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9 [현민의 독국유학기] 바램이 삶이 되려면 바램이 삶이 되려면 최근에는 집 재계약과 전기세, 정원 가꾸기로 매일매일 그룹채팅방이 시끄러웠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임의적으로 회의를 만들지만 회의 시간을 잡기란 굉장히 어렵다. 생각보다도 더 12명이 한집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금방 바뀌고, 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4년이 된 이 셰어하우스에 현재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알론소다.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한국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코스타리카에서 온 그는 이 도시에서 현대무용 학교를 다닌다. 그는 댄서다. 최근 그의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학년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알론소는 셰어하우스 톡방에 공연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티켓 값이 생각보다 비싸 못 가겠군 하던 차였다. 공연 오냐고 묻는 그.. 2024. 12. 27. 문화의 추방자이자 이민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뉴욕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문화를 위하여 (1): 뉴욕과 에드워드 사이드 논쟁하기 좋아하는 싸움닭. 이것은 ‘뉴요커’에게 붙은 무수한 딱지 중 하나다. 뉴욕에서 직접 살아보니 이 이미지의 유래를 알 것 같다. 여기서는 논쟁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논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뉴욕이 그토록 광고해대는 (그 놈의!) 다양성 때문이다. 다양한 인간들이 좁아터진 섬에 모여 살다보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 잘난척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 무지 자체는 괜찮다. 문제는 무지를 고집할 때다. 바로 그때 무지를 깨뜨리려는 자와 무지를 고수하려는 자 사이에 논쟁이 시작된다. 쿨하지 못해 미안한 이름, 문화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에 살 때는 과열된 애국심이나 유치한 반일 감정에 거리를 두며 나름 ‘쿨녀.. 2016. 4. 29. 역사 속의 김부식 - 위대한 역사가에서 치졸한 사대주의자까지 중세 보편주의 지식인, 김부식의 영광과 오욕 “김씨는 대대로 고려의 큰 씨족이 되어 전사(前史)로부터 이미 실려 오는데, 그들이 박씨(朴氏)와 더불어 족망(族望)이 서로 비등하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문학(文學)으로써 진출된 사람이 많다. 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석대한 체구에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널리 배우고 많이 기억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 일을 잘 알아, 학사(學士)들에게 신복(信服)을 받는 것이 그보다 앞설 사람이 없다.” - 『고려도경』 고려 인종 때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 (徐兢)은 『고려도경』이란 책에서 김부식의 인물됨을 이와 같이 기록했다. 고려의 일개 접반사였던 김부식은 서긍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김부식의 화상까지 그려서 황제에게 바치고, 그의 세가.. 2016. 4. 12. 하워드 진, 미국이여, 이곳은 정말 괜찮은 '국가'인가? 인간성 對 인간들 (2) : 하워드 진과 뉴욕 뉴욕의 빨갱이, 혹은 휴머니스트 하워드 진. 그의 이름은 고향 뉴욕에서조차 불편하게 들린다. 진을 읽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얼굴부터 찡그리고 본다. 그가 뉴욕 태생이라는 사실은 여기서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한 탓이다. 바로 ‘빨갱이(!)’다.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난다. 이것이 1980년,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가 출판되자 쏟아진 비난이었다. 냉전 시기가 한창이던 당시, 민중(People)이라는 단어는 곧바로 공산주의의 노동 계급을 연상시켰다. 이 책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침묵 당한 사료를 위해서 쓰였다고, 진이 아무리 주장.. 2016. 3. 25. 이전 1 2 3 다음