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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생의 도서관] 철학의 '서체중용'을 넘어서 -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by 북드라망 2016. 7. 12.


중국 ‘철학’의 모험과 회귀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각주:1] 본시 목소리가 백조처럼 맑았던 솔개가 있었다. 그런 솔개가 어찌된 일인지 말이 우는 소리를 듣고 부러워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이 솔개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말 흉내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아뿔싸, 말 우는 소리를 따르려 갖은 기술에 온몸을 받치는 사이, 솔개는 이미 가지고 있던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말 우는 소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백조처럼 맑게 노래하는 법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쩌면 동아시아의 사유가 솔개와도 같은 처지에 있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두 알다시피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엘리트들은 너도나도 똑같은 질문 앞에 섰다. 서양은 왜 부강한가? 대답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서양이 우월한 점은 근대 ‘자연과학’을 가졌다는 점에 있다. 근대 자연과학은 서양으로 하여금 자연을 인식할 지식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얻게 해 주었다.


당연히 근대 지식인들은 근대 자연과학을 둘러싼 서구의 지식 체계를 모조리 받아들이기로 한다. 베이컨의 말대로 “지식이 권력”이므로, 물밀 듯이 밀려오는 서구의 힘과 대항하려면,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중국 청년들이 중국의 관념적인 사고로 회귀할까봐 루쉰은 이런 말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의 책은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읽거나 전혀 읽지 말고 외국의 책을 읽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각주:2]
 

1920년대의 평유란.

철학 분야에서 이런 작업의 최첨단에 있던 사람은 바로 펑유란(馮友蘭, 1895~1990)이다. 펑유란은 진사과급제자이면서도 외국인학교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로부터 한학과 신학문을 직접 배웠다. 어쩌면 그것은 20세기의 학문적 상황에서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이 영향을 끼쳤는지 열일곱 살(1912년경)에 벌써 윌리엄 제번스의 『논리학 입문』을 원어로 배우고 서양철학에 진입한다.


오히려 그에게 중국철학은 한참이나 지연되어 도달한 사유였다. 근대 중국의 지식인, 후스(胡適, 1891~1962)가 베이징대학에 부임하고서야 펑유란은 제대로 된 중국 철학사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서구 근대적 방법론에 의해 전달된 중국철학사였다. 따라서 펑유란은 문화적 토양은 부친으로부터 배운 한학이지만, 철학적 훈련은 서구철학으로 단련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주 묘한 결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주저 『중국철학사』의 첫 문장은 “철학이라는 말은 본시 서양 말이었다.”[哲學本一西洋名词]이다.[각주:3] 이어서 책의 의의를 이렇게 서술한다. “중국철학사 강론에서 주요 작업의 하나가 중국역사상의 각종 학문 가운데 서양의 소위 철학이라는 것으로 이름할 수 있는 것[西洋所谓哲学名之者]을 골라 서술하는 일이다.”


펑유란은 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가 서구의 개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펑유란에게는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중국만의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겠다는 그런 생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펑유란은 중국에도 ‘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펑유란에게 철학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자서전에서 명확히 밝혀진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은 ‘인류의 정신생활에 대한 반성’이다.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아주 평범한 정의다. 물론 인류가 반성해야할 정신생활은 굉장히 넓다. 그는 그걸 세 부분으로 나눈다. 자연, 사회, 사람. 여기서 자연은 중국에서 천(天), 즉 하늘이라고 불렀다. 또 사회와 사람은 묶어서 중국에서는 인(人), 즉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펑유란에 따르면 중국의 ‘철학’은 ‘하늘과 사람과의 관계’를 대상으로 반성하는 것이다.[각주:4] 펑유란의 욕망대로라면 하늘과 사람과의 관계를 사고해 왔던 어떤 개념적 틀을 중국의 갖가지 학문과 사상들에서 찾아내어, “이것이 바로 중국의 ‘철학’이다!”라고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중국철학사를 서술하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예컨대 공자를 소크라테스와 비교하여 그 동일성을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를 추구했다면, 공자는 정명(正名)을 추구했다고 하거나,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했다면, 공자는 ‘인’(仁)을 중요하게 여겼다면서 두 사람을 동일하게 서술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신성한 사명이 있다고 여긴 것처럼, 공자도 “하늘이 내게 덕을 부여하였다.”[天生德於予]라고 하는 식이다.[각주:5] 이런 식으로 중국의 사상들을 서구 철학사에 비추어 살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평행이론?


