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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

앎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 - 믿으십니까?

by 북드라망 2012. 4. 16.
안녕하세요. 만수입니다. ( _ _ )

오늘은 감이당 TG스쿨의 '감이당 대중지성' 2학년이 첫 에세이 발표 현장을 소개하려고 합니다.(정말 현장 소개만 있어요.^^;;) 감이당 대중지성은 TG(Trans Generation) School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요, 현재 1학년과 2학년의 과정이 있습니다. 2학년은 매주 금요일에는 의역학을, 매주 일요일에는 낭송을 하고 글쓰기 공부를 합니다. 에세이는 매 학기에 정해진 주제로 쓰게 되는데요~ 이번 주제는 바로 "나는 왜 글을 쓰는가"였습니다. 발표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함께 느껴보시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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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준비해 온 발표문을 추첨을 통해 순서를 정하고, 차례로 발표하게 됩니다. 같은 주제이더라도 같은 글이 없습니다. 각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질문들과 삶의 현장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아침부터 밤까지, 또 다음날까지 발표가 이어지는데 발표하고 질문하는 과정 자체로 정말 많은 공부가 됩니다.다른 생각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면, 너무 뻥인 것 같나요? 하지만 직접 해 보시면 압니다. 진짜라는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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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남산으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날이 정~말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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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난 후, 다시 에세이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에세에 발표를 들을 때에는 왜 이리 금방 배가 고파지는 것인지...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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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그저 막연하게 '자알'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잘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나 결단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검객이 무술의 초식을 익히듯, 악공이 다루듯, 한 수 한 수 터득해가는 장인적 과정의 산물이다. 당연히 체질과 근기에 따라 수많은 학습 경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절차탁마하는 과정 속에서 신체가 전혀 다른 조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신체적 조성을 바꿀 수 없다면, 담론을 생산할 수도, 코뮌의 리더도 될 수 없다. (고미숙, 『호모 쿵푸스』)

에세이 발표가 모두 끝난 후, 특별한 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문턱을 실감하고, 그 문턱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네 분을 위한 예쁜 수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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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이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바로 바로~~~~~ 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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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특별한 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면서 내가 발 딛고 서있는 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 정말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왕양명의 『전습록』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우리의 앎도 나무를 심는 것처럼 그렇게 자라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뜻을 세워 공부에 힘쓰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어린 싹이 돋아날 때는 아직 줄기가 없고, 줄기가 뻗어나올 때는 아직 가지가 없으며, 가지가 생긴 뒤에 잎이 생기고, 잎이 생긴 뒤에 꽃을 피우고, 잎이 생긴 뒤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처음 식물의 씨가 발아했을 때는 다만 북돋아 주고 물을 주기만 할 뿐, 가지나 잎, 꽃이나 열매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헛된 공상이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재배하는 노력을 잊지 않는다면 어찌 가지나 잎, 꽃과 열매가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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