰인터뷰, 김율희 옮김, 『작가란 무엇인가3』, 「역자 후기」, 478쪽
'전해지지 않으면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자. '작가'는 '전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경계인'이다. 거기에 '환상'과 '일상'의 사이라는 경계하나가 더 추가된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경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어느 경우에서든 중간에 끼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는 그래서 '평범한 독자'에 머무른다. 우리에게는 '경계'에 뛰어드는 용기가 없으니까. 좁디 좁은 그 '경계선'이 '위대함'과 '평범함'을 가르는 셈이다. 여기에서 멈추면 약간 억울할 것 같다. '위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비범해 질 수는 없을까?
나는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독자'를 '비범한 독자'로 만드는 책이다. '평범함'은 무엇이고 '비범함'은 무엇일까? 진짜 평범한 독자라면 그저 '읽는 것'에 만족한다.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독후감'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나쁘지 않다. '읽기'만으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고, 심지어 그렇게만 즐길 수 있는 것이 부럽기까지 하니까. '비범한 독서'는 조금 다르다. '비범한 독자'는 읽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읽을 때부터 '쓰기'를 염두에 둔다. 그의 글은 '독후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경계'에 서기 위해 책을 읽는다. '이야기'를 만들어본 사람들이 가진 자신만큼의 '특별함'에 자극 받는 것일까, 『작가란 무엇인가』시리즈를 읽다보면 어느 때보다 '글쓰기'의 충동의 자주 느끼게 된다.
_ 인터뷰마다 교정 원고 이미지컷이 삽입되어 있다. 사진은 르귄의 자필원고와 손탁의 타이프 원고. 이 이미지들만 보아도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극소수의 '위대한 작가'가 되기는 물론, 당연히,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비범한 독자'가 되는 것은 그보다는 쉽다. 그런데 굳이 '비범'해질 필요가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럴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가족과 다툰 일, 어제 저녁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에게 은밀하게 품었던 욕정, 친구에게 친 사기 등등 이 무수한 서사들은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기자신에게조차. 남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인 것은 괜찮지만, 자기자신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것은 '문제'가 된다. 자신에게 조차 전해지지 않은 이 이야기들이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이 누려야할, 뭐랄까 인생의 주권이랄까?, 여하튼 그런 권리를 갉아먹을 벌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괴로운 일, 음흉한 일, 슬픈 일, 기쁜 일들을 가지고 자기자신의 서사를 구성할 수 없다면, 그렇게 해서 '이해'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관찰'해 낼 수 없다면 안타깝게도 그 인생은 자기자신의 것이 아니다. 물론, '글쓰기'가 아니어도 된다. 어쨌든 '자신의 인생을 글에 녹여내는 작가들이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사'라는 형식을 마주할 때 독자 역시 자신의 인생사를 돌아보도록, 그것을 특정한 '서사'로 만들도록 자극 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쩌면 '비범한 독자'가 아니라, '비범한 인생'으로 끌고가 줄 책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에게 쓰는 것에 대한 보상과 기쁨, 환희의 순간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이 인터뷰는 자신의 글쓰기에 믿음이 흔들리는 젊은 작가들의 등대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 같은 책, 뒷표지
살짝 바꿔보자. "이 인터뷰는 자신의 인생에 믿음이 흔들리는 젊은 독자들의 등대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오늘 뭐든 한번 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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