특히 재미있는 장면은 서구에만 있다고 여겨지는 논리학적 전통을 중국의 사상사에서 찾아내 정리한 곳이다. 그는 이런 욕망을 가지고 선진 철학의 한 분파였던 명가(名家)를 중국의 논리학으로 정리해 낸다. 사실 펑유란의 생각대로 중국에는 오직 순수이론적인 성격을 띤 학설은 극히 적다. [각주:6] 다시 말하면 순수 논리학적인 이론은 존재하기 힘든 전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혜시의 유명론적인 논리학과 공손룡의 실재론적 논리학을 구분하면서 중국의 사상 내에도 서구적인 논리학 체계가 있었음을 입증하려 했다.


혜시의 제10사, “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氾愛萬物, 天地一體也, Love all things equally, Heaven and Earth are one body]가 알려주는 것처럼, 혜시는 모든 것은 하나이지만, 인간이 지어낸 개념으로 상대화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반면 공손룡은 “분리란 모든 존재는 독립되어 참되다란 말이다.”[離也者, 天下故皆獨而正. Each is alone and true]라고 말하면서 각 개념들이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굳음’[堅]과 ‘흼’[白]은 각각 독립적인 이데아이다. 단지 사물에 ‘감추어진 채 존재’[藏][각주:7]할 때라야 그 이데아들을 감각할 수 있다.[각주:8] 그는 실재에 대한 서구적 사유(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플라톤적 사유)를 중국적 사상사 속에서 발굴하고 재배치시킨다.


그가 정주이학(程朱理學)의 리(理)와 기(氣) 개념에 주목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왜냐하면 서구의 ‘철학’에서 플라톤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응답된 핵심 문제가 ‘보편과 특수의 문제’였기에, 중국에도 그와 동일한 문제를 제기해왔고, 응답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펑유란은 서구철학의 핵심개념을 이렇게 정리한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각 종류의 사물이 그렇게 있을 수 있는 까닭의 이치가 그 사물의 ‘보편’(普遍, 사실 펑유란에게 ‘보편’은 ‘일반’과 다르지 않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귀로 보고 들으려면 현실세계에 위치를 점해야 한다. 보편은 어떤 규정성에 따라 다른 것들과 질적 구별을 갖게 되면서, 구체적 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특수(特殊, 펑유란에게 ‘특수’는 ‘개별’과 다르지 않다)이다.


펑유란은 서구철학의 ‘보편-특수’ 개념을 정주이학의 ‘리-기’ 개념으로 대체한다. 즉 보편은 중국에서 말하는 ‘리’이다. 그런데 ‘기’(氣)는 바로 특수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는 구체적 사물의 물질적 기초가 될 수는 있어도 특수한 사물 그 자체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펑유란은 이 지점에서 『주역』 「계사」의 “형체를 넘어선 것을 도라고 하고,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을 기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란 문구를 활용한다. 즉 구체적 세계 속의 구체적 사물을 중국철학은 ‘기’(器)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형체를 넘어선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을 기(器)라고 한다”



서구 철학의 보편은 감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실상 불가능하고, 원칙상 불가능하다. 그것은 형체를 넘어선 것이다. 이렇게 ‘형체를 넘어선 것’은 중국에서는 ‘도’(道)이고, 이 도는 곧 ‘리’(理)이다. 반대로 ‘형체를 갖춘 것’은 ‘기’(器) 혹은 ‘형기’(刑器)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보편과 특수’를 중국의 개념으로 대응시키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지 정리한 펑유란은 철학의 임무를 보편에 대한 인식이라고 선언한다.[각주:9] 보편에 대한 인식은 감각으로는 할 수 없고 논리적 분석으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펑유란에게 철학은 사유를 통해 감각할 수 없는 세계, 보편의 세계, 리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된다. 이데아를 인식하는데 철학의 임무를 두었던 플라톤의 세계를 중국 사유의 세계에 내려앉게 한 것이다.


정이(程頥)는 리의 세계를 이렇게 말한다. “고요하고 아무런 형체가 없되 모든 형상이 빽빽하다”[冲漠無朕, 萬象森然]. 보편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고요하지만, 모든 보편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는 정글처럼 리의 세계는 빽빽하다. 이런 리의 세계를 ‘진제’(眞際)라고 하고, 기(器)의 세계를 ‘실제’(實際)라고 한다. 아마도 진제는 이데아, 실제는 현상계와 대응되는 것일 게다.


이렇게 개념들을 서구적 철학 구도에 맞게 설정해 놓고, 보편과 특수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과연은 리(理, 이데아)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서구적인 지평에서 탄생한 ‘존재론적 질문’을 중국의 개념을 가지고 다시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은 리(理, 이데아)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까지 펑유란은 중국의 철학을 플라톤적인 개념 구도에 따라 핵심 개념들을 재설정하고 대응시켰다. 그러니까 중국 철학을 서구 철학의 개념적 구도에 재배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서구철학의 개념적 결론들을 따라 갔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펑유란은 반(反) 플라톤적인 대답을 준비했다. 원래 이데아는 이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펑유란은 과감하게 “리는 사물 속에 있다”고 대답한다.[각주:10] 이것은 보편이 특수 속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진제’(이데아)가 세상 밖에 존재하는 완벽한 상이 아니라, ‘실제’(현상계) 속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앞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펑유란에게 ‘진제’와 ‘실제’는 같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철학적 결론이다. 플라톤적 개념 구도를 가지고, 반 플라톤적 결론을 내린 것이다. 플라톤적 개념으로 말하면, 이데아는 현상이고, 현상은 이데아이다!


