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인류가 선택한 조건
1. 조울증은 생명이 선택한 조건
질문 : 일을 벌이는 데 번다하고,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지 몰라도 불안이 조울증처럼 심하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스님: 우리 신체는 지금까지 6~10억 년 동안 지구 상에서 동물, 식물, 균류 세 가지로 변화해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살아오면서 우리는 상을 받은 것과 벌을 받는 느낌 두 가지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 생존에 좋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우울한 느낌이 드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고, 상을 받는 느낌이 드는 일은 추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생명체들이 적당한 상과 벌을 선택할 때 조증과 울증이 생기게 됩니다. 삶이 좋은 때도 있고 좋지 않은 때도 있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번다하다는 생각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직 아무런 생각 루트가 없어서 한 가지 생각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 살쯤 되었을 때 자아의식이 형성되고 그때 언어와 만나는 개념 통로가 형성됩니다. 예컨대 ‘떡’을 볼 때만 떡으로 여기다가 계속 듣다보면 떡이 없어도 떡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가능한 나이가 세 살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천 배 이상의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빙산의 일각 위에 있는 얼음 한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전체 생각에서 보자면 의식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입니다. 반면 무의식은 끊임없이 루트를 만들고 무언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로 여기면 이런 생각에 익숙해져서 바꾸려 해도 대단히 힘들어집니다. 어떤 생각이 ‘문제라는 인식’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무의식을 연결하는 통로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수십억 년 생명의 역사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25세가 넘으면 감정 조절을 훈련해야
세 살 쯤 되면 언어의 일반성이 형성되고, 또한 세 살 자아의 동일상이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기가 되면 생각 통로를 만드는 신경세포가 어른보다 한 배 반이나 두 배 반 정도 증가하게 됩니다. 청소년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추상적 경험지로 배선을 만들게 되니 아침저녁으로 감정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법입니다. 청소년은 배선의 혼란으로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25살이 되면 성장을 멈춰져서 안정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자기가 쌓아온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상과 벌을 조절해야 합니다. 예컨대 그때 내가 왜 상을 받고 왜 벌을 받는지에 대한 이해를 잘해야 됩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화내지 않을 사건에 대해서도 그냥 화를 내게 됩니다. 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삶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25세 부터는 의식으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자기 경험이 쌓이게 되므로 그것을 조절하는 능력을 조금씩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감정을 조절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절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매우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본 경험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것이 아닌, 간접경험만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무의식은 생명계에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처럼 전 세계가 의식으로 하나의 바퀴처럼 돌아가는 시대는 지구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경험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시대일 뿐만 아니라 경이적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게 인공지능의 대두입니다. 11살짜리 로봇인지 어린애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컴퓨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와 이야기 하면서도 11살짜리 아이라고 믿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컴퓨터는 일정한 말만 셋팅 돼 있지만 인공지능 컴퓨터는 마치 11살짜리 애가 말하는 것처럼 언어기술을 통합해 순식간에 이야기 합니다. 좀 더 지나면 인류보다 더 뛰어난 지능의 로봇이 나올 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처음 맞닥뜨린 세계에 대해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과 희망이 무의식적으로 교차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기존 생각을 넘어선 다른 식의 공동체를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3. 독수리와 뱀처럼 살아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대목이 독수리하고 뱀입니다. 이는 일종의 상징인데, 여기서 나오는 사람은 추상적 사고에 매여서 땅을 잃어버린 인물입니다. 하늘을 자기 눈의 초점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죠. 반면 초인은 하늘의 의식이 땅으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즉, 땅을 걷는 것을 아는 사람이 초인입니다. 초인은 드디어 땅을 딛고 있는 발의 감각을 느끼는 사람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초인의 개념과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은 땅으로 내려오기 쉽지 않습니다. 인간은 시공간을 추상하는 능력을 얻음으로 인해(종교가 대표적) 땅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많이 일어납니다. 언뜻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니체가 보기에 땅을 잃어버린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설파한 사람들이 성자들인데 이걸 초극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안쪽에 이미 사유의 패턴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초극하려면 이러한 사유에 대한 근본적 전복이 일어나야 하는데, 바로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독수리가 이런 사유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 뱀은 서양에서는 불길한 동물로 여겨집니다. 에덴이라는 안정된 세계를 넘어뜨린 간교한 동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에덴을 믿지 않습니다. 에덴은 하늘의 추상적 사고로 우리를 갇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깨뜨리려면 그 사고에 대한 전면적이고 새로운 논리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뱀입니다. 기존 서구세계가 가지는 모든 논리체계를 뒤흔들 능력이 뱀인 것입니다.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가’의 독수리 같은 생각과 뱀처럼 다른 식으로 세계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혼자 있어도 세상과 하나라고 느낍니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과 있어도 고립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의 전복이 일어나고, 다른 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을 때 초인이 되는 것입니다. 초인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고 땅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4. 정리를 마치며
새로운 것을 열정적으로 하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우리의 욕구가 잘못 설정됐다면 매우 곤란해질 수도 있다. 뜬금없는 것을 벌려서 번다해지기 쉽고, 열정은 성급해져서 불안하고 초조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이 늘 도사리는 해가 바로 갑오년이다. 이런 해에 정화스님의 말씀은 모두가 새길만하다.
정화스님의 말씀을 초 간단 정리를 해보면 우리가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것 같은 불안은 생명이 지금까지 오면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 그것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느끼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널뜀은 25살 이전에 더 심하지만 그 이후에는 스스로 조절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금 시대는 다른 시대보다 변화가 극심하여 불안을 더 느낄 수밖에 없다. 기존의 생각을 넘어선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으로 난 이해했다. 스님은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처음에 등장하는 독수리와 뱀에 대해 말씀하셨다. 독수리처럼 하늘로 올라가 땅을 바라보며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에덴의 질서를 가차 없이 깬 뱀처럼 다른 세계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다른 논리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독수리와 뱀처럼 사는 게 니체가 말한 초인이다. 초인은 철저하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 다른 세계를 구성하는 자라는 것. 그렇게 되면 조증과 울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관계 중독이 아니라 어떤 관계 속에서도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갑오년을 무사히 넘어가기 위해 우리 모두 초인 되기에 도전해 보자. 그것은 아마 독수리와 뱀처럼 당연한 것을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논리로 무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_정리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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