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버리면 충만한 삶이 펼쳐진다. 정말?
이번 정화스님의 멘토링 주제는 충만한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충만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대부분 열심히 살면 충만한 삶이 우리에게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산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람을 만나면 삶은 좀 더 편안하고 충만해질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을 하고 또 교회나 절에 가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간절히 빌기까지 한다. 헌데 정화스님은 이런 행동이야말로 부족함을 내면화하는 ‘뻘짓’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계속 마음을 쓰다 보면 충만은 커녕 걱정과 불안이 점점 커진다는 것! 정말 그런 것일까.
Q1. 내가 목표나 소원을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요?
오오, 하늘이시여!!
스님_세상에 모든 기도는 본래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와 그 기도가 이루어진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것이 이루어진 것뿐입니다. 보통은 기도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기도를 잘 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딸이 대학 합격하길 기도하면, 딸이 부족한 것이 생기길 원하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면 우리 딸은 부족해지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딸이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기도하는 것’아닙니까. 기도해서 그걸 성취하면, 성취했으니까 또 부족한 걸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일생동안 하면 부족한 것을 찾는 습관을 들이는 거죠. 기도해서 이루어졌어도 돌아보면 또 부족하고, 계속 부족하게 되는 거죠.
대학가기를 기도하는 순간 나도, 내 자식도 부족한 대상으로 보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교회나 절과 상관없이 지금 우리가 하는 기도 형태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죽을 때까지 불안해집니다. 죽고 나면 또 부족할 것이고, 더군다나 죽음은 아무도 본 적이 없기에 불안은 더 커집니다. 무엇을 바라는 마음은 사건을 능동적으로 살지 않고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신앙심은 있지만 자기 삶을 충실히 살 수는 없습니다. 절이나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만 결국 부족한 자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내 상태로 완전히 존중받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Q1+ 다른 사람에 대해서 기대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길 바라는 것도 문제가 있나요?
있는 그대로의 나/너를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Q2 남자친구가 잘해주긴 하는데 가끔 폭력을 행사합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 말을 믿고 만나야 하는 건지 헤어져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이것도 기대하는 걸까요?
스님_살다 보면 기대가 다른 청춘남녀가 서로 만나는데, 계속 만날 것인가 헤어질 것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계속 만나려면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상대는 백번, 천 번 말해도 안되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작용하려면 몸 안에서 신체적으로 호르몬이나 전기적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남성하고 여성하고는 다를 뿐만 아니라, 호르몬 배율이 다릅니다. 연애하면 분위기에 익숙한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분위기 파악을 잘 못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다른 것은 호르몬 때문입니다. 남성 호르몬은 분위기가 아닌 외부로 작용합니다. 남자에게 왜 그렇게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느냐고 말해봤자 모릅니다. 마치 장님에게 왜 안 보이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부의 눈이 없기 때문이죠. 눈에 어떤 것이 들어오는 것은 1차적 시각이지만, 감성 영역에서는 호르몬의 양이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외부에 뚫린 눈만 눈이 아니라 내부에서 호르몬의 분비량도 감성의 눈으로 작용합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호르몬이 결정하는 일입니다. 호르몬이 감성의 눈으로 작용해 수용 여부를 빨리 결정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으면 헤어지고, 만나려면 그 부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만나야 합니다. 자신의 기대에 따라주기를 기대하면 상대가 가식적으로는 할 수 있어도 호르몬이 없으므로 진심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가 지고 뜨는 시간에 신체의 신경 통로가 임무교대를 합니다. 아침하고 저녁은 다릅니다. 나도 변덕이 나는데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될까요?. 이것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름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박테리아를 한 번 살펴보죠. 사방 1cm 정도의 흙을 파면 수십억의 미생물들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박테리아입니다. 박테리아는 진핵생물이 아니라 원핵생물이라 핵막이 없습니다. 대신에 세포질 속에 핵이 유연해서 자기 DNA를 바꾸기도 하고 보내고 받기도 합니다. 받는 이유는 달라진 환경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기 위함이죠. 이것이 박테리아의 성 선택입니다. 