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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책의 탄생』 - 책은 어떻게 책이 되었나?

by 북드라망 2018. 3. 12.

책의 탄생』 - 책은 어떻게 책이 되었나?


책이 가장 좋은 대접을 받았던 때는 언제였을까? '책'이 발명된 직후가 아니었을까? (반대로 수많은 책들이 넘쳐나서 흔하다 못해 업신여김마저 당하는 우리의 시대는 얼마나 축복 받은 시대인지.) 귀하고도 드문 책들의 시대, 필사본의 시대에 책들은 그야말로 귀한 몸이었다. 한글자 한글자를 판면에 세기는 필경사가 있었고, 가죽장정을 재단하여 책을 묶는 장인도 있었다. '책을 찍어낸다'는 현대의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책의 제작은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고, 그렇게 제작된 책은 당연하게도 귀중품 대접을 받았다. 그런 책들을 소중하게 모으고 관리하는 '장서가'가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책의 탄생』은 종이의 탄생 및 인쇄술의 발전부터 본격적인 '상품'이 되기까지의 책의 역사를 다룬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특별할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이 책은 정말로 '특별'하다. '책은 어떻게 지식의 혁명과 사상의 전파를 이끌었는가'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이라는 매체는 수천년간 지식의 '압축파일'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의 머릿 속에 있는 '지식'이 바깥에 나와서 돌아다니는 물건이 되었다는 그 사실 한가지가 얼마나 큰 격변을 가져왔는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1장, '1차적 논제: 유럽 내 종이의 등장'을 보면 지식을 기록하는 매체로서 '종이'가 어떻게 유럽사회에 전파되었는지, 그리고 제지 산업이 어떻게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지를 추적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3장 '책의 외형'에서는 '활자', '속표지와 판권' 상표', '장정'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 읽고 있던 책(『책의 탄생』)을 들어보면서 책의 각 요소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겪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적으로 보던 '책'이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체에서 심층의 역사를 품은 '특별한 사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점이 (연구자가 아닌) 보통의 독자들에게 『책의 탄생』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자. 모든 물건이 사실 마찬가지겠지만 텔레비전, 라디오, 스마트폰, 책 같이 이른바 '미디어'들은 자주 접하면 할수록 마치 공기나 물처럼 익숙해진다. 언제나 거기에서 소리를 내고 있고, 뉴스기사들을 보여주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작 그런 '내용'들을 전해주는 물건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물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어쩐지 그런 취급이 아쉽다. 다른 매체들과는 역사의 두께가 비교가 되지 않고, 사용자(읽는 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강도가 다르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무엇보다 '책'은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공부'와 긴밀하게 연결된 매체인 것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어떤 '권태'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읽고 싶고,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책이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이럴 때 독서가는 책이 읽고 싶지만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바로 이 순간에 읽을면 좋을 책이 『책의 탄생』이 아닐까 싶다. 읽어왔고, 읽어갈 책들이 귀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4장 '기술적 어려움과 문제의 해결'에서 삽화 인쇄에서 텍스트 인쇄로, 목판에서 금속 활자로 이행해가는 여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인쇄'에 적합한 종이를 생산하는 과정, 잉크가 적절하게 묻어나는 활판을 개발해 나가는 당대 직공들의 노력이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책을 탄생시킨 셈이니까. 


사실 『책의 탄생』은 대중적이라고 하기에는 전문성이 굉장히 높은 책이다. 저자는 '아날학파'를 창시한 뤼시엥 페브르와 그의 제자격인 앙리 장 마르텔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본격적인 '역사학' 전문서인 셈이다. 하지만, 비단 '연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책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누가 읽더라도 (약간 어려울 수 있겠지만)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책이 귀한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당신의 장서들을 귀하고 드물게 여기게 해주고, 책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길 원한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책의 탄생 - 10점
뤼시앵 페브르 & 앙리 장 마르탱 지음, 강주헌.배영란 옮김/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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