그는 중국 전통철학을 서양 근대철학의 신실재론과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렇게 재해석된 중국 전통철학을 가지고 서양 근대철학의 문제들과 대결하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중국 전통철학을 서구의 근대방법론으로 재배치한 후에 그것을 서양 철학의 장 안에 진입시키고, 그 표면 위에서 그들과 싸우도록 만든 것이었다. 어찌 보면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해체하고 재결합시킨 후에, 재결합된 새로운 나로 하여금 타자의 문제들과 대결하도록 시도한 셈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급진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면서.


펑유란의 글을 쓰면서, 펑유란의 수제자인 리쩌허우(李澤厚)가 쓴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와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도 함께 읽었다. 그는 이제 ‘철학이라는 형식’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였다. 데리다가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것이 중국에는 사변적이고 이성적이기만 한 형이상학은 없다는 뜻이었다고 칭송한다. 소위 서구의 ‘포스트모던’ 철학 이후를 이어받을 새로운 사유로 중국철학의 (재)등장을, 그러니까 새로운 의미에서의 철학을 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때의 철학은 과연 철학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어쩌면 리쩌허우가 여전히 이것을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가 주장하는 ‘서체중용’(西體中用)의 실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그는 현대화되어 존재하는 ‘철학’ 개념은 서구적 개념이지만 이미 현대세계에 뿌리 내린 용어이므로, 이 개념을 ‘체’로 삼고[서체(西體)], 중국적 사유에 따라 그 개념을 다른 것들과 재배치하여 사용[중용(中用)]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펑유란의 숨은 방법론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서체의 ‘서’와 중용의 ‘중’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단계에 이르면 서가 체가 되든, 중이 체가 되든, 거꾸로 서가 용이 되든, 중이 용이 되든, 둘 다 중이 되든, 어느 경우든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오로지 그 안에 있는 요소 간의 배치만 중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중체서용’이 없다면, ‘서체중용’도 없어야 맞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철학은 하나의 형식으로서, 다시 말하면 감각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의 형식 하나로서 존재할 뿐, 동양이냐, 서양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펑유란의 서구 철학으로의 모험과 회귀 덕분이다.
 

글_약선생(a.k.a. 강민혁)



중국철학사 -상 - 10점
풍우란 지음, 박성규 옮김/까치
펑유란 자서전 - 10점
펑유란 지음, 김시천 외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1. 각주 1) 이솝 지음, 『이솝우화』, 유종호 옮김, 민음사, 1991, 103쪽. [본문으로]
  2. 각주 2) 루쉰 지음,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 역주, 『노신문집Ⅲ』, 한무희 옮김, 일월서각, 1987, 94쪽. [본문으로]
  3. 각주 3) 풍우란 지음, 『중국철학사(상)』, 박성규 옮김, 까치, 1999, 3쪽. : 馮友蘭 著, 『中國哲學史(上)』, 重庆出版社, 2009, p. 3 [본문으로]
  4. 각주 4) 펑유란 지음, 『펑유란 자서전』, 김시천·송종서·이원석·황종원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1, 383쪽. [본문으로]
  5. 각주 5) 풍우란 지음, 『중국철학사(상)』, 박성규 옮김, 까치, 1999, 92쪽. : 馮友蘭 著, 『中國哲學史(上)』, 重庆出版社, 2009, p. 50 [본문으로]
  6. 각주 6) 펑유란 지음, 앞의 책, 310쪽. : 馮友蘭 著, 『中國哲學史(上)』, 重庆出版社, 2009, p. 50 [본문으로]
  7. 각주 7) 펑유란 지음, 앞의 책, 336쪽. : 馮友蘭 著, 『中國哲學史(上)』, 重庆出版社, 2009, p. 175 [본문으로]
  8. 각주 8) 펑유란 지음, 앞의 책, 336쪽. : 馮友蘭 著, 『中國哲學史(上)』, 重庆出版社, 2009, p. 175 [본문으로]
  9. 각주 9) 펑유란 지음, 『펑유란 자서전』, 김시천·송종서·이원석·황종원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1, 385쪽. [본문으로]
  10. 각주 10) 펑유란 지음, 『펑유란 자서전』, 김시천·송종서·이원석·황종원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1, 38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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