우리가 남녀를 만나는 것도 기본적으로 세포가 수십 억년 동안 했던 것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목적은 DNA를 바꾸는 것으로 똑같으면 이상한 겁니다. 반드시 달라야만 생존할 개체가 단세포든 다세포든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커지니까 항상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청소년기, 결혼할 때, 그리고 노년일 때 안에서 정보가 달리 작용합니다. 특히, 결혼 후 수정란을 통해 애를 만들 때 부모가 고정된 DNA 정보를 물려줍니다. 그때 고정된 DNA 정보를 발현할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사람으로 발현되도록 DNA 정보를 발현하는데 특수한 경우는 아이가 선택하도록 엄마가 오픈시켜줍니다. 그것을 엄마가 결정해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갈 때 불리하므로 후천적으로 환경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99.5% 오픈시켜줍니다. 이것은 자식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오픈되어 있으니까 젊었을 때는 이렇게 붙고, 나이 들면 저렇게 붙고,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도 후손한테 물려주지는 않지만 내 스스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기다 대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생물이 살아올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몇십 년 안 된 거로 미래를 예측될 수 있는 것처럼 바라면서 일관성을 요구합니다. 생명체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지금 삶이 미래를 결정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자체가 그러니까 어떤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내가 기대하는 쪽으로 일이 일어나도 좋고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혼자 선택할 일도 아니고, 안의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상대가 좋으면 어떤 결과가 와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계속 기대를 하게 된다면 빨리 인연을 정리해야 합니다. 내가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생물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니까요.
계속 상대방에게 기대하게 된다면 "우리 헤어져"라고 말하세요.
Q3 아무리 마음을 내려놓으려 해도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어떻게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스님_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내려놓아지면 좋은데, 이렇게 되려면 최소 10년은 훈련해야 합니다. 40년을 살았다면 그 세월 동안 그런 의식의 통로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우리 생각에 마음은 쉽게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팔 근육을 움직이기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지 예를 들어봅시다. 감각지각이 눈을 통해 들어오면 시상을 통과하는데 시상은 8겹의 시각 중추를 통해 신호를 보냅니다. v1 영역은 어느 방향에서 오는가를, v2는 무슨 색깔인가만 수십 년간 보아왔습니다. 이것을 다시 중간 기지로 보내는데(그곳을 담당하는 부위가 30곳이 넘는다)무엇을 합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신호가 들어오면 방향만 보냅니다. 그렇게 모이면 이미지가 구성되는 거죠. 예컨대 남편을 보면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는 것과 같은 기억이 연결되어서 지금까지 우리 몸 안에 생성된 근육들이 계속 수십 년간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전에 생겨난 외부 영역이 있는 거죠. 생각은 늦게 생긴 영역으로 힘이 약합니다. 판별은 잘하는데 강도는 약하죠. 감정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행위 하는 부위로, 이 부위가 중심이 되어 감정이 생겨납니다. 생각보다 감정이 우선이므로 내 생각대로 되고 싶은 마음은 빨리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괜한 생각을 하면 걱정만 생깁니다. 사실 걱정은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지 생각해보죠. 걱정은 하는 일이 두 가지입니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거나,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솔직히 대부분의 걱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걱정하는 심리적 근육들의 연결통로를 계속 키워왔습니다. 일어나지 않지만 계속 걱정하는 습관을 훈련한 것이죠. 하지만 걱정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생명체가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오던 일로 걱정하는 마음을 멈추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걱정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걱정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걱정이 오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그렇다. 우리의 걱정과 불안은 인류가 생명을 존속하는 힘이기도 했다. 솔직히 원초적인 차단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버리는 훈련을 하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더 좋은 삶, 더 나은 나를 원하는 욕망을 직시하는 것이고 그것이 부족한 나를 만든다는 통찰 속에서 가능하다. 그때 조건 없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해보자. 나는 지금 무슨 기대를 잔뜩 하고 있는가. 어떤 기대라도 좋으니 한 가지라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충만한 삶을 지금 바로 누려보지 않겠는가!^^
글/정리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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